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중앙] 최진석 서강대 명예교수의 고언

2022. 7. 21. 15: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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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의 빈곤이 가장 큰 문제… 이대로 가면 이명박 정권의 재판(再版) 된다”
“尹, 安과 공동정부 약속 지키지 않고 권력을 검사 편중·MB 사람들로 채워”
“생각하는 능력 약하면 교정 능력도 약해… 정권 초기 문제점 끝까지 갈 수도”

윤석열 대통령은 출범 이후 독선적 태도와 인사 검증 부실 등으로 지지율이 추락했다. 사진은 취임식 후 국민에게 인사하는 윤 대통령.

나는 가끔 신비하게 느껴지는 어떤 강박에 굴복해 무엇인가를 할 때가 있다. 그때는 알 수 없는 어떤 곳으로 밀려가고야 말 것이라는 확신으로 불안하기도 하지만, 다른 사람들과 공유하는 관념이 아니라 내 몸속을 돌아다니는 피가 나에게만 속삭여주는 비결을 따르는 것 같아서 오히려 더 편안해지거나 자유를 느끼기도 한다. 이 모순적인 감정은 나에게 작지 않은 희열도 주지만, 내가 살아 있음을 알려주기도 한다. 이러하니 비난 섞인 평가들에도 크게 흔들리지 않을 수 있다. 더군다나 이런 강박에 밀려 한 행동들은 언제나 나를 크게 성장시켰다. 교수 생활을 17년 정도 했을 때, 나에게만 있던 고유한 ‘비린내’가 맡아지지 않자 바로 학교를 떠났다. 고향 땅 전라도에서 5·18이 원래의 의미를 잃어가자 “나는 5·18을 왜곡한다.”라는 시를 발표하였다. 둘 다 “신비한 강박”에 굴복한 결과다. 나도 잘 모르겠다. 혹시 내 안의 “오버 솔”(over soul)이나 “다이몬”이나 “신”이나 아니면 “진짜 나”가 시킨 것인지도. 하지만 분명한 것이 하나 있다. 이 강박은 나에게 진실의 총화로 다가온다는 것이다. 나의 행복과 공동체의 행복, 나의 자유와 공동체의 자유, 앎과 실천, 정신과 육체 등 둘로 나뉜 것들로 “우니오 미스티카”(신비한 합일)를 이루는 데 최선을 다하고 싶은 마음이 더 집중적으로 발휘될 때, 이런 강박이 찾아와 나를 압도한다. 이렇게 찾아오는 강박을 나는 행운으로 받아들이며, 이런 강박에 차라리 굴복하는 삶을 살려고 애쓴다. 장자가 무슨 결정을 할 때 사용하도록 권하는 “부득이(不得已)”가 혹시 이런 것은 아니었을까? 부득이함으로 정성을 다해 살려다 보면, 실천 없이 이론적이거나 정신적인 경지만을 추구하는 것으로 설령 이름값이 높게 매겨지더라도, 그 뜬구름 같은 이름이 오히려 수치로 다가온다.


원효가 왜 저자 거리로 내려왔을까?


2022년 5월 3일 윤석열 20대 대통령 당선인이 안철수 인수위원장에게 인수위가 준비한 국정과제를 전달받고 있다. 최 교수는 윤 대통령이 공동정부 약속을 지키지 않고, 권력을 검사 편중과 이명박 사람들로 채웠다고 지적했다.
구도자도 좋고 철학자도 좋겠지만, 내 생각에는, 구도의 경지나 철학의 틀이 구체적인 현실과 유기적으로 연결되지 않는 바에야 “구도자 따위”나 “철학자 따위”로 불려도 할 말이 없다. 구도자나 철학자의 세계는 맑은 것처럼 보이고, 현실은 매우 잡스럽다. 하지만 분명하게도 잡스러운 현실이 가만히 있으면 맑아지는 것이고, 맑은 이론이 움직이면 현실이 되는 것이다. 이 잡스러움과 맑음이 기실은 하나이니, 둘로 갈라지지 않는다. 맑게 보이는 이런저런 구도(求道)의 이론들이 사실 잡스러운 현실에서 태어났다는 것을 잊으면 안 된다. 똥을 만지지 않고서야 거름을 내어 밭을 살릴 수 없다. 그래서 노자도 한마디 보탰다. “누가 혼탁한 물을 고요하게 하여 서서히 맑아지게 할 수 있으며, 누가 가만히 있는 것을 움직여서 생기가 살아나게 할 수 있는가”([도덕경]15장)

