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출 1조'도 가업 상속? 세금 없이 1000억 물려준다
[류승연 기자]
▲ 추경호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지난 18일 세종시 정부세종청사에서 열린 '2022년 세제개편안' 상세브리핑에서 취재진의 질문에 답변하고 있다. 2022.7.2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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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에선 쉽게 찾기 힘든 '100년 전통 장수 기업'을 만들자는 취지였다. 오너가 어렵게 일군 사업을 자녀들에게 물려줄 때, 그 자녀가 과다한 세금으로 사업의 존폐까지 고민하는 일 없도록 상속세를 감면해주자는 의도였다. 다만 부의 대물림을 부추기지 않도록 그 대상을 중소기업으로 국한했다. 지난 1997년 도입된 '가업상속공제'에 관한 이야기다.
▲ 달라지는 가업상속공제 요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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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재부가 내놓은 세제개편안은 크게 '경제 활력 제고'와 '민생 안정' 등 두 축으로 이뤄져 있다. 그중 경제 활력 제고에는 '원활한 가업승계 지원'이라는 항목이 있는데 기업상속공제 제도 개편안은 여기 속해 있다.
가업상속공제는 10년 이상 가업을 영위해온 오너가 자녀에게 회사를 물려줄 때 최대 500억원 한도로 상속세 부담을 줄여주는 제도다. 기업을 지원하되, 부의 대물림은 차단하겠다는 도입 취지에 따라 최초 중소기업으로 국한됐던 수혜 대상은 2011년 매출액 1500억원 이하의 중견기업으로 확대된 이래 그 범위가 조금씩 넓어졌다. 현재 적용 대상은 중소기업과 매출액 4000억원 미만의 중견기업이다.
정부의 이번 세제개편안은 가업상속공제 적용 대상을 매출 1조원 미만 기업까지 그 폭을 대폭 확대하겠다는 것이다. 공제 한도도 두 배로 늘었다. 직전까지는 가업을 영위한 기간이 10년 이상~20년 미만일 경우 200억원, 20년 이상~30년 미만일 경우 300억원, 30년 이상일 경우 500억원을 공제했다. 하지만 앞으로는 공제한도가 각각 400억원, 600억원, 1000억원으로 크게 확대된다. 쉽게 말해, 매출 1조원의 중견기업 오너가 세금도 내지 않고 1000억원까지 자녀에게 손쉽게 물려줄 방법이 생긴 셈이다.
사후관리 요건도 줄어든다. 당초 가업상속공제는 '가업 유지'에 방점이 찍혀 있는 제도인 만큼, 혜택을 받은 자녀는 7여년간 표준산업분류상 '중분류' 내에서만 업종을 바꿀 수 있었다. 그런데 이번 개편에서 사후관리 기간이 5년으로 줄어들었다. 또 '대분류' 내에서도 업종을 바꿀 수 있게 됐다. 이로 인해 제조업이었던 가업을 승계 후 도소매업으로 바꿔도 문제가 없게 됐다.
오너가 사망하기 전 자녀에게 주식 등을 증여해 가업을 잇게 하는 '가업 승계 증여세 과세특례 한도'도 확대된다. 상속공제와의 제도 정합성을 위해서다. 적용 대상 역시 기존 중소기업 및 매출 4000억원 미만의 중견기업에서 매출 1조원 미만의 중소·중견기업으로 확대된다.
문제는 이번 개정으로 매출 1조원을 넘나드는 굴지의 중견기업들까지 수혜 대상에 포함됐다는 점이다. 실제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시스템을 통해 살펴보면, 지난해 매출을 기준으로 남양유업(9560억원)이나 교촌에프앤비(5077억원), 메가스터디(7039억원) 등 굴지의 중견기업들이 대거 수혜 대상에 오른다. 이번 제도 개편으로 손쉽게 '부의 대물림'이 이뤄지는 것 아니냐는 지적이 제기되는 배경이다.
수저계급론, 다시 등장하나... 전문가들 "사회적 논의 필요"
한 기재부 관계자는 지난 18일 브리핑 과정에서 관련 지적을 받고 "일본의 단카이 세대처럼, 우리 베이비붐 세대들이 지금 상당히 고령화가 돼서 기업을 상속을 해야 되는데 상속세율이 너무 높다 보니 가진 주식과 자산을 다 팔아 내야 하는 형편"이라고 제도 개편 취지를 설명했다. 그러면서 "매출 기준선인 4000억원이 책정된 지 꽤 시간이 지났고 그 사이 기업들이 많이 자랐다"며 "상속세 부담이 높아 (가업의) 연속 가능성이 떨어지고 고용도 늘지 않는다"고 덧붙였다.
