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가 떠난 지 4년.. '6411버스' 타고 노회찬을 배웠습니다
[이채은 기자]
▲ 고 노회찬 정의당 의원. 사진은 2011년 11월 '오마이뉴스'와 인터뷰할 당시 모습. |
ⓒ 남소연 |
지난 5월 시작해 7월 초 끝난 노회찬정치학교(3기)에선 노회찬 의원을 존경하고 그리워하며 그에게서 배우고자 하는 수강생들을 만날 수 있었다. '이렇게까지 한 정치인을 마음속에 둘 수 있구나' 하며 신기했던 순간도 있었다. 첫날 자기소개를 하면서 노회찬 정치학교를 어떻게 알았고 어떤 의지로 신청했는지 들었다. 6411버스가 그려진 종이 위에 나에 대한 키워드를 작성하는 시간이 있었는데, 마치 그 버스가 수강생들을 태우고 출발하는 듯했다.
노회찬 학교는 초기 각자 관심 있는 주제를 골라 조별 프로젝트 중심으로 진행됐는데, 나는 '6411노동자와 기본권'을 선택했다(그 외엔 기후위기·복지사회·포용사회 등 선택지가 있었다). '6411버스'가 지닌 상징은 앞서 봤던 다큐멘터리 <노회찬6411>을 통해 잘 알고 있었다.
6411버스 첫차를 타고 출근하는 이름 없는 사람들의 이야기. 현실을 살아가고 있지만 세상에는 보이지 않던 노동자들을 밖으로 이끌어내 회자시킨 그의 정치가 좋았다. 우리 조에 모인 사람들은 6411버스에 몸을 실은 노동자처럼 세상에 목소리를 내지 못하는 사람들을 위한 활동을 해보고자 이 주제를 선택했다.
▲ 생전에 6411번 버스에 탄 노회찬 의원의 모습. |
ⓒ 노회찬재단 |
노회찬정치학교 커리큘럼은 다른 교육들의 단점들은 보완하고 장점만 골라 모은듯했다. 대부분의 강의가 유익했지만 그중 내게 가장 의미있던 시간은 팀 프로젝트 시간이었다. 조별 주제에 맞춰 해결하고 싶은 사회 문제를 고르고, 사안의 실태 파악과 진단 해결을 위한 과정을 토론했다.
우리 조의 주제는 '대학 내 청소노동자'였다. 공교롭게도 정치학교가 진행되던 기간에 연세대 청소노동자 파업 이슈가 크게 떠올랐기에, 정치학교에서 해당 이슈를 더 입체적으로 살펴볼 수 있었다.
여기에서는 해당 문제를 제대로 파헤치기 위한 여러 장치들을 배우게 됐다. 당사자 입장뿐만 아니라 그를 둘러싼 여러 이해관계를 짚어보고, 어떤 이유로 이런 상황들이 발생했는지 고민할 수 있게 하는 생각의 힘을 키울 수 있었다. 청소노동자의 경우 갈등이 표면으로만 드러난 청소노동자-학교뿐만 아니라 그 주변 하청업체, 학생, 학생회, 시민단체와 같이 잘 보이지 않는 사안의 주체들도 확인할 수 있었다.
▲ 연세대학교 청소·경비노동자들이 지난 5일 서울 서대문구 연세대학교 백양로에서 집회를 열고 임금인상과 정년퇴직자 인원 충원, 샤워실 설치 등을 요구하는 모습. |
ⓒ 유성호 |
한편에선 사측에 사회적 합의를 지키라고 요구하는 파리바게뜨 제빵기사들, 이들에 힘을 보태며 자발적으로 불매운동을 하는 시민들이 있다. 그러나 일부 언론은 이들에게 '노동조합이 무리한 요구를 한다, 가맹점주·기업을 어렵게 만든다'는 프레임을 씌우곤 한다. 구조적 차별에 놓여있는 여성과 장애인의 복지향상을 위해 마련된 제도들이, 오히려 '남성과 비장애인을 역차별한다'는 볼멘소리가 나오기도 한다.
그런데 앞서 나열한 사례를 자세히 들여다보면, 원인제공자로 찍힌 대상은 대부분 사회의 약자에 선 사람들임을 확인할 수 있다. 개인이 일상에서 작은 불편이 생겼을 때, 대부분의 사람들은 문제의 원인을 약자에게 화살을 돌리곤 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사정을 내밀하게 살펴보면 '진짜 제공자'는 따로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비용을 최소화하려는 학교 그리고 학교의 요구사항에 맞출 수밖에 없는 청소하청업체가 있다. 그 사이에서 생겨난 피해는 청소노동자에게로 간다. 학생들에게 피해가 갈 수 있다고 해도, 이들에게 요구사항이 있다면 파업을 하는 청소노동자를 탓할 게 아니라 제대로 된 임금을 지불하지 않는 학교와 업체에게 해야 한다.
'그러려니' 무심코 지나쳤던 제도, 자세히 들여다보면
파리바게뜨 사안은 더 넓은 범위의 주체들이 있다. 제빵기사들과 SPC그룹 외에도 제빵기사들을 고용했던 하청업체들, 노동조합, 가맹점주, 소비자, 시민단체를 포함한 관계를 이해해야한다. 시민들의 자발적 불매운동으로 인한 가맹점 피해는 제빵기사 때문이 아니라, 약속을 지키지 않고 노동 기본권을 무시했던 SPC그룹 때문이다. 그러나 여성과 장애인, 소수자에 대한 혐오는 더 복잡할뿐더러 물리적인 실체로 확인하기가 쉽지도 않아서, 주체 확인은 더 어렵다.
이처럼 무심코 지나쳤던 제도와 사회관습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그 안에는 구조적으로 쌓여있는 차별이 있다. 차별을 해소하기 위해 마련된 제도들을 우리는 마치 개인에게 기본적으로 부여된 권리를 빼앗는다고 생각하기 쉽다.
그러나 당연하게 생각되었던 편리는 실은 약자에게 차별과 희생을 요구해 생겨난 혜택이기도 하다. 혜택을 받아왔던 사람들이 무조건 나쁘다는 게 아니라, 그런 구조적 차별이 존재한다는 걸 인지했으니 그간 당연히 보장됐어야 할 권리를 보장받지 못했던 사람들을 위한 사회적 움직임이 필요하다는 얘기다.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정장을 입고 법을 발의하는 것만이 정치라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일해도 일한만큼 벌지 못하고 밥 먹을 시간 없이 일하고, 남들은 쉽게 갈 수 있는 곳을 가지 못하는 '보통의 사람들'을 보고 발로 뛰고 만나는 것도 중요하다.
▲ 7월23일은 노회찬 전 의원의 4주기 기일로, 온라인으로 추모방명록을 남길 수 있다. 온라인 추모록 첫화면(http://memorial.hcroh.org/2022memory). |
ⓒ 노회찬재단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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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7월 23일은 노회찬 전 의원의 4주기 기일입니다. 글쓴이 이채은씨는 전 청년유니온 위원장으로, 현재 한국비정규노동센터 상임활동가로 근무 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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