뜬구름 잡는 현대미술? 편견 깨는 일류 작가의 아시아 첫 개인전

김성호 2022. 7. 22. 17: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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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 국립현대미술관 서울, '히토 슈타이얼: 데이터의 바다'

[김성호 기자]

경복궁 동편으로 난 문인 건춘문을 지나 길가로 나오면 바로 건너에 세련되고 공간감이 느껴지는 건물이 하나 보인다. 한국 정부가 미술진흥을 위해 운영하는 대표적 기관인 국립현대미술관 서울이다.

입장료 4000원에 양질의 전시를 전부 볼 수 있는 이곳은 문화애호가들에게 각별한 인기가 있다. 주변 다른 미술관에 비해 훨씬 다채로운 전시를 진행하며 전시의 깊이나 폭 역시 상당하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국가유공자나 장애인은 물론, 예술가와 대학생 등에게까지 전시를 무료로 개방하는 관대함이 있어 한국 정부에 불편함을 가진 사람이라도 이곳을 찾고 나면 조금쯤 애국심이 생기게끔 한다는 매력도 가졌다.

현재 국립현대미술관 서울에서 가장 뜨거운 전시는 '히토 슈타이얼: 데이터의 바다' 전이다. 오는 9월 1일까지 진행되는 이 전시는 독일에서 명성 높은 미디어작가 히토 슈타이얼의 작업들을 한 데 망라한 개인전이다. 슈타이얼의 개인전은 아시아에선 이번이 처음이다.
 
▲ 히토 슈타이얼: 데이터의 바다 포스터
ⓒ 국립현대미술관 서울
 
뜨거운 작가 히토 슈타이얼, 아시아 첫 개인전

슈타이얼은 독일을 대표하는 영화감독 중 하나인 빔 벤더스의 조감독으로 수차례 작업했을 만큼 경력 있는 영화인이다. 동시에 날카로운 비평을 생산하는 유능한 비평가이자 예술적 영상물을 꾸준히 내어놓고 있는 시각예술가로 경력을 쌓아왔다.

형식과 내용 모두에서 다양하고 다층적인 작품세계가 특징이며 사회문제를 거침없이 파고들어 풍자하는 솜씨가 일품이다. 특히 세계화가 빚어낸 문제, 경제와 정치 간의 부조리한 간섭현상, 생산과 노동문제에서의 공정 등에 관심이 깊고 이러한 주제를 수용자로 하여금 비틀어 생각해보도록 하는 능력이 탁월하다고까지 평가받는다.

이번 전시는 슈타이얼의 작품세계를 총체적으로 꿰뚫는 규모 있는 개인전이다. 1990년대 나온 초기작부터 사회문제에 통찰을 엿보게 하는 작품들을 지나 기술발전이 낳은 문제를 숙고하는 최근작에 이르기까지 작가의 작품세계를 연대기적으로 살필 수 있다. 모두 23점의 작품을 들여왔는데 개중에는 이번에 처음으로 공개되는 국립현대미술관 커미션 신작 '야성적 충동'도 있어 관심을 모은다.

'야성적 충동'은 귀촌한 양치기가 유튜브에 영상을 올리다 인플루언서가 되고, 리얼리티쇼의 주인공으로 캐스팅돼 인기를 얻은 뒤, 메타버스 세계에서 동물격투기쇼를 하게 된다는 정신 없는 줄거리의 영상으로 채워졌다. 이 과정에서 대체불가토큰이나 존 메이너드 케인즈, 온라인 게임 등의 요소가 흥미롭게 등장하며 갈 데까지 간 자본주의와 실체를 위협하는 가상공간 등의 문제를 부각시킨다.
 
▲ 히토 슈타이얼: 데이터의 바다 미션완료: 발렌시지
ⓒ 김성호
 
명품 브랜드 비꼬며 현대사회 허점을 찌른다

가장 흥미로운 작품은 단연 입장하자마자 만날 수 있는 '미션완료: 발렌시지'다. 명품브랜드 발렌시아가를 상징으로 삼아 자본주의의 허상과 소비자의 허영, 엉망이 된 가치체계를 마구 비꼬아대는 작품으로, 형식의 참신함과 내용의 치밀함 모두 일품이다.

슈타이얼은 50여 분짜리 영상으로 약 30여 년 간 인류문명의 변화를 총체적으로 망라하며, 발렌시아가로 대표되는 가치를 왜곡하고 허영에 차 있는 자본주의를 치고 차고 때리며 즐겁게 놀아난다. 슈타이얼은 이 작품에서 발렌시아가에 반하는 정신을 표방하는 새 브랜드로 가상의 '발렌시지'를 홍보하는데, 가치와 자산을 비롯한 중요한 것들을 사유화하고 있는 소수 엘리트들에 대한 예술적 저항을 거침없이 전개해간다.

특히 유명인이 제작한 우스꽝스러운 신발이 수 천 만원에 거래되는 현실, 명품 브랜드가 붙은 사실상의 표절작들이 또 그만큼 비싸게 팔려나가는 현실을 조롱하며 발렌시지의 가치를 이야기하는 부분은 작품의 백미라 할만하다. 니키타 흐루시초프 전 소비에트연방 서기장이 유럽의회에서 신발을 벗어 탁자를 두드린 사건, 시사회장에서 신발을 잘라 먹는 모습을 보여줬던 베르너 헤어조크 감독의 사례, 조지 W. 부시 전 미국 대통령에게 신발을 벗어 던졌던 문타다르 알 자이디 기자의 모습도 의미심장하게 등장한다.

작품은 말한다. 자고로 신발은 교환가치가 낮을수록 전투가치가 높아진다고, 발렌시지의 정신은 실용성에 있다고 말이다. 자본주의에 날리는 지적이고 신박한 한 방이 아닐 수 없다.

슈타이얼의 전시는 빅데이터와 알고리즘 등 첨단 정보기술에 대한 작가의 문제의식이 오래 단련돼 온 재기며 지식과 만나 빚어내는 예술적 향연이다. 국립현대미술관을 찾은 많은 이들이 올해 최고의 전시로 손꼽는 것도 결코 지나치지 않다.
 
▲ 히토 슈타이얼: 데이터의 바다 야성적 충동
ⓒ 국립현대미술관 서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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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김성호 시민기자의 브런치(https://brunch.co.kr/@goldstarsky)에도 함께 실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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