이쯤에서 우리는 헤르만 헤세가 왜 영혼의 깨달음에 이른 싯다르타로 하여금 바수데바의 배를 타고 현실적인 관능의 세계로 들어서게 했고, 거기서 카밀라를 만나 인간이 누릴 수 있는 관능적 환희의 극치에 빠지도록 묘사했는지를 알 수 있다. 니체나 카잔차키스나 심지어는 비트겐슈타인까지 왜 군에 자원입대 했는지, 원효가 왜 저잣거리로 내려왔는지, 공자는 왜 또 주유천하를 했는지, 노자는 왜 도서관장을 하면서 그리도 깊이 국방과 정치에 관여했는지도 알 수 있다. 아무리 큰 바보이거나, 아무리 쉽게 허명에 취하는 사람이라 할지라도 대한민국에서 철학자로 살던 사람이 정치에 발을 들여놓는 순간 한줌이나마 쌓였던 명성이 적어도 반 토막 난다는 것을 모르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그래도 이런 신비한 강박에 휩싸이면 어쩔 도리가 없다. 그것이 나를 진실의 문으로 밀어 넣는 일이라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당시 안철수 대통령 후보가 대선 캠프의 상임선대위원장을 제안했을 때, 나는 내가 또 신비한 강박에 휩싸인다는 것을 느꼈다.

내가 신비한 강박에 휩싸일 때는 보통 개인적으로나 사회적으로 반드시 해결해야 할 문제에 직면하였을 때다. 내가 신비한 강박에 휩싸이고 안철수 후보가 상임선대위원장을 제의하면서 나는 해결해야 할 가장 중요한 문제로 내 머릿속에 있던 것들을 내 과업으로 받아들였다. 그것들은 크게 두 가지다.


대한민국을 선도력 갖춘 선진국 수준으로


20대 대선 때 최진석 교수는 안철수 후보 선대위원장을 맡아 윤석열 후보와 안 후보의 단일화를 이끌어냈다. 사진은 안 후보가 최 교수 자택을 찾아 대화를 나눈 뒤 기자들의 질문을 받는 모습. / 사진:연합뉴스
하나는 대한민국의 도약이다. 졸저 [탁월한 사유의 시선]에서 이미 주장한 바 있듯이, 현재 우리에게 가장 중요한 일은 중진국 상위 수준에 머물러 있는 대한민국을 선도력을 갖춘 선진국 수준으로 도약시키는 일이다. 전술국가에서 전략국가로 올라서고, 추격국가에서 선도국가로 도약하고, 일등을 추구하던 습관을 일류를 추구하는 습관으로 높이는 것이다. 안타깝지만, 해야 할 도약을 시도하지 않고 수평 이동만을 반복하다가 정치적 갈등은 극에 이르고 사회는 극단적으로 분열되었다. 정치 영역에서는 기품이니 존엄이니 염치니 하는 등의 인간 기본기도 다 사라졌다. 이런 상황에서 선도국가로 도약하는 일이 필수 과업으로 등장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런데 대선 주자 가운데 선도국가로 도약하겠다는 비전을 가진 후보는 안철수 후보가 유일했다. 비전을 가지고 통치를 한 대통령은 김대중 대통령까지다. 건국-산업화-민주화라는 비전들을 완수하면서 대한민국은 발전해왔는데, 제도적 민주화가 완성된 김대중 대통령 이후의 대통령들은 철학보다는 하위의 정책 목표들만 제시했을 뿐이다. 그런데 안철수 후보에게는 선도국가를 이루려는 분명한 비전이 있었다. 그래서 나는 안철수 후보를 도와야겠다고 마음을 먹은 것이다. 선도국가로 도약하는 것이 현재의 대한민국에게는 가장 중요한 일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것이 내 과업 가운데 하나이기 때문이다.

