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류에 하라주쿠 지고 신오쿠보 북적..무인 냉동만두·수입 식품 전문점 인기
# 지난 6월 21일 오후 12시 30분 하라주쿠 티케시타 거리. 도쿄에서 내로라하는 번화가지만 생각보다 한산한 모습이다. 점심시간임에도 식당가는 빈 좌석이 훨씬 많다. 거리 곳곳에는 공실이 적잖다. 셔터가 내려진 가게에는 ‘테넌트(임차인) 모집’이라는 안내문 한 장만 덩그러니 붙어 있다. 2~3층 건물이 통째로 비거나 옆 가게와 도미노 공실을 이루기도 한다.
하라주쿠에서 한국식 스트리트 패션을 파는 ‘널디’ 매장의 점장은 “한류 열풍에 하라주쿠에서도 한국풍 메뉴나 인테리어의 인기가 높다. 얼마 전 한국에서 유행했던 ‘뚱카롱’을 파는 매장이 생기는가 하면, 제주도풍으로 인테리어를 한 카페는 주말이면 2시간이나 대기해야 할 만큼 긴 줄이 늘어선다”고 분위기를 전했다.
일본 F&B 업계가 코로나19 사태를 지나며 격변하는 모습이다.
한류 열풍에 하라주쿠에서 신오쿠보로 핵심 상권이 이동하는가 하면, 도쿄의 대표 부촌 다이칸야마에는 김치 전문점 ‘김치랩 도쿄’가 들어서 화제를 일으켰다.
인건비 절감을 위해 자판기, 무인 판매점이 각광받고, 가게에서 해외여행하는 재미를 주는 수입 식료품 전문점 ‘칼디’도 좋은 반응을 얻고 있다.
▶한류에 들썩이는 일본 F&B 시장
▷신오쿠보 북적…다이칸엔 김치 전문점
한류 열풍은 도쿄의 한인 타운 신오쿠보에서 생생하게 확인할 수 있다. 지난 6월 19일 오후 4시 방문한 신오쿠보는 한낮에도 일본인 청춘 남녀들로 발 디딜 틈 없이 북적였다. 치킨, 닭갈비, 핫도그 등 한식당과 방탄소년단(BTS) 브로마이드, 굿즈가 내걸린 가게를 찾아온 인파다. 한국 가게들이 성황을 이루며 신오쿠보 상권은 히가시신주쿠역 근처까지 확장되는 모습이다. 곳곳에서 새로운 한식당을 오픈하기 위한 인테리어 공사가 한창이다. ‘스시의 나라’ 일본에서 한국인이 횟집을 열기 위해 공사 중인 모습도 포착됐다. 반면 도쿄의 대표 상권인 하라주쿠, 우에노, 아사쿠사 등은 외국인 관광객과 젊은 층의 발길이 뜸해져 곳곳에서 공실이 발견됐다.
지난 6월 초에는 다이칸야마에 10평이 채 안 되는 작은 가게에 10가지 김치를 소포장 판매하는 ‘김치랩 도쿄’가 문을 열었다. 운영업체는 일본에서 한식당을 여럿 운영하는 한국 요리 전문기업 구랏톤(グラットン·GLUTTON). 최근 일본에서 한류 열풍과 함께 김치 수요가 높아지자 김치 전문점까지 낸 것이다.
단, 한국식 김치와는 다소 거리가 있다. 배추김치 외에는 메추리알, 아보카도, 가리비, 브로콜리, 생새우 등 다양한 식자재를 활용해 일본식으로 재해석(?)한 점이 특징이다. ‘이달의 김치’도 있다. 매달 새로운 김치를 선보이겠다는 것. 가격은 한 팩에 500~700엔 정도로 다소 비싼 편이다.
일본의 한 외식 업계 관계자는 “코로나19 사태를 거치며 일본에서는 김치가 면역력을 증강시키는 건강식품이라는 인식이 확산됐다. 식당에서도 밑반찬으로 김치가 나오는 곳이 많아졌다”고 분위기를 전했다.
▶高인건비에 무인 매장·자판기 확산
▷무인 냉동만두점 급증…‘페퍼 카페’도
인건비 상승에 따른 경영 부담 증가는 일본 F&B 업계도 똑같이 겪고 있는 문제다. 이에 무인 운영을 위한 각종 솔루션이 각광받고 있다.
시부야에 위치한 도큐프라자에는 로봇 카페가 등장했다. 소프트뱅크의 휴머노이드 로봇 ‘페퍼’가 가게 입구와 테이블 곳곳에 15대 이상 배치돼 있다. 이들은 손님의 얼굴을 인식하는 센서를 통해 손님과 눈맞춤을 하며 인사하고 원격 주문도 받는다. 커피나 음료는 서빙 로봇을 통해 테이블까지 전달된다.
