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자·인력' 늘리고 '시스템·소부장' 끌어올린다..'반도체 전략' 발표

정종훈 2022. 7. 21. 1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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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석열 대통령이 4월 29일 대전 한국과학기술원(KAIST) 내 나노종합기술원을 방문, 반도체 연구 현장을 둘러보던 중 반도체 웨이퍼를 살펴보고 있다. [연합뉴스]

정부가 반도체 기업 투자를 독려하기 위해 인프라·세제 지원 등을 대폭 확대한다. 반도체 산업의 핵심인 인재는 규제 개선과 민·관 협력 등으로 빠르게 육성한다. '선택과 집중'식 지원으로 시스템반도체 선도 기술 확보와 소부장 생태계 자립에도 나선다.

이창양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은 21일 이런 내용의 '반도체 초강대국 달성전략’을 발표했다. 정부는 5~6월 취합한 업계 건의, 애로 사항을 바탕으로 관계 부처 합동 반도체 전략을 마련했다고 밝혔다. 지난주 산업부가 윤석열 대통령에 보고한 새 정부 정책 방향에 담긴 주요 업종별 전략 발표의 시작인 셈이다. 국내 산업의 미래 먹거리인 반도체 육성의 핵심은 ▶투자 ▶인력 ▶시스템반도체 ▶소부장 등 4가지 분야 지원이다.


산단 인허가 빠르게, 세액공제는 더 많이


이는 전 세계적으로 반도체 패권 전쟁이 본격화되는 가운데 한국의 반도체 산업의 생태계 기반이 취약하다는 현실 인식에 따른 것으로 분석된다. 한국의 반도체는 글로벌 시장에서 우위를 점하고 있지만, 기술 측면에서는 팹리스(설계)·파운드리(반도체 위탁생산)·후공정(패키징) 등에서는 미국·대만 등 선도 국가와의 격차가 여전하다.

투자의 경우 경쟁국보다 보조금이나 세제 지원 등 투자 인센티브가 부족해 반도체를 국내에서 제조할 유인이 부족하다는 게 정부의 판단이다. 미국은 반도체 시설과 연구개발(R&D) 투자에 5년간 520억달러(약 68조원)를 지원하는 법안을 논의 중이고, 유럽연합(EU)은 2030년까지 공공·민간 투자에 430억유로(약 56조원)를 지원하는 법안을 검토하고 있다. 일본은 반도체 첨단기업 지원을 위해 올해 7740억엔(약 7조4000억원) 규모의 추경 예산을 긴급 편성했다.

이에 정부는 우선 반도체 기업을 지원해 2026년까지 340조원 이상의 투자를 달성한다는 목표를 내걸었다. 대규모 신·증설이 진행중인 경기 평택, 용인 반도체단지의 전력과 용수 등 필수 인프라 구축 비용엔 국비 지원을 검토한다. 반도체 단지 용적률은 최대 1.4배(350%→490%)로 상향한다. 클린룸(미세공정 조건을 제어하는 공간) 개수가 평택ㆍ용인에서 각각 6개, 3개씩 늘면서 9000명의 고용 증가 효과가 있을 것으로 전망됐다.

대기업 설비투자에 대한 세제 지원도 늘린다. 세액공제 비율을 기존의 6~10%에서 2%포인트씩 끌어올려 8~12%로 맞춘다. 이는 중견기업과 동일한 수준이다. 또한 일본 수출규제 품목 R&D(연구·개발)에만 허용하는 특별연장근로제(주 최대 64시간)를 9월부터 전체 반도체 R&D로 확대한다.

이와 함께 지방자치단체의 까다로운 인허가 절차와 과도한 규제로 인해 투자 지연 사례도 빈번히 발생하고 있다는 업계의 지적도 감안했다. 이에 정부는 국가첨단전략산업특별법 개정을 통해 반도체 산단 조성시 중대ㆍ명백한 사유가 없으면 인허가 신속 처리를 의무화한다. 산단 유치에 따른 이익을 인접 지자체들이 공유하도록 광역단체장의 특별조정교부금을 활용하는 방안도 적극 추진할 계획이다.

그래픽=김경진 기자 capkim@joongang.co.kr


산학 협력 주도로 전문 인재 빠르게 육성


반도체 산업을 끌고 나갈 인력도 대폭 확충한다. 전문인력 공급이 업계의 수요에 비해 턱없이 부족해서다. 한국반도체산업협회에 따르면 지난해 17만7000명이었던 반도체 산업 인력은 2031년엔 30만4000명까지 늘어날 것으로 전망된다. 10년간 12만7000명이 더 필요한만큼 정부는 최소 15만명 이상을 키우겠다는 계획을 세웠다.

