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차별 조회' 수사관행에 제동..헌재 "통신자료 조회후 통지해야"
이동통신사가 수사·정보기관에 가입자의 이름·주민등록번호와 같은 개인정보를 제공하고도 정보 주체인 가입자에게 사후 통지를 하지 않아도 되도록 한 현행법은 헌법에 어긋난다는 헌법재판소의 판단이 나왔다. 이 조항은 지난해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의 이른바 ‘저인망식 무차별 통신조회’사실이 밝혀지며 본격적으로 논란의 대상이 됐다. 헌재는 수사기관의 통신자료 취득 자체는 헌법소원 대상이 아니라고 봤다. 하지만 당사자에게 자료 취득 사실을 통지하는 절차가 법률에 마련되지 않은 것은 헌법에 위반된다고 판단했다. 사후통지 절차 등이 마련되면 가입자 몰래 무차별적으로 개인 정보를 가져가던 수사 관행에 변화가 불가피할 전망이다.
헌재, “통신자료 취득 후 사후통지 절차 없는 것은 헌법 위반”
이날 헌재가 헌법불합치 결정을 내린 전기통신사업법 제83조 제3항은 ‘전기통신사업자는 수사관서의 장·정보수사기관의 장이 재판·수사·형의 집행 또는 국가안전보장에 대한 위해를 방지하기 위한 정보수집을 위해 통신자료제공을 요청하면 그 요청에 따를 수 있다’는 내용이다. 이 조항을 근거로 검찰과 경찰, 공수처, 군, 국가정보원 등은 법원 영장 없이도 서비스 가입자의 이름·주민등록번호·주소·전화번호·아이디(ID)·가입일 등을 이동통신사에 요청할 수 있다. 이에 수사·정보기관이 임의로 개인정보를 들여다볼 수 있는 관행을 법이 정당화한다는 지적이 나왔다. 가입자는 스스로 조회해보기 전에는 자신의 개인 정보가 수사·정보기관에 제공됐는지 알 수 없다.
헌재는 “통신자료 제공 요청이 있는 경우, 정보 주체인 이용자에게는 통신자료 제공 요청이 있었다는 점이 사전에 고지되지 않으며 전기통신사업자(이동통신사)가 수사기관 등에 통신자료를 제공한 경우도 이런 사실이 이용자에게 별도로 통지되지 않는다”며 “정보 주체의 개인정보자기결정권을 침해한다”고 판시했다. 이어 “통신자료 취득 자체가 헌법에 위반된다는 것이 아니라 통신자료 취득에 대한 사후 통지절차를 마련하지 않은 것이 헌법에 위반된다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수사 효율성 고려해도 사후통보 충분히 가능”
특히 지난해 공수처가 이성윤 전 서울고검장의 공소장 내용을 단독 보도한 중앙일보 기자 및 해당 기자 어머니 등 언론사 기자와 민간인, 당시 야당 인사 등에 대해 무차별적으로 통신 자료를 조회한 것이 드러나며 ‘사찰 논란’이 빚어졌다.
헌재는 수사 효율성을 고려하더라도 통신자료 취득 사실을 통보해야 한다고 판단했다. 헌재는 “효율적인 수사와 정보수집의 신속성·밀행성 등의 필요성을 고려해 사전에 정보 주체인 이용자에게 그 내역을 통지하도록 하는 것이 적절하지 않다면 수사기관 등이 통신자료를 취득한 이후에 수사 등 정보수집의 목적에 방해가 되지 않는 범위 내에서 통신자료의 취득 사실을 이용자에게 통지하는 것이 얼마든지 가능하다”고 설명했다.
“법은 위헌, ‘통신 취득 행위’ 자체는 헌법 소원 대상 아냐”
헌재의 이날 결정에도 수사기관 등에 개인정보 침해 등에 대한 손해배상 등을 청구하기는 쉽지 않다는 게 법조계의 시각이다. 양홍석 변호사(법무법인 이공)는 “통신자료 제공 요청·취득 행위가 아닌 법 조항이 위헌인 데다 그 이유도 통지 절차가 미비하다는 것”이라며 “다만 헌재 판결과 무관하게 공수처의 기자 통신자료 조회의 경우 수사 목적이 맞는지, 통신사실 확인자료 취득에 관한 법원 허가를 받을 때 법원을 기망하지 않았는지 여부를 따져 국가배상을 청구할 수 있을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하지만 수사 보안 및 편의를 이유로 그간 수사 기관이 행했던 광범위한 정보 수집 관행에는 제동이 걸릴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에 따르면 지난해 전기통신사업자가 검찰·경찰·공수처·국가정보원 등에 제공한 통신자료 건수는 전화번호 수 기준으로 504만456건에 이른다. 그간 수사기관들은 수사 보안 등을 이유로 사후 통지 절차 마련에 반대해왔다. 한 법조계 관계자는 “수사가 진행됐을 때 수사 대상이 특정될 수 있는 가능성이 있어 향후 수사 기관들이 헌재 결정을 어떻게 수용하고, 제도화할지 고심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이날 공수처는 헌재 결정 직후 입장문을 내고 “지난 4월 1일부터 무분별한 통신자료(가입자 정보) 조회를 차단하기 위해 통신자료조회심사관에 의한 사전·사후 통제, 통신자료 조회 점검 지침(예규) 운영 등 방안을 시행 중”이라며 “국회가 해당 법 조항 개정을 추진할 경우 논의 과정에 적극적으로 참여해 통신자료를 받는 과정에서 국민의 헌법상 기본권을 보호하는 동시에 수사상 목적도 달성할 수 있는 최선의 방안을 모색하겠다”고 밝혔다.
허정원 기자 heo.jeongwo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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