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연사부터 정상 생활까지.. '천의 얼굴' 가진 부정맥"
흔히 부정맥을 ‘도깨비 같다’, ‘천의 얼굴을 가졌다’라고 표현한다. 부정맥 증상이 다양하기 때문에 나온 말이다. 부정맥은 심장이 너무 빨리 뛰거나, 천천히 뛰거나, 불규칙적으로 뛰는 것을 말한다. 심장 박동이 정상 리듬을 벗어나면 모두 부정맥이라고 이해하면 된다. 증상이 지속되는 경우도 있지만, 많은 경우는 짧은 시간 동안 나타났다가 사라진다. 부정맥은 급사를 일으키는 주범이기도 하지만, 치료 대상이 아닌 경우도 있다. 다양한 부정맥과 그 치료법에 대해 가톨릭대 성빈센트병원 순환기내과 황유미 교수를 만나 들었다.
정상 맥박은 1분에 50~100회 뛰어야 한다. 1분당 맥박이 50회 미만으로 천천히 뛰는 것을 ‘서맥성 부정맥’이라고 하고, 1분당 맥박이 100회 이상 빨리 뛰면 ‘빈맥성 부정맥’이라고 한다. ‘심방세동’은 맥박이 불규칙적으로 뛰는 부정맥인데, 빈맥에 속한다. ‘기외수축’도 있다. 맥박이 건너 뛰거나 엇박자로 뛰는 부정맥이다. 기외수축은 대표적인 양성 부정맥으로 치료 대상은 아니다.
-부정맥은 왜 발생하나?
심장 노화가 가장 큰 원인이다. 심장박동은 심장 내부의 전기 회로에 의해 발생한다. 전기 제품을 오래 쓰면 고장이 나듯, 나이가 들면 심장도 노화하기 때문에 전기 회로에 이상이 생겨 심장 박동에 문제가 생길 수 있다. 심장 노화는 심장병, 대사성질환 등이 있으면 가속화 된다. 여성은 폐경 이후 부정맥 빈도가 높아진다. 선천적으로 심장 근육 사이 전도계에 이상이 있는 사람도 있다. 젊은 나이에 부정맥이 나타나기도 하지만 40~50세까지 증상이 없다가 부정맥으로 응급실에 내원해 뒤늦게 진단을 받는 경우도 있다. 악화 요인은 스트레스, 낮밤이 바뀌는 직업, 고카페인 음료 장기간 섭취, 수면무호흡증 등이다.
-가슴 두근거리는 증상만 있나?
가슴 두근거림이 가장 전형적인 증상이다. 그밖에 어지럼증, 활동 시 호흡곤란, 실신, 가슴통증도 나타난다. 서맥성 부정맥은 어지럼증, 활동 시 호흡곤란 등의 증상이 주로 나타나고, 빈맥성 부정맥은 두근거림이 가장 흔하다. 노인에게 흔한 부정맥인 심방세동은 두근거리다가 어지러운 증상이 주로 나타난다. 이런 증상과 함께 심전도 검사에서 이상이 나와야 진단이 된다. 증상이 없을 때도 많은데, 이 때는 심전도 검사에서 부정맥이 측정되지 않는다. 최근에는 스마트 워치에 부정맥을 감별하는 앱이 탑재돼 활용하면 진단에 도움이 된다.
-급사를 유발하는 부정맥에는 어떤 것이 있나?
심방쪽에 생기는 부정맥보다 심실에서 생기는 부정맥이 훨씬 위험하다. 심실세동, 심실빈맥 등이 대표적이다. 심실에 펌프 작용이 제대로 안돼 혈액 순환이 안 되면서 급사할 위험이 있다. 심실세동은 10~20대에도 가끔 발생하는데, 지난해 덴마크 축구 국가대표 선수가 경기를 치르던 도중 심실세동으로 그라운드에서 쓰러져 5분간 생사를 오가기도 했다. 다행히 응급 현장에서 자동 제세동기(AED)로 위기를 넘겼다. 심실세동, 심실빈맥은 원인은 명확치 않지만 한번 발생하면 치명적이다. 젊은 나이에서는 원인 미상인 경우가 많으며, 고령에서는 심근경색 등을 앓아 심근병증이 발생한 것이 원인이 될 수 있다. 다만 부정맥 중에서도 발생 빈도가 낮아 크게 두려워할 필요는 없다.
-반대로 경미한 부정맥에는 어떤 것이 있나?
기외수축이 대표적이다. 심장 박동에 엇박자가 생기는 것으로 가슴이 덜컥거리는 느낌, 바이킹 탈 때와 같은 느낌, 기침 등의 증상이 나타난다. 심방에 생긴 기외수축은 큰 문제가 없지만 심실에 기외수축이 생기면 병이 더 중할 수 있다. 심실 기외수축의 경우 심근경색 등 허혈성 심장질환 때문에 발생했다면 치료가 필요하다.
