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도체공장서 일한 29년3개월.. 백혈병에 걸렸습니다"

반올림 2022. 7. 22. 13: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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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업병 피해자 이야기] 세상은 변했지만, 여전히 위험천만한 반도체 회사의 노동환경

2007년 고 황유미님의 죽음 이후, 반도체 전자산업의 위험성은 이제 우리 사회의 상식이 되었습니다. 반올림과 함께 많은 분들이 전자산업 직업병 문제에 관심을 가지고 알리려 노력해 온 덕분입니다. 전자산업 피해자들의 직업병 인정도 계속되고 있습니다. 하지만, 반도체 산업의 중요성에 대한 이야기는 넘치는 반면 반도체 산업의 위험에 대한 얘기는 여전히 부족합니다. 이런 현실에서 전자산업 직업병 피해자들의 얘기는 여전히 중요합니다. 이에 반도체 노동자의 건강과 인권 지킴이 반올림은 이하늬 작가와 함께 반도체 전자산업 피해자의 이야기를 시작합니다. 위험한 현장에서 일하고 있는 노동자들에게, 위험이 떠넘겨진 하청노동자에게, 다른 나라의 전자산업 노동자들에게도 닿기를 바랍니다. <기자말>

[반올림]

▲ 전자산업 직업병 피해자 "클린룸은 우리가 아는만큼 클린 하지 않아요" 2017년 6월20일, 서울 여의도 국회 의원회관 전자산업 직업병 피해자들의 이야기를 담은 ‘클린룸 이야기’ 상영회에서 영상에 출연한 삼성전자 직업병 피해자인 한혜경씨(맨 왼쪽부터)와 어머니 김시녀씨, 김유경 돌꽃법률사무소 노무사, 삼성반도체 피해자 박민숙씨, SK하이닉스 피해자 김성교씨가 영상을 관람한 뒤 관객들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 유성호
 
"삼성이나 그런 대기업(이미지)을 생각하시면 안 돼요."

이성숙(가명·1961년생)씨가 말했다. 그는 한 반도체 공장 조립공정에서 만 29년 3개월을 근무했다. 한국에는 삼성이나 하이닉스 외에도 많은 중·소규모 반도체 생산공장이 있다. 이씨는 이 중 여러 곳에서 근무한 경험이 있다.

반도체는 대표적인 첨단산업이다. 하지만 이씨가 일했던 곳들은 첨단과는 거리가 멀었다. 규모가 작을수록 더 그랬다. 이씨는 마지막 10년을 근무한 B반도체 생산공장에 대해 "여기는 완전 옛날"이라며 "1970~1980년대 상태라고 생각하면 된다"고 말했다. B반도체는 A반도체의 하청업체다. 이씨는 원청인 A반도체에서 일하다 육아를 이유로 퇴사한 뒤 하청업체인 B반도체에 재입사했다.

2015년 겨울, 한 달 가량 약을 먹었는데도 감기가 낫지 않았다. 얼굴이 누렇게 떴고 일을 하다 코피를 쏟았다. 이상하다고 생각하던 차에 쓰러져 대학병원 응급실로 후송됐다. 대학병원에서는 급성골수성백혈병을 진단받았다. '워낙 건강한 체질'이어서 직전 3년 동안 병원 한 번 간 적 없었던 그였다.

"혹시 벤젠을 다루셨나요?"

이씨의 직업을 들은 대학병원 의사가 이씨에게 물었다. 이씨는 잘 모르겠다고 답했다. 회사는 노동자들이 사용하는 물질의 정확한 이름을 알려준 적이 없다. 그래서 노동자들은 모기에 물렸을 때 소독을 한다며 이소프로필알콜(IPA)를 몸에 바르기도 했다. IPA는 독성이 있는 화학물질로 알려져있다.

의사는 아무래도 산업재해 같다고 했다. 그러고 보니 아픈 사람들이 있었다. 도금실 노동자가 백혈병으로 사망했고 중국으로 파견된 엔지니어도 백혈병으로 사망했다고 들었다. 유방암 진단을 받은 사람도 있었다. 그 의사가 아니었다면 이씨는 산재 신청을 못했을지도 모른다. 한국에서는 직업성 암을 찾아내는 시스템이 사실상 거의 전무한데, 그의 경우 운이 좋아 의료시스템에서 '걸러진' 사례였다.

2019년 1월, 이씨는 산재를 신청했다. 산재 인정은 기대하지 않았다. 삼성전자 반도체 백혈병 피해자로 알려진 황유미씨조차 11년이 지나서야 사과·인정 받았다는 뉴스를 봤기 때문이다. 그러나 역학조사를 실시한 산업안전보건연구원은 이씨의 백혈병이 '산재'라는 의견을 냈다. 역학조사 단계에서 산재를 인정받는 건 매우 드물다. 보통 역학조사 결과는 "위험요소에 노출된 것은 맞지만 그 수준이 낮아 질병과의 인과관계를 인정하기 힘들다"는 식이다. 이씨의 작업환경이 그만큼 위험했다는 의미로 해석할 수 있다.
 
