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착한데 공부 안 하는 절친들, 계속 친해도 될까요"[온기편지]

김용현 2022. 7. 23. 0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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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적 스트레스를 받고 친구들과 용돈을 너무 많이 썼어요"
세상 곳곳에 전해진 1만3994통의 익명 손편지, 그 따뜻한 이야기를 전합니다. [온기편지]는 비영리단체 ‘온기우편함’에 도착한 익명의 고민편지 중 공개동의한 편지와 온기우체부의 답장, 앞서 그 길을 걸었던 인생 선배들의 이야기까지 함께 전해주는 코너입니다.

삽화=전진이 기자

23일 온기우편함에 용돈 쓰는 문제와 친구 사귀는 일로 고민이 깊은 중학생의 편지가 도착했습니다.

최근 1학기 마지막 시험을 치른 온기(가명)님은 열심히 공부했지만 결과가 기대만큼 좋지 않았다고 해요.

“기말고사 보고 시험성적이 너무 안 좋아서 친구들이랑 스트레스 풀 겸 놀았는데, 이때 용돈을 너무 많이 썼어요.”

학생 시절 시험이 끝나는 날이면 많은 분들이 친구들과 삼삼오오 모여 떡볶이 등 맛있는 걸 먹으러 가거나 놀러 다니던 추억이 있을 텐데요. 온기님은 친구들과 실컷 스트레스를 풀고 난 후에야 용돈을 너무 많이 썼다는 걸 깨달았습니다.

“이제 친구 생일이라 생일 선물도 사야 하고, 3공 다이어리 커버도 사야 하는데 큰일 났어요.”

온기님은 친구의 생일을 챙겨야 하는 상황과 동시에 평소에 사고싶던 물건을 부족한 용돈 안에서 어떻게 해결할지 고민하고 있습니다.

이와 더불어 1년여 동안 친하게 지낸 친구들과의 관계에 대해서도 고민을 털어놓았는데요.

“제 친구들은 공부도 안 하고 시험성적도 낮은 애들인데, 착하긴 하거든요? 이 친구들이랑 계속 친하게 지내도 될까요?”

진지한 중학생의 고민에 과연 어떤 답장이 왔을까요.

#1 온기우체부의 답장

안녕하세요 온기님. 소중한 마음이 담긴 편지를 온기우편함에 나누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온기님의 편지를 보면서 저도 고등학교 2학년 때 정말 가깝게 지낸 3명의 친구가 떠올랐답니다.

굳이 말하자면 ‘범생이 스타일’에 가까웠던 저와는 달리 친구들은 모두 공부와 거리가 멀었어요. 수학능력시험 모의고사 날 너무 떨려서 도시락으로 죽을 먹는 제 옆에서 친구들은 몰래 초밥을 시켜 먹었답니다. 결국 배탈이 나서 영어듣기시간에 교실 밖으로 뛰쳐나가던 친구들의 모습이 저는 아직도 생생히 기억나요.

그래서 선생님들께서 항상 “너 절대 친구들한테 물들면 안 된다!”라고 말하기도 했어요. 이렇게만 말하면 좀 ‘노는 애들’인가? 생각할 수도 있지만, 사실 한명 한명 빛이 나는 친구들이었습니다. 한 친구는 미술 시간만큼은 그 누구보다 눈이 반짝반짝했고, 다른 친구는 영상편집을 정말 잘해서 학교의 모든 영상을 담당했어요. 또 다른 친구는 이미 고등학생 때 작은 온라인 마켓을 운영하고 있었고요.


지금 생각해보면 저는 이 친구들과 지내며 그 어느 때보다 밝고 긍정적인 에너지와 영향을 받았던 것 같습니다. 친구들이 꿈꾸는 모습, 노력하는 모습을 보며 ‘내가 모르는 분야가 이렇게 많구나’, ‘공부가 절대 다는 아니구나’를 깨달을 수 있었던 것 같아요. 공부만으로 조금 선입견을 가졌던 제 스스로를 돌아보면 정말 크게 반성하게 됩니다.

온기님이 친구들을 만나면서 온기님과는 다른 모습, 다른 꿈들에서 새로운 자극과 배움을 얻어보시는 것도 좋지 않을까요? 온기님의 빛나는 우정을 진심으로 응원합니다.

#2 그리고 전문상담교사 '마봄쌤'의 조언

안녕하세요 온기님. 저는 고양시 소재 고등학교에서 근무하는 16년 차 전문상담교사 마봄(마음돌봄)쌤이에요.

