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주민 "여론조사에 좌지우지, 그래서 졌다.. 난 이재명과 달라"
[박정훈, 박소희, 남소연 기자]
▲ 당 대표 선거 출마를 선언한 박주민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20일 서울 여의도 국회 의원회관에서 <오마이뉴스>와 인터뷰하고 있다. |
ⓒ 남소연 |
"아예 뿌리를 못 내리고 그때그때 여론조사에서 유리한 경우에만 움직이는, 다시 말하면 둥둥 떠다니는 정당이 됐다."
8.28 더불어민주당 전당대회 당대표 경선에 출사표를 던진 박주민 의원(재선. 서울 은평갑)이 내린 '민주당의 위기' 배경이다. 그는 소위 '내로남불'과 강성팬덤의 영향력을 지적하기 보다는, 민주당이 '더 많은 개혁'을 하지 못한 것이 직접적인 패배 원인이라고 강조했다. '수사·기소 분리'를 담은 검수완박(검찰 수사권 재조정) 법안을 밀어붙인 게 문제가 아니라, 검수완박'만' 한 것이 문제라고 덧붙이기도 했다. 한 마디로 민주당이 어디를 보고, 무엇을 위해 정치를 하는지 불명확했다는 평가다.
박 의원은 지난 20일 오전 의원회관에서 <오마이뉴스>와 만나, 자신이 생각하는 당의 뿌리는 '사회적 약자'라고 밝혔다. 그는 "저는 (민주당이) 힘없는 사람들을 대변하기 위한 정당이라는 생각을 갖고 있다. 힘없고 소외된 분들에게 뿌리를 단단히 내리고, 그 상태에서 중도 쪽으로 가지와 잎을 넓히는 전략을 써야 한다"라고 밝혔다. 이는 당이 '가치 지향적'으로 탈바꿈해야 한다는 뜻이기도 했다. 그는 차별금지법(평등법), 플랫폼종사자보호법 등을 당대표가 되면 꼭 추진하고 싶은 법안으로 내세우고 있다.
정계 입문 전 '세월호 변호사'부터 시작해, 지난 6년간 당내에서 개혁적 이미지를 쌓아온 것은 그에게 큰 자산이다. 다만, 이러한 개혁 성향이 '어대명'(어차피 대표는 이재명)이라는 말로 대세론을 타고 있는 이재명 의원과 겹친다는 점이 문제다. 심지어 박 의원은 다른 당대표 후보들과는 다르게 이 의원과 크게 각을 세우고 있지도 않다. 하지만 당대표가 되려면 결국은 이 의원과 차별화된 모습, 즉 '왜 박주민인가'를 증명해야 한다.
'이재명의 페이스메이커(기자 주 : 중장거리 육상경기에서 다른 선수의 목표가 될 만한 스피드로 다른 선수를 유도하거나 앞질러 가는 선수)'가 아니냐는 일각의 시선에 대해 박 의원은 "말도 안 되는 이야기다. 당연히 이기려고 나왔다"라고 반박했다.
그는 특히 "(이 의원은) 저와 비슷한 얘기를 많이 하지만, 대선 후보 당시 본인의 생각보다 오른쪽 이야기도 많이 했다. 저는 조금 더 자유롭고, 더 개혁적 목소리 낼 수 있다"라면서 "이재명은 카리스마 리더십, 저는 강력하지만, 그러면서도 많은 사람과 의제를 받치는 '서번트'(섬기는) 리더십"이라고 주장했다.
다음은 그와 나눈 일문일답을 정리한 내용이다.
"박주민과 이재명은 다르다"
- 출마를 결심하게 된 결정적 계기가 궁금하다. 다른 97세대 후보들보다 출마선언이 늦어서 일각에선 결국 '불출마'가 아닌가라는 이야기도 돌았다.
"무언가 도전할 때 늘 고민이 깊다. 2년 전 당대표 출마도 마지막 날 했고, 4년 전 최고위원 출마도 제일 늦었다. 제 도전이 어떤 의미가 있고 왜 필요한지를 많이 생각하는 편이다. 결심이 선 이후에는 출마선언문에 어떻게 제 생각을 담을지를 고민하면서 2~3일 더 걸렸다."
