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기의 K-반도체]고부가 메모리·파운드리 재편..환상의 '민관합동' 총력전 펴야

문채석 2022. 7. 22. 1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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③반도체 전쟁 승자 되려면
삼성·SK 등 업계, 부가가치 높은
메모리 신제품 개발로 활로 모색
정부, 세제·인력·인프라 등
규제 한꺼번에 풀어줘야
용적률 완화·세제 개편 긍정적

[아시아경제 문채석 기자]

"민간이 끌고 정부가 민다."

반도체야말로 윤석열 정부의 '민관 합동' 철학이 구현돼야 하는 전장(戰場)이다. 정부가 전일 '반도체 초강대국 실현'을 위해 전폭적인 세제 혜택과 인재양성안을 발표한 것도 기업들이 공언한 5년간 340조원 투자를 적극 뒷받침하겠다는 의지로 읽힌다.

전문가들은 최근 'R(Recession·경기 침체)의 공포'로 호황을 맞았던 반도체 시장에 치열한 생존게임이 재연될 가능성이 높은 만큼 기업과 정부가 '위기를 기회로' 만들 수 있는 투트랙 전략을 세워야 한다고 강조한다. 기업의 경우 부가가치가 높은 D램, 낸드플래시 등 메모리 반도체 양산과 함께 파운드리(반도체 위탁생산) 사업 재편이 열쇠가 될 것이란 제언이다. 정부는 단기·중장기 정책을 분류해 인력·세제·인프라 등 기업 경영에 영향을 미치는 요소를 한꺼번에 지원해야 한다는 의견에 힘이 실린다.

삼성·SK, 신제품 개발·사업 재편 사활

삼성전자가 개발한 업계 최고 속도 GDDR6(그래픽스 더블 데이터 레이트6) D램.(사진제공=삼성전자)

'K-반도체'가 빙하기를 맞았다는 우려가 나오는 이유는 단가 하락에 따른 수익성 악화 때문이다. D램, 낸드플래시 등 주요 메모리 반도체 수요 감소,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등 공급망 리스크 확대 등 경기 불확실성이 커진 게 원인이다. 개별 기업이 풀기 어려운 난제다.

이에 업계는 부가가치가 높은 메모리 신제품 개발로 활로를 모색 중이다. 과거엔 미국 마이크론 외에 일본(엘피다)·대만(난야)·독일(키몬다) 등 경쟁 업체가 많아 공급을 늘려 가격을 떨어뜨려 경쟁 기업을 제압하는 '치킨게임' 전략을 쓸 수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고수익·고품질 제품을 쏟아내 최대한 많은 고객을 이끄는 것이 승부처라는 판단이다.

일례로 삼성전자가 지난 14일 세계 최초로 개발한 EUV 10나노급 3세대(1z) 16Gb GDDR6(그래픽스 더블 데이터 레이트6) D램이 대표적이다. 3나노 D램은 기존 18Gbps보다 30% 이상 빠른 24Gbps 속도로 풀HD급 영화 275편을 1초 만에 처리할 수 있다. PC, 노트북, 게임 콘솔 그래픽 성능 고도화는 물론 고성능 컴퓨팅(HPC), 전기차, 자율주행차 등에도 두루 쓰인다. 삼성전자 관계자는 "메모리 사업은 서버를 중심으로 영위하면서 수요에 적극 대응할 것"이라며 "서버 및 고사양 제품믹스 운영 기조를 유지하는 가운데 DDR6 등 공급 확대를 통해 신규 수요에 적극 대응할 방침"이라고 말했다.

신제품 개발만이 능사는 아니다. 한국은 팹리스(설계), 소재·장비, 후공정 패키징 등 산업 생태계가 미국·대만 등에 비해 취약해 삼성, SK 같은 개별 종합 반도체 기업 실적에 의존해야 하는 형편이다. 이 업체들이 단기간에 설계 능력을 갖추기 어려운 현실을 고려해 글로벌 빅테크 고객사가 주문하는 반도체를 대량으로 찍어내는 파운드리에서 승부를 보는 수밖에 없다는 게 업계의 진단이다. 시장조사업체 트렌드포스에 따르면 1분기 세계 파운드리 시장 점유율은 1위 TSMC 53.6%, 2위 삼성전자 16.3%다. 삼성이 지난달 30일 반도체 칩 밀도를 높이는 최첨단 기술인 '3나노 게이트올어라운드(GAA)' 양산 체제를 TSMC 등보다 먼저 확보했다고 발표한 만큼 TSMC 등이 공정 수준을 따라잡기 전에 최대한 점유율을 빼앗아와야 한다.

'반도체초강국' 천명한 정부…"확실히 풀어준다"

[이미지출처=연합뉴스]

분명한 사실은 미국 상원이 지난 19일(현지시간) 1차 의결한 해외 반도체 기업 520억달러(약 68조원) 지원 법안이 가리키는 지점이 '파운드리'란 점이다. 자국 기업인 인텔을 빼면 파운드리 사업을 할 역량이 되는 기업이 한국 삼성과 대만 TSMC뿐인데 하나같이 중국 근처에 있어서 미국으로 공장을 끌어오려 하는 것이다. 한국으로선 중국을 무시하기도 어렵다. 삼성전자는 시안에서, SK하이닉스는 우시에서 각각 사업 중이다. 권오경 한국공학한림원 회장은 "한국은 중국과 어떻게 관계를 가져갈 지 고민해가면서 미국과 협업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반도체 기업들은 독자적인 기술 개발, 사업 전략만으로는 미국·대만 업체를 제압하기 어렵다고 토로한다. 세계적인 인플레이션(물가 상승)과 금리 급등에 따른 자금 조달 압박이 거세진 데다 미·중 같은 강대국이 자국의 영향력 아래에 공급망을 가둬두려 하는 점 등 때문이다. 이런 까닭에 정부가 세제, 인력, 인프라 규제를 한꺼번에 풀어줘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따로국밥'으로는 효율성이 떨어진다는 것이다.

정부가 이번 주 발표한 10년 간 15만명 인재 양성(인력), 용적률 상한선 350%에서 490%로 완화(인프라), 대기업 세액공제율 6~10%에서 8~12%로 2%포인트 인상(세제) 대책 등은 긍정적이란 평가다. 용적률 규제가 완화될수록 같은 부지에 더 높은 건물을 쌓을 수 있어 생산 능력 향상에 도움이 된다. 세제 혜택이 늘면 기업 자금 융통도 쉬워진다. 다만, 단발성이 아닌 꾸준한 정책 지원이 있어야 기업 경영 전략 수립에 도움이 된다는 게 시장의 목소리다. 업계 관계자는 "대규모 자본이 들어가는 반도체 사업에서는 경영 판단 '타이밍'이 가장 중요하다"며 "정부의 '패키지 지원'은 경쟁력 확보에 필요한 '방향성'을 기업이 판단하는 데 긍정적으로 작용한다"고 했다.

문채석 기자 chaeso@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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