온기님과 친구들의 흥겨운 한때가 상상되면서 저절로 입가에 미소가 번졌습니다. 또 신나게 놀고 나서는 걱정이 앞서는 온기님의 순수한 모습에 제 마음도 맑아지게 됐어요. 다만 이 순간에도 온기님 마음은 갈팡질팡, 불안하겠구나 싶어 빨리 답장을 보냅니다. 조금 어려울 수도 있지만 단단한 과학적 근거로 온기님의 고민을 같이 풀어가 보려고 해요.

먼저 스트레스를 풀려고 신나게 놀다 보니 계획보다 용돈 지출을 많이 해서 당황했군요. 사실 이런 행동은 청소년, 특히 중학생들에게는 아주 자연스러운 현상이에요. 왜냐면 우리의 뇌는 청소년기에도 엄청난 지각변동을 겪거든요. 태어날 때 신체기관 중 가장 미성숙한 뇌는 중학교 시절이 돼서도 성장합니다. 특히 판단, 충동조절 등을 담당하는 뇌 앞쪽(이마엽) 부분은 발달이 느려 청소년기에는 감정 기복도 심하고, 충동조절이 어렵습니다.

더구나 그동안 양적으로 성장했던 뇌가 이때부터는 질적 성장을 하기 위해 대대적인 구조조정을 시작합니다. 기존 연결망이 끊어지기도 하고 새로운 연결망이 생성되기도 하느라, 청소년의 머릿속은 온통 공사 중이랍니다. 그래서 시시각각 변하는 내 마음을 나도 모르겠는 거죠.

게다가 왕성한 성호르몬 분비로 신체 역시 하루가 다르게 변해가면서 마음뿐 아니라 내 몸도 알 수가 없으니, 내 행동을 예측하기가 당연히 어려울 수밖에요. 그러니까 스트레스 풀다가 예상보다 훨씬 돈을 많이 써버린 자신을 자책하기보다는 이해해주면 좋겠어요.

자, 물은 이미 엎질러졌고, 그럼 이제 친구 생일 선물은 어떻게 하면 될까요? 평소에 친구가 좋아하는 것들이 무엇인지 찬찬히 생각해보고, 나의 정성으로 준비할 수 있는 것을 찾아보면 좋겠네요. 선물은 물물교환이 아니라 온기님의 진심을 담아 보낼 수 있는 마음과 마음을 연결하는 좋은 도구이니까요.

그래도 아직 3공 다이어리 커버 문제가 남았군요. 커버를 살 돈이 없다면, 다음 용돈 받을 때까지 좀 살살 다루는 방법도 있겠어요. 시간이 좀 지난 페이지는 책장에 꽂아 두고 자주 들고 다니는 것만 다른 파일에 넣어 다녀도 괜찮고요.


마지막으로 온기님은 착하지만 성적이 좀 낮은 친구들과 계속 어울려도 될지를 걱정하고 있다고 말해줬어요.

음, 오랜 역사를 갖고 있는 인류는 반복된 경험을 통해서 자신과 다른 특성이 많은 사람과 친해지고 사랑을 해야 생존에 유리하다는 것을 터득했어요. 이러한 경험이 몸과 마음 깊숙이 각인되어 무의식적으로 자신과 다른 사람에게서 매력을 느낀다는 겁니다.그러니까 온기님이 나와 달리 공부는 안 하지만 같이 있으면 즐겁고 신나는 친구들을 좋아하는 건 너무 당연하고, 무엇보다 현명한 일입니다.

AI기술의 발달로 더 이상 지식을 암기하고 보유하는 것은 의미가 없어지고 있어요. 오히려 지식들을 어떻게 연결해 새로운 문제해결 방법을 찾아내느냐가 중요해졌죠. 이를 위해서는 다양한 사람들과 사귀고 이를 통해 창의적이고 유연하게 사고하는 게 길게 보면 당장 시험성적보다 훨씬 중요할 수 있습니다.

또한 미래 시대의 경쟁력은 ‘인성’이라는 말도 있어요. 단순한 노무나 정보의 수집 분석은 모두 기계가 할 수 있는 시대가 온다면, 앞으로 인간이 할 분야는 윤리적 판단을 내려 주는 역할이 유일할지도 몰라요. 지식의 양을 측정하는 성적보다 인성이 더욱 중요해지지 않을까요?

온기님은 1년 전에 정말 좋은 친구들을 만났던 것 같아요. 관계는 꽃처럼 가꾸어야 아름답고 향기로워진다고 해요. 온기님 친구들과 따뜻한 우정 나누면서 즐겁고 행복한 학창 시절 보내시기 바랍니다. 온기님과 친구들의 미래를 응원하고 기대할게요.

털어놓기 어려운 마음 속 고민이 있다면 온기우편함(ongibox.co.kr)에 익명으로 편지를 보내주세요. 진심이 담긴 손편지 답장을 받을 수 있을 거예요.

김용현 기자 face@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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