전문가들 사이에선 정책 시행에 앞서 가업 승계에 대한 사회적 합의가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이번 개편안으로 한때 유행했던 '금수저'와 '흙수저' 등 수저계급론이 재조명될 수 있다는 지적도 제기됐다.
하준경 한양대 경제학부 교수는 "과거 중소기업들은 상속세로 인해 자녀에게 사업을 물려주기 어렵다고 보고 (사업을) 처분해 아파트를 사는 일들이 있어 정부에서 가업 승계를 권했다"면서도 "그런데 매출 1조원을 달성한 기업은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동네 자영업자 수준이 아니다. 이번 대책으로 대기업을 제외한 사실상 대부분의 기업들이 혜택을 받게 되는 만큼 그들에게 얼마 만큼 혜택을 줄지 사회적 논의가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전성인 홍익대 경제학부 교수 역시 "누구에게나 동일한 출발선이 주어져야 한다는 시각에서 보면, (이번 개편이) 금수저, 흙수저 논쟁을 유발할 수 있다"면서 "그렇다고 가업승계에 계속 높은 상속세를 부과하면 기업들이 (가업승계를 위해) 배임·횡령 등 또다른 범죄를 저질러 사회적 비용이 발생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 추경호 부총리가 21일 은행회관에서 열린 세제발전심의위원회에서 발언하고 있다 2022.7.2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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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감 몰아주기 과세도 완화 "기업 편의 봐주기 정책"
뿐만 아니다. 이번 개편안으로 특수관계법인간 '일감 몰아주기' 과세 제도도 사실상 완화된다. 일감 몰아주기 과세 제도란, 법인의 매출액 중 특수관계법인과의 매출액이 차지하는 비율이 30% 이상(중소기업 50%, 중견기업 40%)일 때 수혜 법인에 대해 증여세를 부과하는 제도다. 수혜법인의 지배주주나 그 친족이 직·간접적으로 보유한 지분이 3% 이상이어야 한다는 조항도 붙어 있다.
그 만큼 재벌들이 특정인에게 부를 이전하는 수단으로 일감 몰아주기를 악용해왔던 까닭이다. 삼성그룹의 단체 급식 운영 업체인 삼성웰스토리의 사례가 대표적이다. 공정거래위원회는 지난해 6월 삼성전자·삼성디스플레이·삼성전기·삼성SDI 등 4개사가 지난 2013년 4월부터 8년 넘게 사내급식 물량을 수의계약으로 삼성웰스토리에 몰아준 행위에 과징금 2349억여원을 부과했다.
웰스토리의 총 매출액에서 4개 회사가 차지하는 비중이 2013~2019년까지 28.8%에 달했다는 것. 그런데 웰스토리는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최대주주로 있는 삼성물산이 100% 지분을 가진 자회사다. 공정위가 삼성웰스토리로 몰려든 계열사들의 지원 자금이 총수일가에게 흘러갔을 것이라고 보는 이유다.
이처럼 일감 몰아주기를 막기 위해, 그동안 정부는 증여의제이익 즉 증여로 간주되는 이익을 계산해 각 기업에 세금을 부과해왔다. 수혜법인의 세후영업이익에 특수관계법인 거래비율, 지배주주 등 지분율을 곱하는 방식이다.
그런데 이번에 정부는 앞으로 증여의제이익을 산정할 때 '기업 전체'의 세후 영업이익이 아닌, 각 사업의 부문별 증여의제이익을 계산해 더하겠다고 밝혔다. 기업으로선 세금 절감 효과를 누릴 수 있다.
과세 대상이 아닌 영역도 확대됐다. 해외 사업과 관련해, 기존에는 중소·중견기업의 수출 목적 거래와 대기업의 수출 목적 '국외' 거래가 과세 대상에서 제외됐다면, 앞으로는 모든 기업의 수출 목적 거래가 모두 과세 대상에서 빠진다.
이와 관련해 앞서 하 교수는 "기업들의 편의를 봐주는 정책"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그동안 일부 전문가들을 중심으로 일감 몰아주기 과세 제도가 재벌의 '이익 몰아주기' 행위를 제대로 막지 못하고 있다는 비판도 제기됐다"면서도 "그렇다고 (이번 정책처럼) 일감 몰아주기가 더 장려돼선 안 된다"고 지적했다.
전지예 금융정의연대 사무국장 역시 "(이번 개편안에서) 특히 일감 몰아주기 관련 정부 대책은 동의할 수 없다"며 "일감을 몰아주는 행위 자체가 형평성에 어긋나는 사실상의 부당행위인데 정부가 왜 '과세형평'의 잣대로 규제를 완화하려는지 이해할 수 없다. 엄연한 '기업 봐주기'"라고 비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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