섬세한 언어 돋보이나 '소통' 고려하면 좋을 신생 박물관
[김슬옹 기자]
▲ 서울 3호선 안국역 1번 출구 바로 옆에 있는 서울공예박물관 전경 |
ⓒ 최준화 |
한 편의 시를 읽는 듯한 이런 말은 서울 광화문 근처인 3호선 안국역 1번 출구 바로 옆에 있는 서울공예박물관의 전시 설명문 제목들이다. 마치 한 땀 한 땀 수를 놓던 어머니의 섬세한 손길을 표현한 듯한 제목들이 언어학자인 기자의 눈을 사로잡았다.
워낙 볼 것이 많아 기자는 지난 19일, 20일, 22일 세 차례나 서울공예박물관에 방문했다. 공예박물관의 특색을 잘 살린, 섬세한 공예물을 재현한 듯한 언어 사용이 돋보였고 전시물에도 그런 정성이 가득했다. 전시물 소책자들도 그 흔한 영어 남용, 영어 섞어쓰기, 어려운 말 등을 피한 노력이 돋보였다.
"사람은 한 번 태어나면 누구나 죽기 때문에 현생에 대한 애착과 사후의 평안함을 염원하는 마음을 지니고 있다. 그래서 사는 동안은 다복하게 사후에는 좋은 곳으로 가거나 환생하길 바라는 마음을 담아 한 땀 한 땀 수를 놓았다. 저녁에 지고 아침에 새롭게 피어나는 연꽃에는 환생을 바라는 마음이 담겨 있다."
'염원의 마음'이란 제목의, 서울시 유형문화재 제441호인 '자수 연화당초문 현우경 표지'에 대한 설명문이다. 일반 전시물 설명문처럼 딱딱하지 않다. 다만 아쉬운 것은 글꼴이나 시각적 가독성까지는 섬세함이 미치지 못했다는 점이다.
교과서 같은 평범한 작은 글꼴은 여느 박물관과 다를 바가 없었다. 유물 보호를 위한 어두운 조명 탓인지 눈에 확 들어오지 않았다. 섬세한 공예품처럼 언어의 시각적 효과를 고려할 수는 없었을까 아쉬움이 든다.
일부 압축적 설명과 집중 설명의 대비
▲ 일부 전시물 안내문에 대해 설명하는 김광옥 수원대 명예교수 |
ⓒ 최준화 |
이를 테면 영국사에 대한 설명은 고려시대와 조선시대를 아우르는 많은 내용을 압축적으로 담고 있는 데다 관련 사진 자료도 부족해 쉽게 이해하기 어려웠다. 담당 학예사에게 직접 확인해 보니 좁은 전시공간의 한계로 출토지와 발굴 배경 등 영국사에 대한 사실 정보를 정보 영상(키오스크)에 담았다고 한다.
마침 이곳을 찾은 김광옥 수원대 명예교수는 이 설명문을 보고 "백과사전처럼 모든 걸 다 설명하면 모든 걸 놓칠 수 있다. 집중 설명을 해야 읽고 싶은 글이 된다. 어쩔 수 없이 개괄하는 설명이라면 사진, 그림 자료로 보완하면 된다"라고 말했다.
▲ 2022 로에베 재단 공예상에서 최종 우승자에 선정된 한국 정다혜 작가 작품 |
ⓒ 최준화 |
담당 학예사에게 직접 확인해 보니 이 전시는 스페인에 있는 로에베 재단과의 국제협력전시로 스페인에서 준비하다 보니 미처 한글 설명을 반영하지 못했다고 한다. 대신 제1회부터 제4회까지 스페인·영국·일본·프랑스에서의 로에베 재단 공예상 전시와 마찬가지로 개최국 언어 설명은 QR코드와 도록을 통해 제공하고 있었다.
마침 이곳을 찾은 박재화 시인 등 강남시문학회 회원들은 이구동성으로 이 문제를 제기했다. 백우선 회장 등은 "전 세계 수상자 30명 가운데 최우수상을 한국인(정다혜) 작가가 받았고 무려 7명의 작품이 전시되어 있는데 한글 설명문이 없는 것은 아무리 국제 전시라도 이해할 수 없다"라고 말했다.
더욱 'Loewe(로에베)는 독일식 스페인어 발음이라 로마자만의 표기가 문제가 된다. 박물관 관계자들도 이 문제를 인식해 기자가 방문했을 때 한글 설명문을 준비하고 있었다고 한다.
▲ 2022 로에베 재단 공예상 전시를 관람하는 사람들 |
ⓒ 최준화 |
서울공예박물관은 2021년 11월에 개관한 새내기 박물관이다. 역사성은 깊어 한글(언문, 훈민정음)을 창제하고 반포한 세종대왕이 운명하신, 여덟째 아들 영응대군이 살던 곳이기도 하다. 박물관 200미터 거리에 조선어학회 사무실 터도 있다. 박물관은 이런 역사성을 좀 더 살린다면 이곳은 서울과 한국을 빛내는 최고의 박물관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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