- 2020년 전당대회에 이어 두 번째 당대표 출마다. 그때와 지금의 마음가짐은 어떻게 같고 다른가?
"2년 전, 당대표에 출마하며 '176석을 가지고도 아무것도 하지 못하는 정당에 누가 또 표를 주고 싶겠습니까'라고 외쳤었다. 우리가 얻은 176석의 거대한 성공이 한편으로는 위기라고 말했다. 안타깝게도 그 우려는 현실이 되었다. 지금도 마찬가지다. 169석이라는 거대한 의석으로 우리가 또 다시 아무것도 하지 못한다면, 우리는 또 국민의 선택을 받지 못할 것이다. 이번에는 민주당만 위기인 게 아니라, 국민의 삶이, 대한민국이 위태롭다. 절박한 마음을 갖고 나왔다."
- 다른 97 세대 의원들이 이재명 의원과의 '한판 승부'를 시사한 반면, 박주민 의원은 이재명 의원과 각을 세우지 않고 있다. '페이스메이커'라는 말까지 나온다.
"말도 안 되는 이야기다. 당연히 이기려고 나왔다. 2년 전에도 이낙연 대표와 각 세우지 않았다. 지금도 다른 후보들을 비판하고 깎아내리지 않는다. 비전과 철학을 보여드리고 당당히 평가받겠다."
- 그런데 이재명 의원과 지지층이 겹쳐 보인다. 이재명과 박주민은 무엇이 다른가?
"이재명 의원은 출마 선언에서도 저와 비슷한 이야기를 많이 했다. 그런데 차이가 있다. 이 의원은 개혁 성향이지만 대선후보 당시 중도층의 표심을 잡기 위해 당의 색깔이나 본인의 생각보다도 오른쪽의 이야기를 많이 했다. 저는 조금 더 자유롭기 때문에 개혁적 목소리를 더 낼 수 있다. 또 그런 목소리를 내려고 출마했다.
그리고 가장 큰 차이점은 리더십의 형태다. '나를 따르라'식의 카리스마 리더십 보다는 국민과 당 구성원을 섬기는 서번트 리더십으로 당의 통합과 혁신을 이끌어내고자 한다. 강력한 리더십은 필요하지만, 저는 많은 분들을 받치고 여러 의제들이 균형감각 있게 추진되는 방식의 강력함을 추구할 생각이다."
- 컷오프 통과 시 이재명 의원을 겨냥한 다른 후보와의 단일화 가능성은 있나.
"단일화는 열려있다. 하지만 정치공학적인, 인위적인 단일화는 반대다. 당의 혁신 방향과 정책에 대한 토론을 거치면서 접점을 찾고, 단일화의 필요성이 확인된다면 자연스럽게 단일화도 이뤄질 것이다. 하지만 각자가 어떤 비전을 갖고 있는지 뚜렷이 보이지 않는 상태에서 단일화를 이야기하는 것은 순서가 맞지 않다."
▲ 당 대표 선거 출마를 선언한 박주민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20일 서울 여의도 국회 의원회관에서 <오마이뉴스>와 인터뷰하고 있다. |
ⓒ 남소연 |
- 지난 대선·지선 결과를 놓고 제기되는 이재명 책임론에는 선을 그었다. 선거 패배 원인이 후보자 개인이 아닌 민주당이나 문재인 정부에 있다고 보시는 건지 궁금하다.
"노동개혁, 교육개혁, 경제개혁 등 우리 앞에 산적한 사회적 문제들을 176석을 가지고도 풀지 못했다. 그 점에 실망하셨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한두 명에게 지금 이 상황의 책임을 묻는 것이 '바닥부터의 쇄신', '근본적 변화'에 과연 도움이 될까 묻고 싶다. 그건 오히려 편리한 방식의 평가와 책임 규정 아닌가."
- 법사위 간사로서 검수완박을 주도했다. 그런데 지방선거 패배 이후 열린 토론회에서는 검수완박이 지선 패배의 대표적 원인으로 꼽힌다. 이에 대한 생각은?
