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포]"회사 생존해야 임금도 올려" 勞勞 극한 대립하는 거제(종합)
인근 상권 파업으로 초토화
"하청 직원과 동료의식 절실"
하청 노사 네차례 교섭 결렬
임금인상률 등은 의견 접근
손해배상·고용승계 합의 난항
인근상권들 파업에 휘청
"서로 상처 커, 극복 시간 걸릴듯"
산은 관계자 "장기화땐 회생 절차 신청"
자금난 오면 추가지원 불가 경고
[아시아경제 정동훈 기자] "회사가 생존해야 임금도 올릴 거 아입니까. 함께 일하는 노동잔데…참 지도 원망시럽고 한탄스럽십니다."
21일 저녁 경남 거제 대우조선해양 옥포조선소 인근 상가 앞에서 만난 대우조선 생산직 직원 서모씨(39)는 한숨을 내쉬며 답답함을 토로했다. 그는 하청 노동자들과의 동료 의식을 강조하면서도 파업으로 인해 ‘공멸’이 우려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그는 "원청 직원들도 5~6년간 임금 올라가는 꼴을 못봤다"면서 "이제 조금 일감이 늘어나고 인력도 많이 필요한 데 이렇게 작업을 중단시켜 버리면 피해의 책임은 누가 지냐"고 울분을 토했다.
조선업 산실에서 '유령도시'된 거제…'공권력 투입'거론된 도크장은 긴장감
실제 옥포조선소를 둘러싸고 형성된 아주동·옥포동 인근 상권은 파업 이후 초토화됐다. 삼삼오오 모여 저녁을 함께 먹는 근로자들도 있었지만 왁자지껄한 웃음소리는 물론 흔한 상가의 노래 소리조차 들리지 않았다. 한 자영업자는 조선업의 산실로 불리던 거제를 ‘유령도시’에 빗댔다.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민주노총) 금속노조 거제·통영·고성 조선하청지회 조합원 7명이 점거 농성을 벌이고 있는 옥포조선소 1도크(선박건조장)에는 긴장감이 흘렀다. 하청지회가 점거한 옥포조선소 1도크 선박 바닥 면에는 1㎥ 규모의 철제 구조물에 스스로 갇혀 있는 유최한 하청지회 부지회장이, 주변으로는 6명의 노동자들이 농성을 이어오고 있었다. 하청지회는 7명이 선박을 점거하고 있는 1도크 주변에서 주·야 교대로 수십명이 농성장을 지키고 있다.
대우조선해양 거제통영고성 조선하청지회 노조원 7명이 21일 오후 경남 거제 대우조선 옥포조선소 1도크 내에서 건조 중인 원유운반선을 점거 중인 상태에서 식사를 하고 있다. 사진=정동훈 기자
한낮 30도를 훌쩍 넘는 후덥지근한 날씨와 장마 기간 폭우까지 덮치는 가운데 지난달 18일 이후 35일째 점거 농성을 이어가는 조합원들의 표정과 목소리에선 피곤이 느껴졌다. 정부가 이번 파업을 불법으로 규정하고 공권력 투입을 시사한 이후 현장을 지키는 경찰력도 수백명으로 늘어난 상태다. 현장 구조는 경찰의 해산이 실행되더라도 물리적 충돌이 불가피해보였다. 수십미터 깊이의 도크를 사이에 두고 원유운반선에서 점거 농성 중인 조합원들에게 접근하기 위해서는 좁은 난간과 계단 등을 거쳐야 한다. 농성자들이 가연성 물질인 시너 등을 준비해 물리적 충돌도 우려된다.
하청 노사는 전날만 네차례 교섭에도 합의 무산…"파업 손해배상 청구 하지말라" 요구에 사측 난색
이런 가운데 하청 노사는 전일 네차례 교섭에도 합의에 이르지 못했다. 노사는 22일 오전에도 다시 협상을 이어가고 있다. 당초 평행선을 걷던 노사는 임금 인상률 등에서 의견 접근을 이룬 것으로 알려졌다. 남은 협상 쟁점은 손해배상 청구와 폐업한 하청 소속 노조원들의 고용 승계 문제다.
