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리 멈추려 식사 거부하는 여고생"..日문학계 여성작가 붐 [도쿄B화]
■ 이영희의 [도쿄B화]
「 ※우리와 비슷하면서도 너무 다른 일본. [도쿄B화]는 사건사고ㆍ문화콘텐트 등 색다른 렌즈로 일본의 뒷모습을 비추어보는 중앙일보 도쿄특파원의 연재물입니다.
」
20일 일본 아쿠타가와(芥川) 문학상 수상작으로 선정된 다카세 준코(高瀬隼子·34) 작가의 '맛있는 밥을 먹을 수 있도록'은 같은 직장에서 일하는 두 여성의 이야기입니다. 연약함을 부각해 늘 남성 동료의 도움을 받는 아시카와와 자신의 일은 알아서 척척 해내는 오시오의 미묘한 관계가 핵심이죠. 다카세 작가는 실제 직장 생활을 하며 소설을 쓰고 있는데, 10년차 여성 직장인으로서 겪는 '열 받는' 경험들이 소설을 쓰게 한 원동력이었다고 말합니다.
일본 소설가 아쿠타가와 류노스케(芥川龍之介·1892∼1927)를 기리기 위해 제정된 아쿠타가와상은 일본의 문학 신예들에게 주어지는 최고의 상으로 불리죠. 1935년 제정돼 매회 발표 때마다 화제에 오르지만 올해는 더 큰 관심이 모아졌습니다. 아쿠타가와상 87년 역사상 처음 후보에 오른 5명이 모두 여성 작가들이란 이유였죠.
일본 언론들은 '문학계 여성 약진'이라며 앞다퉈 기사를 쏟아냈지만, 일본 문학계에서 여성들의 활약이 눈에 띄기 시작한 건 최근 일은 아닙니다. 아쿠타가와상만 해도 1980년대까지는 수상자 중 남성이 80%를 차지했는데, 90년대 이후로는 남녀 수상자가 거의 반반에 달하고 있죠. 2020년 이래 수상자 총 7명 중 5명이 여성이었습니다(한해 두번 시상). 또 다른 유명 문학상인 나오키(直木)상의 경우에도 이미 2019년에 후보자 6명 전원이 여성이라는 이유로 화제가 됐습니다.
여성들이 느끼는 '위화감'에 주목
노벨문학상을 받은 가와바타 야스나리(川端康成), 오에 겐자부로(大江健三郎), 그리고 현재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일본 작가인 무라카미 하루키(村上春樹)까지 일본 문학은 오랜 기간 남성 작가들의 무대였습니다. 여성들이 자신들의 이야기를 글로 쓰고, 좋은 평가를 받게 된 건 1990년대부터라고 전문가들은 말합니다.
산케이신문에 따르면 문예평론가 사이토 미나코(斎藤美奈子)는 『일본의 동시대 소설』이란 책에서 90년대를 '여성 작가의 시대'라고 이름 붙이며 이렇게 설명했습니다. 80년대까지 수많은 실험을 거치며 문학계에는 '더 이상 쓸 것이 남아있지 않다'는 이야기가 나왔다고 하죠. 하지만 그것은 남성 작가들만의 이야기로, 그때까지도 유형 무형의 벽에 부딪히며 살아오던 여성들에겐 '아직도 글로 쓰여지지 않은 엄청나게 많은 이야기가 남아있었다'는 겁니다.
이번 아쿠타가와상 후보에 오른 소설들의 경우도 그렇습니다. 도키모리 에이(年森瑛)의 'N/A'란 소설은 몸에서 피가 나오는 게 싫어서 생리를 멈추기 위해 식사를 거부하는 여고생의 이야기입니다. "내 치마 괜찮아?", 생리 중인 여학생들이 서로 나누는 이런 대화가 여자들만 아는 어떤 공통의 감성을 건드립니다. 스즈키 료미(鈴木凉美)의 '기프티드'는 술집에서 일하며 생계를 유지하는 딸과 늙고 병든 엄마의 애증 관계를 리얼하게 그려 호평을 받았습니다.
일본 언론들은 '위화감(違和感)'이라는 표현을 씁니다. '조화되지 못하는 어설픈 느낌'이란 뜻인데요. 남성들이 겪는 성취와 좌절과 희망과 절망이 이미 문학에서 충분히 다뤄졌다면, 여성들이 가정과 사회 속에서 느끼는 '위화감'은 아직 폭넓게 공유되지 못했다는 것. 그래서 많은 여성들이 자신의 이야기를 하기 위해 문학에 뛰어들고, 또 다른 여성들이 소설을 읽으며 공감과 위안을 얻고 있다는 해석입니다.
일본서도 베스트셀러 된『82년생 김지영』
문학상 수상작을 심사하는 이들 중 여성이 늘어났다는 것도 중요한 이유로 꼽힙니다. 아쿠타가와상 선정위원회에 여성 심사위원이 포함된 것은 1987년이 처음이라고 하죠. 올해는 선정위원회 위원 9명 중 4명이 여성이었습니다.
한국에서 밀리언셀러였던 조남주 작가의 『82년생 김지영』은 2018년 일본에 소개돼 20만부 이상 팔렸습니다. 당시 이 책을 읽은 일본 여성들은 "한국이든 일본이든 여성의 삶은 비슷하다는 것에 놀랐다"고 말했죠. 올해 세계경제포럼(WEF)이 발표한 '젠더 격차 지수'에서 일본은 조사 대상 146개국 중 116위로, '선진국'이라 불리는 나라들 중 가장 성별 격차가 큰 나라였습니다. 한국은 99위였습니다.
도쿄=이영희 특파원 misquick@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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