"검찰개혁을 해서가 아니라 검찰개혁'만' 했던 것이 문제이다. 검찰개혁 주도한 저를 비롯한 몇몇 의원들이 '검찰개혁 외에는 하지 마'라고 한 적 있나. 제가 지적하고 싶은 건 국민들이 원하는 의제는 여러 가지인데 (당에서) 이걸 대부분 외면했다는 점이다. 그나마 하고 있던 과제들 역시 지속성을 의심받거나, 정밀성이 떨어져서 불신받았다.
교육, 경제, 복지, 노동 이런 쪽은 저희가 몰두하지 못했다. 하지만 그 이유가 검찰개혁하느라 그런 것은 아니다. 그렇다면 나머지를 왜 못했느냐, 그 부분에 대한 답이 나와야 하지 않을까. 저는 민주당이 '여론조사 정당'이 되면서, 선거 때 유리한 것만 하고 불리한 것은 하지 않는다는 데서 문제점을 찾는다."
- 여론조사 추이만 보면서 달면 삼키고 쓰면 뱉었다는 이야기인가?
"여론조사뿐만 아니라 강력한 이익집단, 크게 의사표명하는 집단에 굉장히 약하다. 그때그때 여론조사 쫓아가면서 정책이 왔다 갔다 하는 큰 흐름 속에 있다. 찬성 여론이 높더라도 강력한 이해집단이 움직이면 거기에서 또 개혁이 막힌다. 개혁과제를 하지 못할 이유만 수두룩 빽빽한 정당이 되어버린 것이다."
- 그렇다면 민주당에서 '검찰개혁' 이외의 이슈를 외면한 이유가 무엇이라고 생각하나.
"사회적 의제를 해결하기 위한 의지와 각오가 굉장히 약해졌는데, 일단 당 자체가 기득권화된 부분을 꼽을 수 있다. 또 하나는 늘상 이야기하지만 검찰개혁은 상대적으로 쉬운 편에 속한다. 그런데 교육개혁, 재벌 문제 해결 쉽나? 어렵다. 어려운 걸 하려면 의지와 각오, 정밀성 있고 설득력 높은 정책을 만드는 프로세스와 그것이 가동되는 리더십이 있어야 한다. 민주당은 일단 그 프로세스를 구축하는 데 시간과 공을 들여야 한다. 그래서 저는 당대표가 된다면 여러 의제에 대해 '사회적 연석회의' 만들어서 지속적으로, 균형 있게 추진할 계획이다."
- 사회적 연석회의라면?
"당 차원에서 7~8개 의제를 정하고 국민, 당원, 전문가, 국회의원, 지방자치단체장, 지방의원 등 모두 포함해 치열하게 토론하고 해법을 찾아가는 것이다. 이런 과정을 통해 나온 결과를 정책의총이나 정책전당대회를 통해 의결하고 당론으로 강하게 추진하면 많은 개혁을 이룰 수 있다.
- 민주당이 '가치 중심 정당'이 되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그런데 '가치'라는 것은 결국 '누구를 대변하는 정당'이 되느냐라는 방향성과도 연결돼 있다. 본인이 생각하는, 민주당이 대변해야될 사람은 누구인가?
▲ 당 대표 선거 출마를 선언한 박주민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20일 서울 여의도 국회 의원회관에서 <오마이뉴스>와 인터뷰하고 있다. |
ⓒ 남소연 |
- 지금 대표적으로 추진하고 있는 법이 차별금지법(평등법)이다. 하지만 지난 2년 동안 별다른 성과를 못 냈다. 반대 세력의 목소리는 여전히 큰 상태고, 의원들의 반응도 미온적이다. '박주민 당대표'라고 가능할까 물음표를 찍는 사람들도 많다.
"차별금지법은 20년 가까이 국회에서 아무 논의를 하지 않은 채로 미뤄지다가 지난 5월에 비록 법사위 1소위지만 헌정 사상 처음으로 공청회를 열었다. 국민의힘은 참석하지 않았지만 국회에서 차별금지법이 공식적으로 논의된 첫 자리 아닌가. 일단 그 자리가 가진 의미가 작지 않다고 생각한다. 물론 우리 당 의원들 중에도 반대하는 분들 있다. 대부분 법의 취지에는 동의하나, 지역에선 워낙 반대가 심하다는 이유를 든다. 하지만 그런 부분은 당대표로서 책임지고 설득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게 리더십이다.
