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역 세상](41) "월클은 어떻게 탄생하는가"

한우덕 2022. 7. 22. 1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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욕심 날만도 했다. 고향 춘천에 아들 이름의 거리가 조성된다니 말이다. '손흥민 거리(路)'. 그러나 아버지는 단호하게 거절했다.

"하지 마세요. 은퇴하면 누가 그 이름이나 불러주겠습니까…."

아버지의 생각은 간단하고 분명했다. '오로지 축구에만 성심(誠心)을 다해라. 그 외의 것에는 눈도 돌리지 마라. 욕심(欲心)이 생기는 순간, 영광은 무너진다.' 아버지는 그런 마음으로 아들을 키웠고, 아들은 '월클'로 답했다.

손웅정-손흥민 부자(父子) 얘기다. 축구 선생님과 제자이기도 했다. 지금은 멘토와 멘티로 활동하고 있다.

사장과 직원, 팀장과 팀원, 교사와 학생, 더 나가 국가 리더와 국민…. 세상의 모든 상하 관계가 손웅정-손흥민 같으면 얼마나 좋을까. 오로지 성심만 있을 뿐 욕심이 사라진 관계 말이다.

'오로지 축구에만 성심(誠心)을 다해라. 그 외의 것에는 눈도 돌리지 마라. 욕심(欲心)이 생기는 순간, 영광은 무너진다.' 아버지는 그런 마음으로 아들을 키웠고, 아들은 '월클'로 답했다.

그게 바로 주역 25번째 괘 '천뢰무망(天雷无妄)'이 제시하는 세계다. 하늘을 상징하는 건(乾, ☰)이 위에, 우레로 표현되는 진(震, ☳)이 아래에 있다. 하늘에서 벼락이 치는 형상이다.

'이 천벌을 받을 놈!!'

욕 중에서도 가장 심한 욕이다. 하늘은 몹쓸 짓을 한 자에게 벌을 내린다. '하늘의 뜻'을 어겼기 때문이다. 수단은 벼락이다. 번개가 번뜩이고, 천둥이 대지를 흔들면 죄지은 자들은 벌벌 떤다. 그게 주역의 시대 하늘과 우레의 의미였다.

한자 '妄(망)'은 정신이 가지런하지 못해 분열된 것을 말한다(妄, 亂也). 망령(妄靈)이요, 망상(妄想)이다. 허망(虛妄)으로도 표현된다. '무망(無妄)'은 그런 망령됨이 없으니 '건전하고 바른 정신'을 뜻한다.

주역 해석의 대가 송(宋)시기 학자 정이천(程伊川)은 이렇게 괘를 설명한다.

動以天, 故無妄, 動以人欲則妄.

'하늘의 뜻에 따라 움직이니 무망이다. 사람의 욕심으로 움직이면 망령이다'

'하늘의 뜻=무망, 사람의 욕심=망령', 간단명료하다. 하늘의 뜻과 무망은 그렇게 만난다. 괘 이름이 왜 '무망'인지를 알 수 있다.

그래도 의문은 남는다. '하늘의 뜻'이 곧 건전한 정신은 아닐 것이기 때문이다. '건전한 정신'은 하늘의 뜻을 실천하기 위한 조건일 뿐, 그 실체는 아니다.

그렇다면 다시 물어야 한다. '하늘의 뜻'은 무엇을 말하는 걸까. 그걸 알아야 천벌을 피하고, 천복(天福)을 받을 수 있을 것 아닌가.

공자(孔子)의 손자인 증자(曾子)가 쓴 논문 '중용(中庸)'으로 가보자. 중용은 '하늘로부터 부여받은 것을 일컬어 성(性)이라 한다(天命之謂性)'는 구절로 시작한다. 태어날 때부터 가진 고유의 자질을 '性(성)'이라 한다는 얘기다. 천성(天性)이다.

중용은 그 천성을 가장 잘 발현할 수 있게 하는 게 바로 '지극한 정성'이라고 말한다. 중용 제22장은 이렇게 쓰고 있다.

唯天下至誠, 爲能盡其性

'오로지 천하의 지극한 정성만이 능히 그 성(性)을 다할 수 있다.'

결국 '誠(성)'이다. 오로지 정성을 다하는 것만이 하늘로부터 부여받은 나의 '性(성)'을 발현하고, 하늘의 뜻에 따르는 길이다. 지극한 정성으로 천성을 실현하면 결국 지극한 선(至善)의 경지에 이를 수 있다.

하는 일 하나하나에 정성(精誠)을 다하고, 성심(誠心)으로 주변 사람을 대하고, 주어진 일 성실(誠實)히 수행하고… '무망'의 세계에서 움직이는 사람의 특성이다. 지성감천(至誠感天), 지극한 정성에는 하늘도 감동하게 되어 있다. 아들 잘 되라고 정한수 떠놓고 비는 어머니의 마음이다.

주역은 역시 어려워…. 아니다. 쉽다. '손흥민 거리'에 욕심을 내면 '妄(망)'의 길로 빠져드는 것이요, 이를 거부하고 오로지 축구에만 정성을 다하면 무망의 길을 걷는 것이다. 손웅정-손흥민 부자는 지금 '무망의 세계'에서 뛰고 있다.

혜성처럼 나타난 스타? 그런 건 없다. 오로지 지극한 정성이 있었을 뿐이다(손웅정은 이를 '기본기'로 표현했다). 부자의 지극한 정성이 손흥민의 천부적 재능(性)을 깨웠고, 그를 월클로 키웠다. 월클이야 말로 '지극한 선(至善)'의 경지가 아니고 무엇이랴.