다른 하나는 대한민국이 국가로서 정체성을 상실해간다는 점이다. 문재인 대통령부터 국가와 민족 사이에서 길을 잃었다. 보수든 진보든, 대한민국의 보수이고 대한민국의 진보여야 한다. 좌파든 우파든, 대한민국 안에서의 파벌이다. 그러나 우리나라의 속칭 진보와 좌파는 민족 관념을 매개로 해서 정통성을 대한민국에 두려고 하지 않고, 오히려 북한에 두려고 해왔다. 대통령이 국립현충원에서 6·25 남침에 공을 세워 김일성 훈장을 받은 김원봉을 찬양 미화하였다. 다른 곳이 아니라 국립현충원에서 대한민국을 적으로 놓고 싸웠던 사람을 ‘대한민국 군 통수권자’인 대통령이 미화 찬양하는 것은 정상적인 이해의 범위를 벗어난다. 반면에 대한민국을 지키는 데 공을 세운 백선엽 장군은 계속 홀대하다가 급기야 광복회장이 백선엽 장군의 현충원 안장을 막을 정도였다.

지금도 이해 안 되는 점이 있다. 대한민국의 사상적인 외연을 넓히고 민족의 연대를 확대하는 것은 매우 좋다. 그렇게 하려면, 백선엽도 높이고 김원봉도 높이면서 할 수 있었을 텐데, 왜 굳이 백선엽은 홀대하면서 김원봉을 미화 찬양하였는지를 알 길이 없다. 왜 둘 가운데 한쪽을 선택하여 거기에 서려고 하는지, 그것도 대한민국에 적대적인 일을 했던 사람 편에 서려고 했는지가 가장 이해가 안 되는 부분이다.


586 이념가들과 文 대통령의 가장 큰 문제


시대정신인 정권 교체는 이뤄졌지만 ‘그다음’이 문제다. 최 교수는 윤 대통령이 건국- 산업화-민주화 이후의 철학적인 비전을 제시하지 못하고 있다고 바라봤다. 사진은 지난 1월 국민의당 대선필승 전국결의대회에서 정권 교체 구호를 외치는 안철수 후보와 최진석 선대위원장.
문재인 정부의 대한민국관을 근본에서 살필 수 있는 사건이 있다. 국가정보원의 원훈석을 신영복의 글씨체로 바꾼 것이다. 통일혁명당 간첩 사건으로 복역한 신영복의 글씨체로 대한민국을 위해서 간첩들을 잡았던 국가 최고 책임 기관의 원훈석을 바꾼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대한민국의 대통령이면서 대한민국의 정보기관에 망신을 주고 있다. 왜 신영복도 살리고 국정원도 살리는 길을 택하지 않고, 국정원을 망신 주면서 신영복만을 살리는 길을 선택하는지 이해하기 어렵다.