그리고 차별금지법에 반대하는 당 밖의 분들은 정확한 정보제공 통해서 오해를 불식시킬 수 있는 부분이 많다. 저 같은 경우 차별금지법 반대한다는 거의 1만 명 가까운 분들에게 일일이 답문 보내서 제가 만든 카드뉴스, 영상링크 다 보내드린 적도 있다. 유튜브 라이브를 하면서 반대하는 분들의 전화에 답변드리기도 하고, 평등법 조문을 읽어주는 콘텐츠를 만들거나 여러 오해들을 바로잡는 방송도 진행했다. 당대표가 된다면 앞으로 이런 과정을 당 차원에서 해나가겠다."
"문자 폭탄 문제? 당원들 목소리 낼 창구부터 마련해야"
- 문자폭탄, 강성 팬덤 문제를 '더 많은 소통 창구'를 만들어서 해결하겠다는 원칙을 밝혔다. 그런데 '소통 강화'로 단시간에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지 의문이다. 당내에서 '나와 의견이 다른' 사람들에 대한 공격에 관해 단호한 대책을 마련하실 생각은 없는지 궁금하다.
"이런 문제 닥쳤을 때는 '본(本)'이 무엇이고 '말(末)'이 무엇인가부터 생각해야 할 것 같다. 당은 특정한 가치 중심으로 당원들이 모인 정치적 결사체다. 당원들을 상정하지 않은 정당은 존립할 수 없다. 당원들은 당 또는 당 소속 정치인에게 의사표명할 권리가 있고 이는 당헌에도 명시돼있다. 그런데 이 권리 실현할 절차 규정이 없다. 그래서 당원들이 전화를 하고 문자와 팩스를 보내는 것이다. 이 부분을 해소해나가는 과정이 있어야 한다.
민주주의가 소란스럽다고 민주주의를 죽이는 건 해결책이 아니지 않나. 더 많은 민주주의로 그 부분을 치료하자는 게 대부분의 사람들이 내놓는 해법이다. 그래서 당원들이 목소리를 많이 편하게 낼 수 있도록 하면 된다. 만약 편향된 분이 있다고 하더라도 그들의 비율이 상대적으로 줄 수밖에 없다."
- 우상호 비상대책위원장에게 청와대 국민청원과 비슷한 당원청원제를 하자고 직접 제안했다고 들었다.
"대선 끝나고 저에게도 문자폭탄 들어왔다. 그래서 2만 분이 넘는 분들에게 문자 다 보내고, 그중 회신 준 2800명에게 유튜브 링크를 드려서 실시간 소통을 했다. 그중 600명은 따로 줌 회의도 했다. 그때 나온 의견이 당원게시판에 국민청원 기능을 탑재하면 좋겠다는 이야기였다. 그래서 윤호중 비대위원장에게도 제안하기도 했다. 지방선거 이후 오프라인에서도 모임 했을 때도 100명의 당원들이 오셨는데, 또 비슷한 이야기가 나왔다. 우상호 비대위원장 찾아가서, '이거는 금방 할 수 있지 않겠냐, 윤호중 비대위원장도 하시겠다고 그랬다'라고 말했다. 우상호 비대위원장은 자신이 봐도 필요하고 손쉽게 할 수 있으니까 바로 지시 내리겠다고 한 거다."
- 민주당은 선거제도 개혁도 다뤄야 한다. 지난 2월 '국민통합 정치개혁' 당론을 채택하며 '기득권 대결정치'를 청산하겠다고 약속하기도 했는데, 구상 중인 안이 있는가.
"연동형 비례대표제, 권역별 비례대표제, 중대선거구제 도입 등 다 찬성이다. 우리가 해야 할 정치개혁 과제라는 데 공감한다. 모든 진보 개혁 과제를 민주당이 다 할 수가 없다. 민주당보다는 조금 더 선명한 목소리를 낼 수 있는 분들도 있고, 그런 분들이 국회로 들어와서 다양한 목소리가 반영되고 녹아들면서 좋은 정책들이 만들어질 수 있다고 생각한다. 진보나 개혁의 비중 자체를 늘리는 게 더 중요할 수 있다는 이야기다."
- 의석에 연연하진 않겠다는 말씀인가.
"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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