주역 25번째 괘 '천뢰무망(天雷无妄)'은 하늘을 상징하는 건(乾)이 위에, 우레로 표현되는 진(震)이 아래에 있다. 하늘에서 벼락이 치는 형상이다. / 바이두

'천뇌무망' 괘는 주역 64개 괘 중에서도 좋은 괘에 속한다. 그러나 조건이 있다. 괘의 전체 뜻을 설명한 괘사(卦辭)는 이렇게 말한다.

其匪正有眚, 不利有攸往

'바르지 못하면 재앙이 생긴다. 멀리 나가지 못한다.'

'바름(正)'이다. 무망의 세계에서 남기 위해서는 정도를 지켜야 한다. 조금 잘 나간다고 마누라 바꾸고, 친구 유혹에 넘어가 술집 드나들고, 돈 욕심에 본업은 뒤로하고… 그러다 한 방에 훅 간 명사들이 수두룩하다.

거듭 강조하거니와 무망의 세계에는 오로지 '지극한 정성'이 있을 뿐이다. 사람의 욕심이 개입하는 순간 '레드카드'를 받아 퇴출당한다.

아버지의 정성은 아들 손흥민에게 그대로 이어졌다. '나의 축구는 아버지가 심혈을 기울여 만들어낸 작품입니다.' 겸손했다. 성심으로 주위 사람들을 대했고, 성실하게 경기에 임했다. 팬 서비스에도 정성을 들인다. 게다가 그는 축구가 좋았다. 천성(天性)이었다. '아버지의 정성과 아들의 천성', 준비된 월클이었던 셈이다.

'천뢰무망' 괘에 손흥민 있다!

무슨 소리? 괘에서 '소니'를 찾아보자.

전체 괘에서 위의 건(乾, ☰)은 강건함을, 아래 진(震, ☳)은 움직임을 각각 상징한다. 강건한 하늘과 역동적인 우레다. 아래 진(震, ☳)괘의 주인은 맨 아래 양효(陽爻)다(주역에서는 이를 '초구〈初九〉'라고 한다). 움직임을 추동하기 때문이다.

하늘의 정성을 받아 움직임을 이끄는 존재, 아버지의 정성을 듬뿍 받아 마음껏 활동 영역을 넓혀가는 아들, 바로 손흥민이다.

無妄, 往吉

'망령됨이 없으니, 나아가면 길하다.'

바로 그 '손흥민 효'를 설명하는 효사(爻辭)다. 망령됨이 없는 무망의 상황이라면 무엇을 하든 길하다는 뜻이다. 그는 세계 최고의 축구리그에서도 절대 뒤지지 않는다. '무망'하니까 거침이 없다. 오늘보다는 내일이 더 기대된다. 3000년 전 주역은 괘 가장 아래 효에 '소니'를 숨겨놓고 있었다.

분위기를 바꿔보자. 인간은 왜 허망(虛妄)에 빠지게 될까. 두 번째 효사는 이렇게 말한다.

不耕獲, 不菑畬, 則利有攸往

'씨 뿌릴 때 수확을 생각하지 말고, 불모의 땅 개간하면서 3년 후 옥토를 꿈꾸지 마라. 그래야 앞으로 나가는 데 유리하다.'

봄씨앗 뿌릴 때는 어떻게 하면 씨앗 잘 뿌릴지 만을 생각해야 한다. 그러나 많은 사람은 가을에 얼마나 열매를 맺을지, 그 열매를 팔면 얼마나 벌지, 그 돈으로 뭘 살지 등을 먼저 꿈꾼다. 욕심이요, 망상(妄想)이다. 땅을 개간할 때도 마찬가지다. 오로지 어떻게 하면 옥토를 만들 수 있을지에만 집중해야 한다. 지금 하는 일에 정성을 다해야 한다.

"흥민이가 어렸을 때부터 함께 축구를 하면서 축구 선수로 성공하거나 프로 선수가 돼서 어느 정도 돈을 벌 것이라는 생각은 결단코 해본 적이 없다. 축구 선수로 경기장에서 제 기량을 마음껏 뽐내는 게 가장 큰 행복이기 때문이다.”('모든 것은 기본에서 시작한다.', 손웅정)

손웅정은 '흥민이 잘 키워 프로선수 만들고, 내가 못한 꿈을 이루게 하겠다'라는 생각은 하지도 않았다. 그냥 아들이 좋아하는 축구 잘하도록 도와주자는 생각뿐이었다. 그게 성심(誠心)이다. 프로선수로 키워 내가 못한 부와 영광을 누리도록 하겠다는 건 인간의 욕심이다. 성심이 욕심을 이겼다.

나는 과연 성심으로 자식을 이끌었는가… 돌아보게 된다.

무망의 세계에는 오로지 '지극한 정성'이 있을 뿐이다. 사람의 욕심이 개입하는 순간 망령의 길로 타락한다. /바이두

어찌 손웅정-손흥민 부자만의 이야기이겠는가. 학교 선생님과 제자, 회사 사장과 직원, 팀장과 팀원, 더 나가 국가 리더와 국민에게도 적용되는 말이다. 성심(誠心)으로 이끌고, 성실(誠實)하게 실력을 축적해야 한다. 그럴 때라야 월클 선수가 나오고, 월클 과학자가 나오고, 월클 기업이 나고, 국가도 월클이 된다.

손웅정이 '손흥민 거리'에 반대한 것은 두 부자가 앞으로도 오랫동안 '무망의 세계'에서 살아갈 것을 웅변하고 있다. 한국 축구에 큰 복이다.

한우덕

한우덕 기자/차이나랩 대표 woodyha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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