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오롱·농심 이어 금호석화 오너 일가도 전면 '등판'
주요 대기업의 오너 일가가 잇달아 경영 전면에 나서고 있다. 책임경영과 세대교체를 통해 위기를 극복하겠다는 취지다. 한편으론 계열 분리나 승계 작업 등이 복합적으로 얽혀있다는 분석도 있다.
21일 금호석유화학은 임시주주총회를 열고 박준경(44) 부사장을 사내이사로 선임했다. 박 부사장은 금호그룹 창업주인 고(故) 박인천 회장의 손자이자 박찬구 금호석유화학 회장의 아들이다. 이번 선임으로 3세 경영체제 전환이 본격화한 것으로 풀이된다. 앞서 박찬구 회장은 지난해 5월 금호석화 대표이사에서 물러났다.
금호석화 관계자는 “박 회장이 대표이사를 내려놓은 지 1년이 넘었는데 경영권 분쟁 때문에 오히려 세대교체가 늦어졌다”며 “경영권 분쟁도 점차 의미가 없어졌고 마침 사내이사 결원이 생겨 이번에 선임이 이뤄진 것”이라고 설명했다. 박 부사장은 “경영진과 모든 임직원은 주주가치 제고라는 기업 본연의 역할에 집중할 것”이라고 밝혔다. 그간 박 회장 측은 박찬구 회장의 형인 고 박정구 전 금호그룹 회장의 아들 박철완(44) 전 상무와 경영권을 놓고 대립해왔다.
이웅열 코오롱 명예회장의 장남이자 코오롱가(家) 4세인 이규호(38) 코오롱글로벌 부사장은 계열사 대표로 경영 전면에 등장한다. 코오롱글로벌은 전날 열린 이사회에서 건설·상사 부문의 코오롱글로벌과 자동차 부문 신설법인 코오롱모빌리티그룹으로 인적 분할하는 안건을 통과시켰다. 이 부사장은 신설 법인의 각자대표를 맡기로 했다. 이 부사장은 향후 성장 전략 수립과 신사업 발굴, 재무역량 강화에 집중할 예정이다.
코오롱 관계자는 “이전부터 사업성을 극대화하고 효율적인 경영을 위해 회사의 분할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있었다”며 “시장 환경이 급변하고 있는 만큼 오너경영인이 나서면 신속하고 효율적인 의사결정이 가능해 미래 성장에도 도움이 될 것”이라고 기대했다.
고 신춘호 농심 창업주의 3남인 신동익(62) 메가마트 부회장도 지난달 이사회를 거쳐 23년 만에 대표이사에 복귀했다. 신 부회장은 1992∼99년 이 회사 대표를 맡았다가 소유와 경영을 분리한다는 당시 신춘호 회장의 경영 방침에 따라 직에서 내려왔다. 메가마트는 이후 전문경영인 체제를 유지해왔으며, 지분 56.14%를 보유한 신 부회장은 사내이사로 있었다. 회사 관계자는 “최근 어려워진 유통 환경 속에서 책임경영을 강화하는 차원에서 대표이사에 복귀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재계에선 이번 복귀가 농심이 올해 대기업집단으로 지정되면서 일감 몰아주기 등의 규제를 적용받게 된 것과 관련이 있지 않으냐는 해석도 나왔다. 이미 농심그룹은 장남인 신동원 회장이 농심을, 차남인 신동윤 부회장은 율촌화학을 각각 경영하고 있다. 신 부회장은 메가마트를 맡는 구도로 정리된 만큼, 조만간 계열 분리를 신청하고 독립 경영에 나서려는 수순이 아니냐는 시각이다.
농심 관계자는 이에 대해 “계열 분리는 검토하고 있지 않다”며 “(신 부회장이 메가마트의) 대주주이기도 하고, 회사가 어려우니 책임지고 정상화하려는 행보로 보는 게 맞다”고 답했다.
DB그룹도 김주원(49) DB하이텍 미주법인 사장을 그룹 부회장 겸 그룹 해외담당 부회장에 선임했다고 지난 1일 밝혔다. 김주원 부회장은 김남호 DB그룹 회장의 누나이자 김준기 DB그룹 창업회장의 1남 1녀 중 장녀다. DB그룹 관계자는 “대주주 책임경영 차원에서 그룹의 해외 사업을 강화하기 위한 것일 뿐 다른 배경은 없다”고 말했다.
오너 일가, 특히 2·3·4세의 의 전면 등판은 올해 들어 활발해지고 있다. 앞서 지난 3월 각사의 정기주총을 통해 김동관(39) 한화솔루션 사장과 정기선(40) HD현대 대표, 최성환(41) SK네트웍스 사업총괄 등이 사내이사로 선임됐다.
재계에선 최근 대내·외 경제 상황의 불확실성이 커진 만큼 중장기적 관점에서 오너경영인의 의사결정이 중요해지면서 세대교체가 이뤄지고 있다고 해석한다. 김대종 세종대 경영학부 교수는 “최근 ESG(친환경·사회적 책임·지배구조 개선) 경영이 강조되는 상황에서 오너 3·4세대 경영인은 위기대응과 신수종 사업 발굴 등에서 성과를 보여줘야 한다”고 말했다.
한편 일각에선 새 정부가 ‘친시장’ ‘친기업’을 강조하는 만큼 그간 미뤄왔던 승계 작업에 속도를 내는 것이라고 풀이하기도 한다. 한 대기업 관계자는 “현 정권에서 승계 작업을 마무리해야 한다는 분위기가 있는 게 사실”이라고 전했다.
백일현 기자 baek.ilhyun@joongang.co.kr
Copyright © 중앙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인하대 가해자 폰 속 '그날의 영상'…두 사람 음성 담겼다
- 김우식 "盧 면전서 '盧 빨갱이' 민심 전해...尹, 그런 참모 있나" [역대 정권 키맨의 尹위기 진단③
- "쉰이라서 안돼? 쉰이니까 해!" 美구글 뚫은 토종 워킹맘 비결
- 생리 멈추려 식사 거부하는 여고생…日 뒤집은 '여성들 이야기' [도쿄B화]
- "곳간에 재정 쌓으면 썩는다"더니…야당된 민주당 180도 변했다
- "착하게 생겼는데 X신"...강남 키스방 장부에 적힌 9000명 번호
- [단독] 코로나 두세번 걸린 7만7200명…청소년이 가장 많았다
- "호텔 25층 엘베 갇혀 눈물 한바가지"…안정환 아내 무슨 일
- 2년새 160억 갚았다고? '건물주' 민주당 ·국힘 재테크 비결 [고정애의 시시각각]
- 與 물밑선 이미 당권싸움...킹보다 주목받는 킹메이커 '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