잘못하면 '면죄부 주고도 뺨 맞는 꼴'.. 오묘한 사면의 정치학
대통령의 특별사면권은 헌법상 보장된 권리다. 헌법 79조에는 “대통령은 법률이 정하는 바에 의하여 사면·감형 또는 복권을 명할 수 있다”고 돼 있다. 다만 사실상 죄를 사해주는 권리여서 항상 비판과 감시의 대상이었다. 역대 대통령이 특별사면 결정을 내릴 때마다 그 대상이 적절한지를 놓고 후폭풍이 거셌던 것은 이 때문이다.
윤석열 대통령이 8·15 광복절을 계기로 특사를 단행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면서 그 대상을 놓고 벌써부터 의견이 분분하다. 최근 여권은 건강 문제로 형집행정지 상태인 이명박 전 대통령의 사면을 촉구하는 한편 경제 회복을 위해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등 기업인에 대한 사면도 이뤄져야 한다는 주장을 펴고 있다.
홍준표 대구시장은 지난 11일 페이스북에서 “광복절에는 국민 대통합을 위해 이 전 대통령을 비롯해 여야 정치권 인사와 경제 대도약을 위해 이 부회장 등 경제계 인사를 대사면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이틀 뒤인 13일에는 한덕수 국무총리가 기업인 사면에 대해 운을 띄웠다. 그는 한국신문방송편집인협회 포럼에서 “어려움을 충분히 겪었다고 판단되면 (사면을) 긍정적으로 검토하는 것이 우리 경제나 국민의 일반적 눈높이에서도 그렇게 어긋나는 것은 아닐 것”이라고 말했다.
대통령실은 이 전 대통령과 이 부회장 사면에 대해 “이 시점에서 확인해줄 수 있는 건 없다”고 했지만, 내부적으로는 사면을 위한 행정적인 준비 절차에 착수한 것으로 전해졌다. 법무부도 특별사면 및 복권, 감형 대상자를 선정하기 위해 일선 검찰청에 대상자 선정 협조 공문 등을 보내는 등 실무 절차를 진행 중이다. 대통령실 관계자는 “각계각층의 의견을 수렴해 어떤 기준으로 사면 대상자를 정할지, 대상자를 정할 때 어떤 문제가 있는지 검토하고 있다”고 말했다.
대통령실 안팎에선 이 전 대통령 사면을 ‘상수’로 보는 분위기다. 윤 대통령도 지난달 출근길 도어스테핑(약식 회견)에서 “(이 전 대통령을) 이십몇 년을 수감 생활하게 하는 건 안 맞지 않나”고 말한 바 있다.
다만 문제는 균형과 명분이다. 정치인에 대한 일방적인 사면 결정은 여론의 거센 역풍을 맞아왔다.
노무현 전 대통령은 임기 말인 2007년 12월 31일 최측근인 최도술 전 청와대 총무비서관을 사면했다. 김대중 전 대통령의 최측근인 박지원 전 대통령 비서실장, 한화갑 전 의원, 임동원·신건 전 국가정보원장 등 민주당 측 인사들도 대거 사면 대상에 포함시켰다. 양윤재 전 서울시 부시장 등 이 전 대통령과 가까운 인사도 일부 ‘끼워 넣기’했지만, 노 전 대통령의 임기 말 사면은 민주당 인사들을 챙긴 ‘보은 사면’이라고 두고두고 비판을 받았다.
이 전 대통령도 마찬가지다. 그는 퇴임 직전인 2013년 1월 29일 자신의 ‘정치적 멘토’ 최시중 전 방송통신위원장과 ‘죽마고우’ 천신일 세중나모여행 회장, 박희태 전 국회의장, 김효재 전 청와대 정무수석 등 측근에 대한 사면을 단행한 뒤 거센 후폭풍을 겪었다.
문재인 전 대통령은 2021년 12월 24일 박근혜 전 대통령과 한명숙 전 국무총리에 대한 사면·복권을 단행했다. 양쪽 진영 인사 동시 사면으로 균형을 꾀한 것이다. 덕분에 정치권의 비판이 줄어든 측면이 있다. 다만 박 전 대통령을 사면하며 ‘5대 중대 부패범죄’(뇌물·알선수재·알선수뢰·배임·횡령)에 대한 사면권을 제한하겠다는 공약을 문 전 대통령 스스로 어겼다는 점은 비판을 피할 수 없었다.
윤 대통령이 이 전 대통령을 사면할 경우 여야 균형을 맞추기 위해 야당 주요 인사의 사면을 동시에 단행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는 것은 과거 사례에 비춰 자연스러운 일이다. 사면 대상이 될 야당 인사로 김경수 전 경남지사의 이름이 오르내리고 있다. 김 전 지사는 2021년 7월 ‘드루킹 불법 댓글 사건’에 연루된 혐의로 징역 2년이 확정돼 수감 중이다.
기업인 사면에 대한 부담은 상대적으로 덜하다. 최근 경제 상황이 악화돼 재계뿐 아니라 여야 모두 기업인 사면에 대해선 우호적인 태도를 보이고 있다. 국민 여론도 나쁘지 않다. 이 때문에 이 부회장과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 등이 사면·복권 대상에 오를 가능성이 높다는 전망이 나온다.
대통령실 핵심 관계자는 22일 “이 전 대통령, 김 전 지사를 포함해 사면 대상을 포괄적으로 검토하고 있다”며 “여권뿐 아니라 야권 인사들도 사면할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이어 “기업인들 또한 이 부회장, 신 회장을 포함해 폭넓게 사면 대상에 올려두고 검토 중”이라고 전했다.
이준한 인천대 교수는 “자기 맘대로 사면했다고 국민들이 판단하면 국정 지지율이 더 떨어질 수 있다”며 “사면 대상을 신중하게 결정해야 하고, 왜 사면했는지에 대한 논리가 있어야 한다. 그렇지 않다면 선의로 사면했을지라도 상당히 낭패를 볼 수 있다”고 말했다.
문동성 이상헌 기자 theMoon@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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