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찰, 탈북어민 강제북송 위법 무게..판문점 '발버둥' 영상 결정적
2019년 11월 탈북 어민 2명에 대한 강제 북송 사건을 수사 중인 검찰이 “강제 북송은 위법한 조치였다”는 데 무게를 두는 것으로 전해졌다. 최근 공개된 사건 당시 ‘판문점 사진·영상’이 결정적 근거다. 해당 영상 등은 탈북 어민들이 격렬하게 북송을 거부하는 듯한 모습을 담았다.
수사 대상 쪽에선 탈북 어민들을 살인마로 몰고 “귀순 의사의 진정성이 없었다”라며 강제 북송이 불가피한 조치였던 것으로 주장하지만, 검찰은 탈북 어민들의 살인 혐의나 귀순 의사 표명 여부는 강제 북송의 위법성 판단에 영향을 끼치지 않는 것으로 보고 있다. 그들이 살인마든 아니든, 귀순 의사가 있었든 없었든, 헌법상 대한민국 국민이므로 의사에 반해 강제로 북한에 보낼 근거를 찾기 어렵다는 판단이다.
검찰 “살인마여도, 귀순 의사 없었어도…강제 북송 위법성”
21일 중앙일보 취재를 종합하면 서울중앙지검 공공수사3부(부장검사 이준범)는 탈북 어민 2명에 대해 명확히 ‘북한에 거주하던 대한민국 국민’인 것으로 판단 중이라고 한다. 대법원과 헌법재판소 판례에 따른 것이다.
문제의 핵심은 사건 당시 문재인 정부가 대한민국 국민 2명을 그들의 의사와 정반대로 북한에 강제로 보냈다는 점이다. 통일부가 지난 12일과 18일 공개한 판문점 북송 당시의 사진·영상이 북송의 강제성을 뒷받침한다. 해당 영상 등은 탈북 어민 2명이 북송되지 않기 위해 자리에 주저 앉거나 자해, 발버둥치는 등의 모습을 포함했다.
정의용 전 청와대 국가안보실장 등 주요 수사 대상자들은 “탈북 어민들이 일반적인 대한민국 국민은 아니지 않냐”라며 강제 북송의 법적 근거가 있다고 주장한다. ▶난민법 19조 3항 “대한민국에 입국하기 전 대한민국 밖에서 중대한 비정치적 범죄를 저지른 경우 난민 불인정 결정을 할 수 있다” ▶북한이탈주민법 9조 “살인 등 중대한 비정치적 범죄자에 해당하는 사람은 보호 대상자로 결정하지 아니할 수 있다” 등의 근거를 대고 있다. 탈북 어민들이 대한민국 해군에 나포되기 전 북한 주민 16명을 살해했다고 단정 짓고 있기도 하다.
그러나 검찰은 난민법 조항의 경우 외국인을 대상으로 하기 때문에 대한민국 국민인 탈북 어민들에게 적용할 수 없다고 본다. 북한이탈주민법 조항에 대해선 살인 등 범죄를 저지른 귀순자를 국내에서 지원할 의무가 없다는 취지일 뿐 강제 북송의 근거가 될 수 없다는 게 검찰의 시각이다.
혹여 탈북 어민들이 살인마가 맞다고 가정하더라도 정식 수사와 재판을 거치지 않았기 때문에 살인마로 단정 지을 수 없고, 살인마로 확정 판결이 났을지라도 강제 북송의 근거가 될 수 없다고 검찰은 판단 중이라고 한다.
또한 수사 대상자들은 “탈북 어민들의 귀순 의사에 진정성이 없었다”라고 주장하는데, 검찰은 귀순 의사 여부는 강제 북송의 위법성을 판단하는 데 변수가 될 수 없다고 판단하는 것으로 전해졌다. 혹시나 귀순 의사가 없었더라도 북한에 가길 거부하는 대한민국 국민을 강제로 북송하는 걸 정당화할 수 없다는 것이다.
귀순 의사 꾸준히 밝힌 정황 잇따라
오히려 검찰 수사가 진행될수록 탈북 어민들이 나포 이후 꾸준하게 의향서 등을 통해 귀순 의사를 밝힌 정황이 속속 드러나고 있다. 살인 혐의와 관련해선 국민의힘 국가안보문란 실태조사 태스크포스(TF)가 지난 20일 “탈북 어민들은 16명을 살해한 게 아니라 16명의 탈북을 돕던 중 북한 당국에 발각돼 탈출한 탈북 브로커다”라고 주장하기도 했다.
문 정부가 강제 북송의 위법성을 인식하면서 강행한 정황도 잇따라 밝혀지고 있다. 강제 북송 직전 주무 부처인 통일부에 파견 와 있던 A검사(통일부 장관 법률보좌관)와 법률 해석의 주무 부처인 법무부가 강제 북송의 법적 근거가 없다는 취지로 경고했다는 주장이 제기돼 있다.
사건의 ‘키맨(Key man)’으로 꼽히는 김연철 전 통일부 장관은 미국에 머물고 있는데, 조만간 귀국하겠다는 뜻을 주변에 밝혔다고 한다. 검찰은 김 전 장관에 대한 소환 조사 여부 등을 저울질하고 있다.
서훈 국정원, 보고서 ‘살인혐의 강제수사 필요’ 임의 삭제했나
검찰은 강제 북송에 앞서 진행된 국정원 주도의 정부 합동조사 과정도 수사하고 있다. 지난 6일 국정원이 서훈 전 국정원장과 김준환 전 국정원 3차장, B국장 등을 고발한 데 따른 조치다.
서 전 원장 등은 강제북송 나흘 전(2019년 11월 3일) 시작된 정부 합동조사를 부당하게 조기 종료시킨 혐의(국가정보원법상 직권남용)를 받는다.
또 국정원이 검찰에 낸 고발장에 따르면 조사 시작 당일 국정원은 조사 보고서를 작성해 “살인 혐의에 대한 강제수사가 추가로 필요하다”라는 의견을 포함했지만, 서 전 원장 등은 임의로 해당 내용을 삭제하고 “대공 혐의점이 보이지 않는다”는 내용을 포함하는 등 보고서를 수정해 다음 날 통일부에 전달한 혐의(허위공문서 작성)도 받는다. 이 과정에서 ‘귀순’이라는 표현이 ‘월선’으로 바뀌기도 했다고 고발장에 적시됐다. 서 전 원장은 미국에 체류 중이다.
검찰은 강제 북송 관련 사건의 ‘윗선’도 주목하고 있다. 고발장에 따르면 강제 북송 사흘 전(2019년 11월 4일) 청와대에선 노영민 당시 대통령 비서실장의 주재로 대책회의가 열리고 강제 북송 방침을 결정했다고 한다. 회의 자리엔 서 전 원장을 포함해 국정원 인사는 없었던 것으로 전해졌다.
이와 관련 김 전 통일부 장관은 2019년 11월 22일 미주 중앙일보와 육성 인터뷰에서 “(강제 북송 관련) 문재인 대통령에게 사전보고가 있었던 건가요”라는 질문에 “당연히 외교 안보 쪽의 그런 부분들은 보고를 하고 보고를 받고 다 하는 거죠”라고 답하기도 했다. 문 전 대통령은 검찰에 고발돼 있다.
김민중 기자 kim.minjoong1@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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