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에 로봇 친구 있나요?" 세계 1위 '로봇 나라' 한국
식당·공항·편의점 이어 대통령 경호까지 수행
"인간의 필요·사회적 타협이 로봇 역할 결정"
경기도 군포 CJ대한통운 스마트 풀필먼트센터. 택배 배송 작업을 하는 이곳에서 로봇 126대가 분주하게 움직인다. 근무자는 작업장에 선 채로 터치스크린을 두드려 로봇을 호출하고, 바코드를 스캔한다. 이외의 모든 공정은 로봇의 몫이다. 로봇은 상품을 창고에서 꺼내 근무자에게 가져가고, 상자 안에 완충재를 채워 포장한다. 상자에 송장을 붙여 상품을 출고하는 작업도 로봇에 의해 이뤄진다.
기존의 물류센터에선 근무자가 상자를 들고 일정한 거점마다 서 있는 기계를 찾아 작업장 곳곳을 돌아다녔다. 이와 정반대의 풍경이 스마트 풀필먼트센터에서 펼쳐지고 있다. 택배를 포장, 검수, 출고, 배송할 때까지 사람은 한 걸음도 이동하지 않는다. 정해진 노선을 따라가는 로봇(AGV)과 자율주행으로 작동하는 로봇(AMR)만이 작업장 안을 돌아다닐 뿐이다.
이런 자동화 체계는 사람의 힘과 시간을 덜어줄 뿐 아니라 배송 오류를 줄여준다는 장점이 있다. 군포 스마트 풀필먼트센터에서 근무자 1명의 시간당 작업량은 23.8상자다. 기존 물류센터에서 근무자 1명의 시간당 작업량인 15.4상자보다 효율이 54.5% 증가했다. CJ대한통운 관계자는 19일 “로봇과 협업의 효과를 확인했다. 경기도 용인시 남사읍에 구축하는 물류센터를 포함해 다른 곳에도 같은 자동화 체계를 도입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한국은 세계에서 로봇을 가장 많이 활용하는 나라다. 국제로봇연맹(IFR)의 최신 자료인 지난해 12월 보고서를 보면 인구 1만명당 로봇 활용도에서 한국은 932대로 1위에 올랐다. 2위 싱가포르(605대)를 무려 35% 포인트 차이로 앞지른 압도적 1위다. 로봇 산업의 ‘양대 산맥’으로 꼽히는 일본과 독일의 인구 1만명당 로봇 활용도는 한국의 절반에도 미치지 못한다. 일본은 390대로 3위, 독일은 371대로 4위다.
국가별 로봇 총량을 집계해도 한국의 입지가 크게 달라지지 않는다. 로봇의 전체 대수를 파악한 IFR 보고서에서 한국은 3만500대를 보유해 4위를 차지했다. 중국(16만8400대), 일본(3만8700대), 미국(3만800대) 다음으로 많은 로봇을 가진 나라가 한국이다. 공장 자동화에서 둘째가라면 서러운 독일의 로봇 총량은 2만2300대로, 한국 다음인 5위다. 메르세데스벤츠, BMW, 폭스바겐, 포르쉐 공장에서 로봇팔로 자동차를 쉴 새 없이 찍어내는 독일보다 한국은 더 많은 로봇을 보유했다.
한국은 스마트폰, 반도체, 자동차, 선박처럼 세상에 필요한 물건을 대부분 만들어내는 제조업 국가다. 이런 산업 환경이 한국을 ‘세계 1등’ 로봇 국가로 올려 세웠다.
로봇은 이제 한국인의 일상으로 파고들기 시작했다. 식당에서 음식을 나르는 ‘서빙 로봇’, 편의점에서 근거리 주거지로 상품을 배달하는 ‘로봇 라이더’가 이미 인간의 주변을 활보하고 있다. 로봇이 커피를 타고, 치킨도 튀긴다. 국내 모바일 배달 애플리케이션(앱) 점유율 1위인 배달의민족은 지난 18일부터 인천국제공항 제1여객터미널의 각 게이트에서 주문을 받은 음식을 로봇으로 배달하기 시작했다.
대통령 옆을 지키는 ‘로봇 경호원’을 보게 될 날도 머지않았다. 대통령 경호처는 지난 12일 삼성전자, 네이버 랩스, 카카오 엔터프라이즈 같은 국내 정보통신기술 기업 소속 전문가 11명과 태스크포스를 출범하고 ‘로봇 개’와 ‘경비 드론’ 도입을 준비하고 있다. 도입 목표 시점은 오는 9월 말이다.
로봇 산업이 급성장할 때마다 빼놓지 않고 따라오는 건 ‘인간의 역할 축소’를 놓고 벌어지는 논쟁이다. 세계에서 가장 적극적으로 로봇을 활용하는 한국의 이면에는 가장 빠르게 인건비를 줄일 것이라는 암울한 전망이 그림자처럼 드리워 있다. 미국 경영 컨설팅 기업 보스턴컨설팅그룹은 2025년까지 10년간 로봇 도입에 따른 국가별 인건비 감소율을 추산한 결과, 한국의 비율을 세계에서 가장 많은 33%로 예상했다. 국내 노동 수익의 총합이 3년 뒤에는 2015년 대비 3분의 2 수준으로 줄어들 수 있다는 얘기다.
반면 로봇에 의한 일자리 잠식 우려를 반박하는 연구 결과도 있다. 덴마크 오르후스대 연구진은 1978~2017년 일본 제조업체들의 인력구조를 조사한 뒤 “직원 1000명당 로봇 1대를 늘릴 때마다 고용이 2.2%씩 늘어났다”고 분석했다. 노동집약적인 업무를 로봇에 맡기고 잉여시간을 확보한 인간이 생산성을 높여 기업의 수익을 늘린 결실로 추가 고용을 창출했다는 얘기다.
해외 성장산업을 분석하는 김성환 신한금융투자 책임연구원은 “지난 세기 미국·유럽에서 자동차·방직 공장의 자동화가 실업률을 높일 것이라고 예상됐지만, 결국 새로운 산업과 직종을 만들었다”며 “미래의 로봇 산업도 비슷한 방향으로 발전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인구 절벽’ 위기에 내몰린 한국에서 줄어드는 미래의 노동력을 로봇으로 만회할 것이라는 산업계 일각의 의견도 있다. 하지만 현업의 일부 공학자들은 “로봇이 인간의 역할을 대체할 분야에 한계가 있다”는 목소리를 내놓는다.
벨기에 로봇 소프트웨어 기업 픽잇엔브이의 구성용 박사는 “자동차, 컴퓨터, 스마트폰 산업이 꾸준하게 발전해 온 이유는 인간이 할 수 없는 일을 대신했고, 또 인간에게 필요했기 때문”이라며 “로봇 산업에도 반도체처럼 팽창기와 수축기를 오가는 사이클이 나타난다. 최근 우리 주변에 나타난 서비스 로봇들은 산업 팽창기에 늘어난 관심과 수요의 산물로, 일시적인 현상일 수 있다”고 지적했다.
구 박사는 “결국 인간의 필요와 사회적 타협이 로봇의 역할을 결정한다”며 “로봇이 일자리를 놓고 인간과 충돌하게 된다면 그 역할을 인간이 할 수 없거나 위험한 영역으로 제한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김철오 기자 kcopd@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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