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1일만에 끝난 대우조선 파업..'법과 원칙'이 떼법 막았다 [뉴스분석]
대우조선해양 하청업체 노조의 점거 파업이 22일 극적으로 타결됐다. 윤석열 대통령이 "참을 만큼 참았다"며 경고(19일)한 지 사흘만이다.
이날 민주노총 금속노조 거제통영고성 조선하청지회(조선하청지회)와 대우조선해양 사내협력회사 협의회(협의회)는 ▶임금 4.5% 인상 ▶노조 전임자 인정 ▶조합원 고용 승계 등에 대해 잠정합의했다. 다만 막판까지 신경전을 벌인 손해배상 소송 취하 문제는 합의하지 못하고 추후 협의하기로 했다.
이로써 지난 6월 2일부터 시작된 파업은 51일 만에 종지부를 찍었다. 5개의 독(dock, 선박건조장) 중 최대 규모인 1번 독의 30만t급 원유운반선을 점거(6월 22일)한 지 31일 만이다.
끝이 보이지 않던 파업 사태가 급진전해 타결에 이른 원동력은 역시 '법과 원칙의 힘'이었다. 윤 대통령의 최후통첩성 경고가 나오자마자 고용노동·행정안전부 장관과 경찰청장 후보자가 경남 거제로 내려갔다. 이정식 고용부 장관은 이튿날(20일)도 대우조선해양을 찾았다. 정부로서는 단순한 경고에 그치지 않고 절차상으로도 '할 만큼 했다'는 메시지를 준 셈이다. 이 자체로 노사 모두에게 사태 해결을 촉구하는 압박이 됐다.
그렇다고 장관과 경찰청장의 현장 행보가 '자율 해결'과 '법과 원칙 준수'라는 큰 틀을 벗어나지 않았다. 국무위원의 잇따른 방문에 파업 현장은 기대 반, 우려 반으로 술렁였던 것도 사실이다. 노조는 사측을, 사측은 노조를 다그치길 기대했다. 한편으로 정부가 교섭에 적극 개입하기를 바라기도 했다. 그러나 노사 중 어느 한쪽에 유리한 국면을 형성하거나 정부가 주도해 타결되면 개별 노사문제 개입에 따른 후폭풍을 감수해야 한다. 노사분규가 터질 때마다 자율 해결 대신 정부의 역할에 기대는 현상이 나타날 수 있어서다. 향후 국정운영에 상당한 부담이 따른다. 우려하는 목소리도 컸던 건 그래서였다. 이전의 역대 대부분 정부가 이런 행보를 보여왔다.
이번엔 달랐다. 국무위원이 노사 현장을 방문했지만 그 행보는 이전과 확연한 차이를 보였다. 조속한 해결을 노리고 사측에 양보를 하도록 압박하는 것과 같은 모습이 나타나지 않았다. 오히려 불법행위 철회와 교섭을 독려하며 노사 모두를 긴장하게 했다. 그러면서 결렬에 대비해 경찰력 투입을 준비하는 모습을 공개적으로 노출하기도 했다. 더욱이 조정·중재가 본연의 역할인 고용부 장관조차 교섭에 일절 개입하지 않았다. 정부의 원칙을 전달하며 교섭을 재촉할 뿐이었다. 장관이 나서면 사측의 양보가 기정사실화하던 관행을 보기 좋게 깼다.
이때부터 노사 모두 협상에 속도가 높아지며 급진전했다. 국무위원의 현장 방문이 있은 지 하루 만에 최대 쟁점이었던 임금인상률이 접점을 찾는 등 장관의 원칙 행보가 효과를 내기 시작했다. 결국 타결로 이어졌다.
점거와 같은 불법 수단을 동원한 떼법에 법과 원칙이 통한 셈이다. 지난 화물연대의 집단 운송 거부에 법과 원칙으로 대응하며 장기화하는 것을 막은 데 이어 투쟁 중심의 노사분규를 원칙의 힘으로 돌파했다. 법과 원칙의 학습효과가 기대되는 대목이다.
하지만 끝나지 않았다. 문성현 전 경제사회노동위원회 위원장의 말처럼 조선산업이라는 측면에선 떠안은 숙제가 수두룩해서다. 이번 사태를 계기로 조선산업 하청 근로자의 열악한 고용 현실도 노출됐다.
무엇보다 이번 파업사태를 촉발한 다단계 하청구조를 이대로 방치하면 재발 우려를 잠재울 수 없다. 가장 밑단의 하청업체 근로자는 '최저임금=최고임금'이란 말이 나오는 현실을 개선해야 한다. 저임금 때문에 숙련공들이 선박 건조 현장을 버리고 수입이 더 나은 건설현장으로 발길을 돌린 지 오래됐다. 향후 조선산업의 숙련 인력 수급에도 빨간불이 켜질 수밖에 없다. 이렇게 되면 중국·일본과의 경쟁에서 기술이 아니라 사람이 없어 우위를 장담할 수 없는 상황이 초래될 수도 있다.
때마침 윤 대통령이 지난 19일 공권력 투입을 시사하면서 "어려운 하청근로자의 상황을 잘 알고 있어 얼마든지 정책적으로 지원할 마음"이라고 밝혔다. 고용구조와 양극화 해소 대책에 속도를 낼 필요가 있다. 이는 경영계가 근로자와의 상생과 고통 분담 차원에서 함께 고민해야 할 문제다.
노조도 큰 숙제를 떠안았다. 투쟁 중심의 쟁취형 노사 관행에 제동이 걸렸기 때문이다. 대우조선해양 하청노조의 파업을 지원하려 금속노조가 총파업으로 맞불을 놨지만, 효과가 없었다. 오히려 대우조선해양 노조가 금속노조 탈퇴 수순에 들어갔다. 여론은 고사하고 노동계 내부에서도 결속된 지지를 못 얻은 것이다. 역으로 법과 원칙은 화물연대 집단 운송거부와 대우조선해양 파업 사태를 거치면서 힘을 받았다. 지난 정부에서 법 대신 촛불 청구서로 원하던 것을 얻던 시대가 지났다는 신호가 명확해졌다. 윤 정부에서 강경 투쟁으로 주도권을 잡으려던 계획이 틀어진 지금, 노사관계의 선진화 작업에 눈을 감을 수 없는 상황에 직면했다. 이런 숙제는 노조뿐 아니라 툭하면 개별 노사관계에 개입해 온 정치권에도 안겨졌다.
김기찬 고용노동전문기자 wolsu@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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