586 이념가들과 문재인 대통령은 집권 내내 대한민국을 위해서 싸운 사람들을 홀대하고, 대한민국을 적으로 놓고 싸운 사람들을 높이려 애썼다. 이런 관점과 태도가 문재인 정권의 인지부조화를 싹틔웠다. 대통령과 586 이념가들의 인지부조화는 나라 전체에 영향을 끼치니 매우 위험할 수밖에 없다. 대한민국의 헌법을 수호할 의무를 가진 대한민국의 군 통수권자가 대한민국을 위해서 싸운 사람보다 대한민국을 적으로 놓고 싸운 사람을 더 높이는 일을 하려 하니, 자기 실존적 상황과 정치적 의지가 조화를 상실하여 심리적 왜곡 상태에 빠질 수밖에 없다. 이 부조화는 논리나 이성으로는 정당화하기가 불가능하다. 그래서 감정과 감성에 의지할 수밖에 없다. 감성의 지배를 받는 팬덤 정치와 진영 정치가 기승을 부리고, 나라 전체가 이성보다는 감성의 기풍에 빠지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내로남불의 뻔뻔함도 염치없음도 다 이 인지부조화에 뿌리를 둔다. 나는 586 이념가들이 주축이 된 정권이 대한민국을 한 번 더 통치할 수 있는 권력을 갖는다면, 이는 대한민국의 정통성이 크게 손상되고, 국가와 민족 사이에서 비롯된 인지부조화 상태가 계속되어 산업이나 법률이나 교육 전반이 회복할 수 없게 흔들리고 선도국가로 도약하는 일이 요원해질 것이라고 보았다. 이렇게 흔들리는 것만은 반드시 막아야 한다는 것이 ‘신비한 강박’이 나에게 부과한 두 번째 과업이었다.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아무것도 일어나지 않는다. 무엇인가 하지 않을 수 없게 만드는 신비한 강박을 받아들이지 않을 수 없었다. 그래서 나에게는 ‘정권 교체’가 이 모든 뒤틀림을 제자리로 돌려놓을 수 있고, 예상되는 모든 비효율을 막을 가장 중요하고도 유일한 시대적 과업으로 여겨졌다. ‘신비한 강박’에 굴복하여 그것을 그대로 받아들이면 내가 해결해야 할 문제가 해결된다고 믿고 살았는데, 이번에도 그대로 되었다. 그것은 안철수-윤석열의 단일화로 마무리되었다. 나는 지금도 확신한다. 단일화가 안 되었으면 정권 교체는 없었다.


선도국가 도약 시도할 때라야 정권 교체 의미 있어


최진석 교수는 “586 이념가들과 문재인 대통령이 집권 내내 대한민국을 위해서 싸운 사람들을 홀대하고, 대한민국을 적으로 놓고 싸운 사람들을 높이려 애썼다”고 주장했다. 사진은 2017년 문재인 대통령과 집권 초기 청와대 참모진들.
정권 교체는 되었다. 정권 교체뿐만 아니라 모든 일은 ‘다음’이 문제다. 앞에서 김대중 대통령 이후로는 ‘국가의 높이’에서 통치한 대통령이 나오지 못했다고 말했다. 이것은 건국-산업화-민주화 이후 철학적인 비전을 제시하지 못하고 있는 것으로 정리할 수 있다. 철학적인 높이의 비전으로 경영되지 않으면 나라는 상승 없이 좌우로 평면 운동만 하게 된다. 같은 사람이 옷만 다른 색깔로 바꿔 입고 나와서 다른 사람인 양 행세하는 것과 같은 격이다. 우리는 이미 “이게 나라냐?”라고 비판하면서 정권을 쟁취했던 세력이 다시 “이건 나라냐?”라는 비판을 듣는 경우를 경험했다. 수평 이동만 있지, 상승 운동은 없었다는 증거다.

윤석열 정권이 문재인 정권과 수평 이동 수준에서 다른 모습을 보이는 것은 현재 대한민국에서는 그렇게 의미가 크지 않다. 다르게 하면서 상승 운동, 즉 선도국가로 도약하기를 시도할 때만 정권 교체 의미가 있을 것이다. 검찰 출신을 위주로 하는 편중 인사에 대해 비판을 받자 윤석열 대통령은 “과거에는 민변이 도배”했다고 반박했다. ‘민변 도배’를 ‘검사 편중’으로 바꾼 것은 상승 운동이 아니라 평면 이동이다. 편중 인사 자체를 않는 것이 비로소 상승 운동이다. 문재인 대통령은 과거의 정권이 언론과 검찰을 장악한 것은 문제라고 하면서 언론 개혁과 검찰 개혁을 시도하였으나 결국은 언론 장악, 검찰 장악을 도모한 것밖에 되지 않았다. 수평 이동만 한 것이다. 검찰이나 언론을 자기 뜻에 맞게 운영되도록 시도조차 하지 않는 것이 비로소 상승 운동이 된다. 윤석열 대통령도 아직까지는 상승 운동의 도약을 시도하는지는 분명해 보이지 않는다.