무인으로 운영하는 냉동만두 전문점과 자판기도 확산되는 추세다. 샐러드, 규동, 라멘점에서는 이들 메뉴를 간편식(HMR) 메뉴로 개발해 자판기에서 판매 중이다.
하마다 유지 코트라 오사카무역관 과장은 지난 5월 발행한 ‘일본 냉동만두 시장 동향’ 보고서에서 “일본의 자판기는 2000년 560만대를 돌파한 후, 줄곧 감소해 2020년 말 404만대까지 줄었다. 신규 교체 수요 감소, 매출 부진 기기 철거 등이 주요인이다. 다만, 야노경제연구소는 지난해는 전년 대비 자판기 매출이 5% 증가한 3조4440억엔을 기록할 것으로 예측했다. 점포 내 인력 부족, AI 발달에 따른 무인 점포 증가에 따라 향후 자판기 비즈니스는 완만하게 성장해나갈 것으로 보인다”고 분석했다.
일본의 국민 음식이라 할 수 있는 만두(교자)도 무인 매장이 늘고 있다. 7~8평 남짓 작은 매장에 냉동고 2~3대, 현금 상자만 갖다놓고 셀프로 구입해가는 구조다. 냉동만두 36개가 담긴 한 팩 가격은 약 1000엔이다.
하마다 유지 과장은 “소비자는 냉동고에서 제품을 꺼내고, 현금(카드 불가) 상자에 1000엔을 넣으면 된다. 매장에는 CCTV 정도만 설치돼 있는데, 현재까지 도난 등의 큰 문제는 없다. 큰 투자를 하지 않고도 운영할 수 있다는 점이 무인 점포 증가 이유 중 하나다. 만두 전문점 ‘교자노유키마츠(GYOZA NO YUKIMATSU)’를 운영하는 주식회사 ‘예스(YES)’는 2020년 매출이 전년 대비 4배인 6억엔을 기록했다. 2020년 1월 당시 19개였던 무인 점포는 올 4월 372개점까지 확대됐다”고 전했다.
▶수입 식품의 다이소 ‘칼디’ 인기
▷도서관서 세계 여행 느낌…여성층 공략
코로나19 사태로 해외여행이 어려워지자 대리만족할 수 있는 제품이나 서비스가 인기다.
수입 식료품을 모아놓은 총판점 ‘칼디(KALDI)’가 대표 사례다. 구매력 있는 여성층을 타깃으로, 40~60평 규모 중형 매장에서 약 1만종의 수입 식료품과 일본 로컬푸드를 판다. 1986년 커피 원두를 파는 작은 가게로 시작해 와인 등 해외 식자재 라인을 조금씩 늘리며 성장했다. 2010년 200개점을 돌파한 데 이어, 지난해 8월 기준 전국 474개 점포를 운영 중이다. 신주쿠 오다큐백화점, 도요스 라라포트 등 주요 쇼핑몰에 입점하며 확장세를 이어가고 있다.
칼디의 인기 요인은 뛰어난 가성비와 ‘보물찾기’ 마케팅이 꼽힌다. 일단 ‘해외 식료품의 다이소’라 할 만큼 가격이 싸고 종류도 다양하다. 일본 전역에 수십 개 대형 매장을 오픈해 규모의 경제를 이룬 덕분이다. 갈릭 마가린, 고등어찜 캔, 두유 비스킷 등 칼디에서만 파는 독창적인 PB 제품으로 SNS 등에서 ‘내돈내산 후기’가 퍼지며 입소문이 난 것도 주효했다.
여기에 서양의 도서관을 연상시키는 차분한 인테리어도 한몫했다는 평가다. 김소정 코트라 도쿄무역관 과장은 “칼디는 조도를 떨어뜨리고 간접조명을 활용해 상품을 돋보이게 한다. 진열 방식도 종류별로 상품을 획일적으로 모아놓는 기존 방식에서 탈피해 다소 규칙성 없이 진열한다. 덕분에 고객은 쇼핑하는 동안 보물찾기를 하는 듯한 재미를 느낄 수 있다”고 전했다.
이 같은 칼디의 진열 방식은 일본 소매점 돈키호테의 그것과 언뜻 비슷해 보인다. 그러나 돈키호테보다는 더 고급스럽고 정돈이 된 분위기다. 김소정 과장은 “돈키호테가 아마존에서 정글 탐험을 하는 느낌이라면, 칼디는 도서관에서 읽고 싶은 책을 찾는 느낌이다. 상품을 지역별, 테마별로 진열해 고객이 쇼핑하는 동안 마치 세계 여행을 하는 듯한 재미를 느낄 수 있다”고 말했다.