산업부는 내년 반도체 특성화대학원을 신규 지정해 교수 인건비, 기자재, R&D 등을 집중 지원한다. 2년짜리 반도체 복수전공ㆍ부전공 과정도 올해부터 30개교가 운영한다. 산학협력에도 초점을 맞춰졌다. 대학에서 인력이 추가로 배출되기 전 '공백기'에 급히 필요한 인재를 양성하는 차원이다.

민간 업계가 주도하는 '반도체 아카데미'를 연내 설립하고, 내년부터 맞춤형 교육을 실시해 5년 동안 3600명 이상의 현장 인력을 키운다. 산업부 관계자는 "반도체 아카데미가 일종의 컨트롤 타워로서 (반도체) 산업계 인력 관리 역할을 할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민관 공동으로 10년간 3500억원의 R&D 자금을 마련해 우수 석박사 인재를 육성하는 ‘한국형 SRC’도 운영한다. SRC는 미국의 민관 반도체 연구 컨소시엄을 뜻한다. 반도체 기업이 기증한 유휴ㆍ중고장비는 교육ㆍ연구 현장에 적극적으로 투입한다. 중소ㆍ중견 소부장 기업의 인력난 해소를 위해 소부장 계약학과도 10개 설립한다.
지난 6월 서울대학교 반도체공동연구소에서 학생들이 반도체 제작과정 교육을 받고 있다. 연합뉴스


시스템 반도체 점유율, 소부장 자립 ↑ 목표


시스템 반도체는 현재 3%인 시장점유율을 2030년 10%까지 끌어올린다는 목표를 내걸었다. 이를 위해 전력ㆍ차량용ㆍ인공지능(AI) 등 3대 차세대 시스템반도체에 R&D를 집중 지원하기로 했다. 2030년까지 전력 반도체엔 4500억원, 차량용 반도체엔 5000억원 규모의 예타사업을 각각 추진한다. AI 반도체는 2029년까지 1조2500억원의 지원이 이뤄질 예정이다. 또한 국내 팹리스가 글로벌 기업으로 성장할 수 있도록 '스타 팹리스' 30곳을 선정하고 1조5000억원 규모의 예산을 몰아준다는 계획이다.

반도체 생태계에 필수적인 소부장 분야도 자생력을 키우기로 했다. 9%에 불과한 시장 선도형 기술개발 비중을 내년부터 20%로 대폭 늘린다. 제2·제3 판교 테크노벨리와 용인 플랫폼시티엔 반도체 소부장 클러스터를 구축할 예정이다. 3000억원 규모의 민관 합동 반도체 생태계 펀드를 조성하고 내년부터 집중 투자에 나선다. 정부는 30%인 반도체 소부장 자립화율이 2030년 50%까지 올라갈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반도체 업계에선 전폭적 지원을 약속한 정부 발표를 환영한다는 반응이 나왔다. 안기현 반도체산업협회 전무는 "인력 투입 등이 시급한 상황에서 정부가 업계에 필요한 계획을 내놨다. 지금 투자 지원을 늘려야 해외와의 격차도 벌릴 수 있다"면서 "앞으로는 계획한대로 정책이 이행되는 게 중요하다"라고 말했다.


"세제 지원 미진, 팹리스 생태계 열악" 지적도


하지만 세제 지원, 인력 양성, 시스템 반도체 육성안 등에 있어 근본 대책이 미진하다는 목소리도 있다. 박재근 한양대 융합전자공학부 교수는 "재원 문제가 있는 건 알지만 중소·중견기업 설비 투자 세제 지원을 늘리지 않은 게 아쉽다"고 말했다.

김형준 KIST 차세대반도체연구소장은 "지금 정책은 팹리스 회사가 망하지 않게 인공호흡만 해주는 수준이다. 외국으로 인력 유출되지 않게 국내 생태계부터 만들어줘야 한다"면서 "인력 양성은 학사보다 석·박사급 인력을 더 배출하는 방안을 고민해야 한다. R&D 예타도 금방 바뀌는 반도체 트렌드를 감안해 금액도 늘리고 통과도 빨리 해주는 게 중요하다"라고 밝혔다.

단기적으로는 글로벌 경기 침체에 따른 민간 투자 축소나 공급망 불안 같은 대내외적 상황도 변수로 꼽힌다. 최근 SK하이닉스가 청주 공장 증설을 보류하는 등 반도체 업황도 흔들리고 있어서다. 다만 박재근 교수는 "반도체가 경기 사이클을 타긴 하지만, 전기차 등 새로운 수요가 꾸준히 늘기 때문에 산업 자체는 계속 성장할 수밖에 없는 구조"라고 말했다.

세종=정종훈 기자 sakehoo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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