 2018년 3월, 고 황유미씨 11주기 추모 행사·기자회견에서 아버지 황상기씨가 딸 황유미씨의 영정을 들고 발언 중인 모습.
ⓒ 반올림
 
이씨와 최근 화상인터뷰로 만나, 당시 이야기를 들어봤다. 

- 요즘 몸 상태는 어떤가.

"(병이) 올해 다시 재발을 해서 항암치료를 하고 있다. 2017년, 2020년, 2022년에 재발했다. 치료하고 괜찮으면 집에 있다가 재발하면 병원에 오고, 2016년부터 계속 그런 상황이다. 치료가 한 번에 되는 사람도 있는데 저처럼 계속 재발하는 사람도 있다고 하더라."

- 산업재해일 수 있다는 생각을 했나.

"(그땐) 못 했다. 몸이 너무 아프니까 산재인지 뭔지 경황도 없었다. 의사가 산재로 인정받아야지 그나마 보탬이 된다고 해서 어느 정도 몸을 추스른 다음에 신청하게 됐다."

- 일하면서 '이거 위험하겠다' 생각한 적이 있나.

"몰딩 작업을 할 때 에폭시몰딩컴파운드(EMC)를 반도체 기판에 발라서 오븐에서 과자 굽듯이 굽는다. 오븐에 자재를 넣고 빼기 위해 문을 열 때마다 냄새가 확 난다. 작업자가 그 냄새를 다 들이마신다. 그때 '몸에 안 좋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레이저 마킹을 할 때도 위험하다는 생각이 든다. 마킹 작업이 끝나면 장비 안에 재가 많이 떨어져있다. 쇳가루와 플라스틱 조각이다. 사람 몸을 생각하면 청소기 같은 걸로 재를 빨아들여야 한다. 그런데 '에어'를 사용해서 재를 그냥 날려버린다. 그러면 작업자들이 흡입할 수밖에 없다. 옷에도 쇳가루가 막 붙어있었다."

- 오븐을 얼마나 수시로 여닫았나.

"기본으로는 125도 온도에 90분이지만, 횟수를 딱 집어서 말하기가 어렵다. 작업에 따라서는 10분 후에 꺼내는 것도 있다. 사람 별로 작업 속도도 다르기 때문에 공장 내에서는 오븐을 계속 열고 닫는다고 생각하면 된다. 오븐을 여닫을 때만이 아니라 뜨거운 자재를 꺼내서 식히는 동안에도 냄새가 난다."

- 화학물질도 직접적으로 많이 다뤘나

"IPA와 아세톤을 많이 사용했다. 부품이나 작업공간을 닦을 때 사용했고 몸에 사용하기도 했다. 에폭시 작업을 하다보면 가운이나 손에 묻는다. 그걸 닦아낼 수 있는 게 IPA뿐이다. 다른 걸로는 닦이지 않는다. 그냥 공업용 알코올인 줄 알고 모기 물렸을 때도 소독을 한다며 IPA로 닦았다. 이소프로필알코올이라는 정식 이름은 노무사로부터 처음 들었다."

보호장구 착용 '권유'조차 없었던 회사... "주6일 근무인데도 임금은 최저"
  
이씨가 맡았다는 냄새에는 벤젠과 포름알데히드가 포함돼있었을 것이다. 에폭시 수지가 가열되면 벤젠이나 포름알데히드가 발생하는데, 고용노동부 산하 산업안전보건연구원은 2012년 이를 백혈병 유발요인이라고 경고한 바 있다. 즉 둘 모두 급성골수백혈병과 관련한 직업적 유해요인인데, 30년 동안 이씨는 이런 설명을 들어본 적이 없다. 심지어 팀장으로 일할 때는 '안전감독관'의 질문에도 답한 적이 있지만, 이런 내용은 몰랐단다.

구체적인 위험성을 몰랐기에 보호장구가 얼마나 중요한지도 알지 못했다. 회사는 보호장구 착용을 강제는커녕 권유하지도 않았다. 한번은 회사에서 마스크를 나눠줬다. 필터조차 없는 나일론 마스크였다. 이씨는 "마스크가 얼마나 헐거웠던지 한 동료는 김치 담글 때 거름망으로 썼다고 했다"고 말했다. 대기업은 보호장구를 '비치'라도 해두지만, 작은 기업에서는 그런 시늉도 하지 않았던 것이다.

- 대기업이 아닌 반도체 공장에서, 하청 노동자가 마주하는 작업환경은 어떠한가.

"삼성 같은 회사에 비하면, 여기는 완전 옛날에 머물러 있다. 개선이 됐다고는 하지만 여전히 1970~1980년대 상태라고 생각하면 된다. 그 당시 쓰던 장비가 아직도 있다. 오래된 장비는 사람이 직접 작업을 수행한다. 최신 장비는 포팅(몰딩과 유사한 작업으로 반도체 칩에 에폭시 캡을 씌우는 작업)을 자동으로 한다. 트림폼(반도체 칩을 개별 단위로 자르고 선을 구부리는 작업)도 지금은 자동이지만 예전에는 반자동이라서 사람 손이 잘리고 그랬다. 원청인 A반도체도 삼성 같지는 않지만 나름 첨단이다. 우리보다는 사람이 직접 하는 일이 적다."