“나 있는 풀을 보면 그 땅이 어떤 땅인지를 알고, 쓰는 사람을 보면 그 지도자가 어떤 사람인지를 안다.” 이는 사마천의 말이다. 매우 정확하다. 문재인 대통령이 임종석을 비서실장으로 쓸 때, 전개될 방향은 이미 대부분 결정되었다. 박근혜 대통령이 김기춘을 비서실장으로 쓸 때, 그 이후로 전개될 방향은 이미 대부분 결정되었다. 어떤 집단의 사람들로 권력을 채우는가가 그 권력이 어떤 경로를 밟아 어떤 결말에 이를 것인지를 알게 해준다. 문재인 정권은 스스로 “폐족”이라 하며 자학하였던 노무현 사람들로 대부분 채워졌다. 부동산 등과 같은 노무현 대통령 때의 실정을 그대로 반복한 것은 그때 그 사람들이 다시 돌아왔기 때문이다. 정치는 ‘사람’이 하는 일이고, 세력은 ‘사람들’이 만든다. ‘그런 사람들’은 ‘그런 정치’를 하고, ‘이런 사람들’은 ‘이런 정치’를 할 수밖에 없다.


아는 사람 속에서만 찾으니 인재풀 좁아져


윤석열 대통령이 5월 26일 정부세종청사에서 열린 첫 정식 국무회의에서 국무위원들과 국기에 대한 경례를 하고 있다. 최 교수는 윤석열 정부 권력이 검찰 편중과 이명박 정부 때의 사람들로 채워져 이대로 가면 이명박 정권의 재판이 될 가능성이 크다고 바라봤다. / 사진:대통령실사진기자단
윤석열 정부의 사람들은 이명박 정부 때의 사람들로 대부분 채워졌다. 이대로 가면, 다른 버전으로 이명박 정권의 재판이 될 가능성이 크다. 그렇게 되지 않을 가능성이 있었다. 바로 안철수와의 공동정부다. 노무현 대통령의 사람들이 문재인 대통령에게 그대로 전이된 것과 다르게 윤석열 대통령은 안철수라는 ‘이질성’을 품는 형식으로 다른 권력 구조를 가질 수 있는 찬스였다. 그러나 윤석열 대통령은 공동정부 약속을 지키지 않고, 권력을 검사 편중과 이명박 사람들로 채웠다. 인사 편중은 우리 정치사에서 내내 문제였다. ‘코드 인사’니 ‘고소영’이니 ‘서오남’이니 하는 말들이 모두 편중 인사를 지적한 것들이다. 편중 인사가 문제인 것은 복잡하고 넓은 국가를 단순하고 좁은 시야로 다룰 가능성이 커지기 때문이다. 큰 물건을 좁은 시야로 다루면 효율성이 나오기 어렵다.

우리는 다른 사람들이 한 생각의 결과를 받아서 내 생각인 것처럼 여기면서 사는 데 익숙하다 보니 스스로 생각하는 훈련이 잘 안 되어 있다. 생각하는 능력이 있어야 철학적인 높이에서 비전도 세우고 각성도 할 수 있다. 각성해야 교정할 수 있다. 생각하는 능력이 약하면 교정 능력도 약하다. 우리는 20여 년간 충분히 경험했다. 정권 초기, 그것도 한두 달 안에 드러난 문제점은 정권 말기까지 그대로 간다. 중간에 교정되는 일은 없다. 정권 초기에 ‘불통’이 문제로 제기되면, 집권 기간 내내 ‘불통’으로 지낸다. 정권 초기에 인지부조화가 문제로 제기되면, 끝까지 인지부조화가 문제다. 비전이 제시되면 그 비전을 수행하기 위한 필요가 생기고, 필요가 생기면 그 필요를 채울 사람을 찾게 된다. 사람을 ‘필요’에 따라 찾으면 넓어질 것이고, 그렇지 않으면 아는 사람 속에서만 찾으니 좁아진다. 필요를 느껴야 각성도 하고 교정도 가능할 것이다. 생각하는 능력과 비전, 필요, 각성, 교정, 성공 등은 이렇게 긴밀하게 연결된다.

- 최진석 서강대 명예교수 choijin@sogang.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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