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사기관 '깜깜이 통신조회' 제동 걸렸다
이동통신사가 수사·정보기관에 가입자의 이름·주민등록번호 등 개인정보를 제공하고도 가입자에게 사후 통지를 하지 않아도 되는 현행법은 헌법에 어긋난다는 헌법재판소 판단이 나왔다. 이 법 조항은 지난해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의 이른바 ‘저인망식 무차별 통신조회’ 사실이 드러나면서 논란이 됐다.
헌재는 수사기관의 통신자료 취득 자체는 헌법에 위반되지 않는다고 봤다. 하지만 당사자에게 이 사실을 통지하는 절차가 법률에 마련되지 않은 점은 헌법에 위반된다고 판단했다. 사후통지 절차 등이 마련되면 가입자 몰래 무차별적으로 개인정보를 가져가던 수사 관행에 변화가 불가피할 전망이다.
헌재는 21일 전기통신사업법 83조 3항 등이 위헌이라는 4건의 헌법소원 청구 사건에서 재판관 전원일치 의견으로 헌법불합치 결정을 내렸다. 헌법불합치는 위헌성을 인정하면서도 즉각 무효로 했을 때 초래될 혼선을 막고 대체입법을 할 수 있도록 시한을 정해 법 조항을 존속시키는 결정이다. 헌재는 “늦어도 2023년 12월 31일까지 개선 입법을 해야 한다”고 밝혔다. 전기통신사업법 제83조 제3항은 ‘전기통신사업자는 수사관서의 장, 정보수사기관의 장이 재판·수사·형의 집행 또는 국가안전보장에 대해 위해를 방지하기 위한 정보수집을 위해 통신자료 제공을 요청하면 그 요청에 따를 수 있다’는 내용이다.
통신조회당한 당사자가 알 수 있게, 통지절차 마련해야
이를 근거로 검찰, 경찰, 공수처, 군, 국가정보원 등은 법원 영장 없이도 가입자 이름·주민번호·주소·전화번호·아이디(ID)·가입일 등을 이동통신사에 요청했다. 가입자는 스스로 조회하기 전까지 자신의 개인정보가 제공됐는지 알 수 없었다. 헌재는 이 점을 지적하며 해당 법 조항이 “정보 주체의 개인정보 자기결정권을 침해한다”고 판시했다.
헌재는 다만 “통신자료 취득 자체가 헌법에 위반된다는 것이 아니라 통신자료 취득에 대한 사후 통지 절차를 마련하지 않은 것이 헌법에 위반된다는 것”이라고 분명히 했다.
이번 헌법소원의 청구는 2016년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 모임과 참여연대 등이 “수사·정보기관이 통신사로부터 가입자 개인정보를 무단으로 수집했다”며 청구인 500명을 모으면서 시작됐다. 특히 지난해 공수처가 이성윤 전 서울고검장의 공소장 내용을 단독 보도한 중앙일보 기자와 해당 기자 어머니의 통신자료를 조회하는 등 당시 민간인에 대해서까지 무차별적으로 통신자료를 조회한 사실이 드러나면서 ‘사찰 논란’이 일었다.
헌재의 이번 결정에도 개인정보 침해 등에 대한 손해배상 청구는 쉽지 않다는 게 법조계의 시각이다. 양홍석(법무법인 이공) 변호사는 “통신자료 제공 요청·취득 행위가 아닌 법 조항이 위헌이고, 그 이유도 통지 절차가 미비하다는 것”이라며 “다만 통신자료 조회가 수사 목적에 맞는지, 통신사실 확인자료 취득에 관한 허가를 받을 때 법원을 속이지 않았는지 여부를 따져 국가배상을 청구할 수 있을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에 따르면 지난해 전기통신사업자가 수사·정보기관 등에 제공한 통신자료 건수는 전화번호 수 기준으로 504만456건에 이른다. 그간 수사기관들은 수사 보안 등을 이유로 사후 통지 절차 마련에 반대했다. 법조계의 한 관계자는 “(통신조회 사실의 사후 통지로) 수사 대상이 특정될 수 있어 향후 수사기관들이 헌재 결정을 어떻게 수용하고 제도화할지 고심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공수처는 이날 헌재 결정 직후 입장문을 내고 “지난 4월 1일부터 무분별한 통신자료(가입자 정보) 조회를 차단하기 위해 통신자료조회심사관에 의한 사전·사후 통제, 통신자료 조회 점검 지침(예규) 운영 등을 시행 중”이라며 “국회가 해당 법 조항 개정을 추진할 경우 논의 과정에 적극적으로 참여하겠다”고 밝혔다.
허정원 기자 heo.jeongwo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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