- 1979년부터 반도체 공장에서 근무했다. 공장에는 어떤 변화가 있었나.

"당시와 비교해보면 많이 자동화 됐다. 자질구레한 공정이 없어지고 테스트 위주로 바뀌었다. 또 당시에는 작업복이라는 개념 자체가 없었다. 윗옷만 하나 걸쳐 입고 모자도 안 썼다. 지금은 모자를 포함해 (전신을 다 둘러싸는) 일체형 작업복을 입고 일한다. 마스크도 착용한다."

- 변하지 않은 것은 무엇인가.

"사장이나 관리자가 옛날 분들이라 인식이 고루하다. 1970~1980년대 인식 그대로다. 작은 회사들은 지금도 주 6일, 주 7일 근무를 한다. 생산량이 안 나오면 밀어붙이면 된다는 인식도 여전하다. 최근까지도 생산량 때문에 밥도 먹지 못한 적이 많다."

- 과거보다 더 안 좋아진 부분도 있나.

"최근 5년 사이 교대조 인원이 절반으로 줄었다. 장비가 자동화되서 그런 것도 있지만 원청이 계속 돈을 삭감하니까 인원을 줄인다. 입사할 당시 직원이 400명이었는데 퇴사할 때에는 200명도 안 됐다. 노동강도가 엄청 세졌다. 그런데 월급은 최저임금 수준이다."

첨단산업 반도체라지만, 노동환경은 구시대적

오래된 장비, 고루한 경영진의 인식, 주6일 근무, 높아진 노동강도, 최저임금… 세상은 변했고 반도체는 첨단산업이라는데 이씨의 노동환경만 과거에 머물러 있었다. 이런 와중에 그는 팀장으로 '승진'하며 생산량 관리 등 더 높은 노동강도와 스트레스에 노출됐다.

약 30년간 이어진 교대·야간근무도 이씨의 면역력에 영향을 미쳤을 것이다. 초반에는 6개월 단위로 시간대가 바뀌었지만 퇴사할 즈음에는 1개월 마다 시간대가 바뀌었다. 몸이 적응하지 못했고 체력이 달리는 것이 느껴졌다. 야간근무를 수반하는 교대근무는 그 자체로 국제암연구소가 지정한 발암요인이다.

역학조사를 실시한 산업안전보건연구원은 2021년 12월 17일 이씨가 벤젠과 포름알데히드에 노출된 수준이 높지는 않았을 것으로 추정된다면서도 이씨의 백혈병을 산재로 인정했다. '반도체 공장 노동자에 대한 10년 추적 역학조사' 결과 통계적으로 유의미한 증가가 확인된 바 있어서다. 고용노동부 산하 한국산업안전보건공단이 삼성전자·SK하이닉스 등 반도체 기업 6곳의 전현직 노동자 20만1057명을 10년간 추적 조사했고(2009~2019) 2019년 5월 이를 공식 발표했는데, 당시 이들의 혈액암 사망 위험이 전체 노동자보다 최대 3.7배 높다는 사실이 확인됐었다.

산업안전보건연구원은 또, 첨단산업의 직업적 유해요인과 그로 인한 건강영향이 충분히 알려져 있지 않아, 확인되지 않은 요인에 의해 백혈병에 걸릴 가능성이 있다고 봤다. 이씨가 장기간 반도체 산업에 종사한 점 역시 판단의 근거가 됐다. 이씨의 경우 역학조사 단계에서 산재라는 판단이 나와 근로복지공단 질병판정위원회 과정은 생략됐다. 이씨에게 추가로 물었다.

- 동료들에게 산재라고 알렸나.

"일 때문에 아프다는 말은 안 했다. 다만 오븐 넣을 때 숨을 쉬지 말아라, (오븐에서 꺼낸 반도체 기판이) 식기 전에는 정리를 하지 말아라, 몰랐는데 IPA가 되게 위험한 물질이니 안 쓸 수는 없지만 냄새를 들이마시지는 말아라, 그 정도만 이야기를 했다."

- 다니던 회사에 바라는 점이 있다면.

"안전에 문제가 있다는 건 알겠는데, 노동자들이 어떻게 해야 하는지 모르겠다. 저희가 하는 일은 첨단 반도체가 아니라 바이어가 '이런 것 좀 해달라'고 하면 '끼워팔기' 용도로 만드는 게 많았다. 그러니까 설비에 투자를 안 한다.

월급 좀 올려주고 주 5일 근무가 됐으면 좋겠다. 반도체 공장이라도 하청 회사는 월급이 거의 최저임금이었다. 게다가 회사에 일이 없을 때는 무급휴가 처리를 했고, 해고도 쉬웠다. 이런 게 고쳐졌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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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반올림에서 기획하고, 이하늬 작가가 썼습니다. 앞으로 반도체 공장 노동자들 인터뷰 등을 연재할 예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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