日 방점·北 후순위..업무보고서 확인된 윤석열 정부 외교기조

정진우 2022. 7. 21. 19: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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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일 박진 외교부 장관의 업무보고를 듣고 있는 윤석열 대통령. [대통령실 제공]

박진 외교부 장관은 21일 새 정부 출범 후 외교부가 추진할 핵심 외교 과제와 구체적 이행계획을 윤석열 대통령에게 보고했다. 박 장관은 이날 업무보고 직후 브리핑을 통해 "대통령은 보편적 규범과 가치에 기반한 국제사회의 책임있는 일원으로서 국제연대와 협력을 주도하는 적극적 외교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고 말했다. 또 "윤 대통령은 경제 외교가 가장 중요하다고 말했고, 우리 경제에 도움이 된다면 어디든 찾아가겠다고 말했다”고 전했다.

박 장관은 이날 업무보고를 ▶미·일·중·러 4강 외교 ▶비핵화 등 대북정책 ▶지역별 네트워크 구축 ▶경제안보 강화 등의 내용으로 구성했다. 이같은 핵심 추진 과제 자체는 그간 외교부가 강조한 ‘한·미 동맹 중심의 당당한 외교’ 기조의 연장선에 있다. 다만 업무보고에 언급된 과제의 순서에 외교부가 구상중인 우선순위가 반영돼 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후순위로 밀려난 '北 비핵화'


외교부는 업무보고 문건에서 총 7개 주요 과제 중 북한 비핵화 문제를 5번째 항목에 배치했다. 인도·태평양 전략 수립과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비상임이사국 진출 등의 목표보다 후순위다. 전임 문재인 정부가 임기 5년 동안 줄곧 남·북 관계 개선과 비핵화를 최우선 외교 과제로 추진한 것과 대비된다.

외교부 고위 당국자는 “북한 문제는 사실 우리 외교에서 가장 중요한 요소”라면서도 “(외교과제 배치) 순서가 그렇게 된 것은 현실적으로 시급성을 가진 당면 현안을 우선적으로 하다 보니 북한 문제가 뒤로 간 것”이라고 말했다.

이는 북한 비핵화는 장기적 과제일 순 있어도 당면 현안은 아니란 의미인 동시에, 유인책 제공 등 비핵화를 유도하기 위한 선제적 조치는 없다는 대북 원칙론이 반영된 결과로 풀이된다. 이날 업무보고에 담긴 비핵화 과제 역시 미국 등 국제사회 공조 속 제재·압박을 강화하되 대화의 문은 열어놓는 기존 입장을 재확인하는 수준이었다.


한·일 관계 개선에 공력 집중


박진 외교부 장관은 지난 18~20일 일본을 방문해 한일 외교장관 회담,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 예방 등의 일정을 소화했다. 외교부는 이를 한일 간 본격적인 셔틀 외교의 출발점이라고 평가했다. 사진은 지난 19일 도쿄 총리 관저에서 기시다 총리를 예방한 박 장관. [외교부 제공]
반면 전임 정부에서 사실상 방치했던 한·일 관계 개선은 한·미 동맹 강화에 이은 두 번째 중요 현안으로 지목됐다. 윤석열 정부가 일본과의 관계 정상화에 얼마나 공을 들이고 있는지 알 수 있는 대목이다.

박 장관도 브리핑에서 "윤 대통령은 한·일 관계 개선 위해 강한 의지를 갖고 있고, 한·일이 공동 이익에 부합하는 신뢰 관계를 만들어나가야 한다는 생각을 갖고 있다"며 "그런 시각으로 (강제징용 등 과거사 문제에 대한) 합리적인 해결방안을 모색하려고 하고 있다"고 말했다.

지난 5월 윤석열 정부 출범 후 첫 한미 정상회담에서 양국은 포괄적 전략 동맹 격상을 공식화했다. [대통령실 사진기자단]

박 장관은 이날 업무보고의 시작과 함께 첫 외교 과제로 한·미 동맹의 폭과 협력의 범위를 심화하겠다고 윤 대통령에게 보고했다. 지난 5월 한·미 정상회담을 통해 양국이 합의한 포괄적 전략동맹 격상의 후속 조치에 방점을 찍겠다는 의미다. 특히 업무보고 문건엔 “굳건한 한·미 동맹을 토대로 한 글로벌 역할 확대 및 자유·민주·인권·법치 등 보편적 가치를 중심으로 한 국제연대를 선도하겠다”는 내용이 담겼다.


"한·중 관계, 보편적 가치와 규범에 기반해야"


외교부는 또 한·중 관계 발전 필요성을 강조하며 양국 외교장관 간 소통 등 최고위급 채널 정례화를 목표로 제시했다. 또 올해 한·중 수교 30주년 등을 계기로 양국 간 인적 교류를 활성화하자는 내용도 담겼다.
외교부는 올해 한중 수교 30주년 등을 계기로 한 한중 관계 강화 필요성을 강조하면서도 보편적 가치와 규범을 강조했다. [중앙포토]

다만 외교부는 한·중 우호 협력의 전제로 “보편적 가치와 규범에 입각한”이라는 단서를 달았다. 이는 조 바이든 미국 행정부가 추구하는 동맹 규합의 기준이자 중국을 압박하고 비판할 때 사용해 온 관용적 표현이다. 한·중 관계에서 가치와 규범을 언급한 것은 외형상 윤 대통령이 취임사 등을 강조한 ‘가치 외교’의 연장선에 있지만, 그 이면엔 중국이 국제사회가 추구하는 가치와 규범을 수용해야 한다는 메시지가 담겼다는 평가다.

박 장관은 한·중 수교 30주년(8월 24일)을 맞아 다음달 방중 일정을 조율 중이다. 이와 관련 박 장관은 "(한국은) 인도·태평양경제프레임워크(IPEF)에 참여하고 칩4(미국·한국·일본·대만 반도체 네트워크) 이야기도 나오는데 특정국 배제가 아닌 국익 확대하는 과정에서 검토해야 할 사안"이라며 "대통령은 중국이 (한국의 IPEF 참여 및 칩4에 대해) 오해하지 않도록 이런 부분을 사전 설명하고, 오해가 있으면 풀 수 있도록 적극적인 외교를 해 달라고 주문했다"고 말했다.

한편 당초 이날 예정됐던 통일부 업무보고는 하루 뒤로 미뤄졌다. 대통령실은 단순 '일정상의 이유'라고 설명했지만, 통일부가 2019년 탈북 어민 강제 북송 당시의 사진·영상을 공개하며 논란의 한복판에 선 만큼 업무보고를 미룬 또 다른 배경이 있는 것 아니냐는 뒷말이 무성했다. 앞서 윤석열 정부 출범 후 존폐 기로에 선 여성가족부 역시 지난 20일로 예정됐던 업무보고가 미뤄졌다.

정진우 기자 dino87@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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