심전도 검사가 기본이다. 다만 부정맥은 증상이 있을 때 검사를 해야 하므로 증상이 나타나면 가까운 동네 병원에 가서라도 심전도 검사를 해야 한다. 또한 증상이 있을 때 스마트 워치를 활용하면 심전도 파형을 알 수 있어 진단에 큰 도움이 된다. 타이밍을 놓쳐 심전도 검사를 하기 어려운 경우에는 24시간 동안 심장박동을 측정하는 24시간 홀터 검사나, 최대 14일까지 집에서 검사가 가능한 웨어러블 심전도 검사도 있다. 그밖에 심장의 구조적 이상을 살피는 심장초음파, 인위적으로 운동을 시켜 심장기능 변화를 살피는 운동부하심전도 검사 등을 통해 부정맥을 진단할 수 있다. 심장 표면에 심어 부정맥을 진단하는 체내 삽입형 루프 레코더 등도 있다.
-자기 맥박 재기는 큰 도움이 되나?
맥박수는 심장이 제대로 뛰는지 관찰할 수 있는 건강 지표다. 맥박은 혼자 잴 수 있으며, 평소 자신의 맥박을 알아두면 심장 건강을 체크하는 데 도움이 된다. 1 분당 50~100회 사이에 있으면 정상이다. 횟수와 함께, 속도가 일정한지, 건너뛰는 게 있는지 등을 살펴야 한다.
-부정맥은 어떻게 치료를 하나?
약물치료를 먼저 해본다. 베타차단제, 칼슘채널억제제 등과 같은 고혈압약을 쓴다. 정상 맥박을 유지시키는 항부정맥제도 있다. 같은 부정맥이라 하더라도 동반 질환이나 심장 기능에 따라 다른 종류의 약물을 사용해야 하는 경우도 많다. 또한 한 가지 약물로 잘 조절되는 경우도 있지만, 증상이 조절될 때까지 몇 가지 약물을 같이 복용하거나 종류를 바꾸어서 복용해야 하는 경우도 있다. 부정맥 자체는 크게 위험하지 않은데, 이를 치료하는 약제가 오히려 더 위험을 초래하는 경우도 많아 부정맥의 치료는 여러 가지 요소를 다 복합적으로 판단해야 한다.
-부정맥 시술도 있다?
약물치료에 반응이 없거나 약물 치료 중에도 부정맥이 발생하는 경우 시술로 치료한다.
서맥성 부정맥은 '심장박동기' 삽입해 치료한다. 서맥을 모니터링하고 필요 시 정상적인 심박수로 교정하기 위한 기기를 왼쪽 가슴에 삽입하며, 어깨 주변에 있는 쇄골하 정맥 밑에 배터리를 심는다.
약물 치료에 비해 고주파 전극도자 절제술은 그 성공률이 높고 완치되는 경우도 많다. 상심실성 빈맥의 경우 90~95% 성공률을 보이며, 성공률이 가장 낮은 심방세동의 경우도 60~80%까지 좋은 결과를 얻을 수 있다. 냉각풍선절제술도 성공률이 비슷하다. 다만 고주파 에너지로 심장에 손상을 입히는 시술이므로 가능성이 낮기는 하지만 출혈이나 천공 등의 합병증이 발생할 가능성을 내포하고 있고, 때문에 단 기간의 입원이 필요하며 일부 시술 후에는 중환자실 입실이 필요한 경우도 있다.
술을 끊거나 적게 먹어야 한다. 카페인 섭취도 줄이는 것이 좋다. 심방세동의 경우 혈전이 발생해 치명적인 뇌경색까지 이어질 수 있다. 혈전 생성을 막는 약제 복용을 잘 해야 한다. 체력이 너무 떨어지면 심장 기능 자체가 떨어질 수 있으므로 운동은 해야 한다. 가벼운 유산소 운동과 근력 운동을 병행하는 것이 좋다.
-부정맥 환자에게 마지막으로 전하고 싶은 말은?
부정맥은 가슴 두근거림 때문에 환자의 불안이 심하다. 간혹 환자들 중에 부정맥은 모두 돌연사와 관련된 것이라 생각해, 부정맥을 진단받고 돌연사에 대해 심하게 우려하거나 걱정하는 경우가 있다. 부정맥이 돌연사의 원인이 될 수 있다는 것은 맞지만, 돌연사를 일으키는 부정맥은 여러 부정맥 종류 중 일부다. 또한 부정맥은 종류에 따라 적절한 약물 및 시술 치료를 통해 60~99%가 완치되는 만큼 과도한 걱정보다는 고혈압, 당뇨병처럼 적극적인 치료와 꾸준한 관리가 중요한 질환이라는 사실을 명심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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