인터뷰 | 김소정 코트라 도쿄무역관 과장
1인 셀프 고깃집·‘완전식’ 파스타&빵 인기
Q 최근 일본 외식 업계 트렌드는 어떤가.
A 큰 흐름은 우리나라와 대동소이하다. 닛케이 조사에 따르면, 코로나19 사태로 외식 수요가 급감하며 지난해 일본 전국 음식점의 약 6%에 해당하는 약 4만5000개 점포가 폐업했다. 우크라이나 전쟁과 엔저에 따른 수입 물가 상승 등의 영향으로 가격 인상 압력도 거세다. 덮밥(규동) 체인점 요시노야는 7년 만에, 스타벅스재팬은 16년 만에 가격을 인상했다. 구인난도 심각해 거리마다 ‘직원 구함’ 공고를 걸어놓은 가게를 흔히 볼 수 있다.
Q 일본 외식 업계는 어떻게 대응하고 있나.
A 우선 상품력을 강화해 객단가를 인상함과 동시에, 할인 행사를 통해 고객 이탈 방지와 신규 고객층 확보에 나섰다. 일례로 일본의 만두 전문 체인 ‘교자의 오쇼’는 지난 5월 전체 메뉴의 가격을 20% 올렸다. 그럼에도 5월 월매출은 지난해 동기 대비 120% 늘어 창업 이래 역대 최고를 기록했다. 한정판 라멘, 야키소바 등 새로운 메인 메뉴를 매달 개발해 만두와 세트로 판매하며 객단가를 높이고 신메뉴를 원하는 고객 수요에 대응한 것이 주효했다. 또 회원제를 통해 기존 고객의 충성도를 높였다. 결제 금액 500엔당 스탬프 1개를 찍어주고, 스탬프를 여럿 모으면 각종 할인 혜택을 준다. ‘나 홀로 매장 방문’을 주저하던 여성 고객을 위해서는 매주 금요일 ‘집에서 바로 해먹을 수 있는 생만두 할인 캠페인’을 진행한다. 논(non) 알코올파를 위한 ‘저알코올맥주+만두 세트’ 출시로 고객층을 넓히기도 했다. 이를 통해 코로나 시국에 고객 수는 오히려 증가했다.
교외 지역에 출점하던 프랜차이즈들은 도심으로 진입하고 있다. 도심에서 폐업한 가게가 속출해 공실이 증가하자 임대료 등 출점 비용이 저렴해졌기 때문이다. 고깃집 체인 ‘야키니쿠 킹’이 지난 5월 말 도쿄 아사쿠사에 위치한 복합 쇼핑몰 ‘아사쿠사 ROX’에 신규점을 오픈했다. 미국 나스닥에 상장한 회전초밥 체인 ‘쿠라 스시’도 3월 말 도쿄 스카이트리가 있는 오시아게역 앞에 새로 출점했다.
Q 최근 일본에서 뜨는 이색 아이템은.
A ‘고깃집의 패스트푸드화’를 실현한 1인 셀프 고깃집 ‘야키니쿠 라이크’가 인기다. 점포 수가 2020년 3월 28개에서 최근 82개로 코로나 시국에 오히려 3배나 늘었다. 1인당 미니 불판 1개와 칸막이를 자리마다 설치하고 100% 셀프 서비스로 이뤄지는 것이 특징이다. 키오스크로 주문하면 약 3분 내외로 음식이 나오고, 고기의 여러 부위를 내 맘대로 조합해 맛볼 수도 있다. 코로나19 감염을 걱정하거나 고깃집에 혼자 가기 민망해하는 고객을 타깃으로 한다.
6~7월 기간 한정으로 약 2000엔에 무려 7시간 무제한 고기 리필 서비스를 제공한다. 하지만 실제로는 평균 1회 정도 리필하고 체류 시간도 길어야 1시간, 평균 25분이어서 회전율이 매우 좋다. 최근에는 일본 야키니쿠 업계 최초로 대체육을 메뉴로 선보였다. 단순히 저가에 고기를 파는 게 아니라 대식가, 애주가, 채식주의자 등 다양한 고객층을 끌어들이려는 전략으로 풀이된다.
빵 2개만 먹으면 단백질, 식이섬유, 철분, 칼슘, 비타민B2 등 일일 권장 영양소의 3분의 1을 섭취할 수 있는 ‘완전식’ 파스타&빵도 반응이 좋다. 아마존재팬에서 지난해 8월 기준 누적 판매량 1000만개를 돌파했다. 전국 편의점 등 오프라인으로 판매 채널을 확대 중이다.
[도쿄·오사카 = 노승욱 기자]
[본 기사는 매경이코노미 제2168호 (2022.07.20~2022.07.26일자)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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