당초 파업의 주요 배경인 임금 문제와 관련해서는 전날 마라톤협상 끝에 사측이 제시한 '4.5% 인상안'을 하청노조가 받아들이기로 하면서 타협점을 찾았다. 양측은 현재 손해배상 청구 문제를 놓고 협상에 난항을 겪는 것으로 알려졌다. 사측은 불법 파업에 따른 책임을 묻지 않으면 나쁜 선례로 남을 수 있고, 사측이 업무상 배임죄로 처벌받을 수 있다고 강조하고 있다.
노동계는 손해배상 청구는 사용자가 근로자를 억압하기 위한 악질적인 수단이라고 주장한다. 손해배상과 관련한 규정은 민법 제750조에 나와 있다. '고의 또는 과실로 인한 위법행위로 타인에게 손해를 가한 자는 그 손해를 배상할 책임이 있다'가 그것이다.
하청 노사의 협상 시간도 얼마 남지 않았다. 23일부터는 조선소 전체가 휴가 기간에 접어들기 때문이다. 이날 협상을 마무리하지 못하면 노사는 파업 장기화의 ‘늪’에 빠져들 수밖에 없다. 하청지회와 마찬가지로 민주노총 금속노조 소속인 대우조선지회는 지회의 금속노조 탈퇴 여부를 묻는 투표를 이날 마무리한다. 전날까지 이미 조합원의 60% 이상이 투표를 완료한 것으로 나타났다.
옥포조선소 인근 상권들은 파업 이후 휘청이고 있다. 조선소 인근 옥포동과 아주동 인근 상인들은 코로나19 확산에 손님이 줄어든 상태서 파업으로 엎친 데 덮쳤다며 한탄했다. 건물 곳곳에 ‘장기간 파업사태 지역경제 파탄난다’ 등의 현수막들이 걸려 있었고 셔터를 내린 곳도 보였다. 아주동 소재 일식당을 운영하는 정정기 대표는 "파업을 시작하기 전인 두 달전과 비교해 매출이 50%이상 떨어졌다"고 토로했다. 실제 저녁식사가 한창일 오후 7시 30석 이상인 식당의 손님은 두명뿐이었다. 정 대표는 "일감이 줄자 오후 3시부터 퇴근하는 직원들이 상당수"라며 "파업 장기화로 조선소 내 분위기가 험악해지다보니 회식은 물론 가족들의 외식도 사라지는 분위기"라고 한숨을 내쉬었다. 옥포동 인근에서 치킨집을 운영 중인 최 모씨는 "다같이 고생하는 사람들(원·하청 근로자)끼리 갈라져 싸운 시간이 2개월이나 지났다"며 "서로 할퀸 상처들이 너무 커 극복하는 것도 시간이 걸릴 것"이라고 고개를 저었다.
대우조선해양의 하청 노조의 파업이 장기화할 경우 대우조선이 회생절차 신청 수순을 밟을 수밖에 없을 것이라는 경고가 채권은행에서 나왔다. 대우조선해양의 주채권은행인 산업은행 관계자는 이날 "대우조선해양 하청 노조의 파업이 장기화하면 정상적인 부채 원리금 상환에 문제가 생길 수 있다"며 "조업차질에 따른 자금난에 대해 채권단은 추가 지원을 할 수 없다는 게 기본 원칙"이라고 밝혔다.
대우조선해양 하청 파업 50일째인 21일 오후 경남 거제시 대우조선해양 옥포조선소에서 홍지욱 금속노조 부위원장(오른쪽)과 이김춘택 조선하청지회 사무장이 협력사 대표 등과 협상을 진행하던 중 회의가 정회되자 머리를 만지고 있다. [이미지출처=연합뉴스]
파업 장기화로 대우조선해양이 자금난에 처할 경우 이전처럼 채권단 관리하에 추가 자금지원을 받을 수 없다는 ‘경고의 메시지’로 풀이된다. 채권단이 대우조선해양의 자금 지원 요청을 거부하면 대우조선은 법원에 회생절차를 신청할 수밖에 없게 된다. 법원은 계속기업가치와 청산가치를 비교해 사업을 계속할 때의 가치가 청산할 때의 가치보다 더 크다고 판단되면 회생절차를 개시한다. 그러나 대우조선해양의 경우 청산 절차를 밟을 가능성에 무게를 두는 시각이 많다.
정동훈 기자 hoon2@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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