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금니 발치한 장애인.jpg'.. 서울경찰청장님, 이 사진 좀 보십시오

이명철 2022. 7. 21. 1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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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애인 활동지원사의 제언] 엘리베이터 없는 혜화경찰서와 전장연 시위, 그리고 경찰이 할 일

[이명철 기자]

오늘은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전장연)을 '지구 끝까지 쫓아가겠다'고 으름장까지 놓았으나, 지구 끝은커녕 자기 사무실에도 들이지 못한 윤석열 정부의 경찰을 위한 제언을 준비했다. 본격적인 이야기를 시작하기에 앞서 이 촌극을 보다 쉽게 이해하기 위해 사진 한 장을 보는 게 좋겠다.
 
 한 장애인이 전신마취 어금니 발치 후 진료를 보러 가고 있다. 병원에 알맞은 수동휠체어가 갖춰지지 않아 산소통을 메고 스스로 전동휠체어를 운전해 이동 중이다.
ⓒ 이명철
 
뒤집어진 비장애인들의 세계

산소통에 주사바늘을 주렁주렁 메고 중환자처럼 엘리베이터를 기다리는 이 장애인은 이날 오전 어금니 하나를 뽑았다. 뇌병변 중증 판정을 받은 이분은 자기 몸을 통제할 수 없어서 가만히 입을 벌리고 있지 못한다. 그래서 어금니 하나를 발치하기 위해 온몸을 마비시켜야 했다. 그래도 전신마취를 한 덕에 평생 못해본 스케일링도 같이 할 수 있었다.

전신마취에서 깨어난 지 몇 시간이 되지 않아 산소통까지 메고 휠체어에 오른 이유는 진료를 받기 위해서다. 본래 입원환자는 이송기사가 수동 휠체어에 태우고 가는데, 이 경우엔 그럴 수가 없었다. 항상 뻗쳐있는 다리 때문에 발을 지탱해줄 발 덮개가 있어야 하는데 이 병원에는 발 덮개가 있는 휠체어가 없었던 것이다.

결국 이 장애인은 진료를 보기 위해 마취가 덜 풀린 몸을 이끌고 스스로 본인의 몸에 맞춘 전동 휠체어를 운전해야 했고, 이송기사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곤 멋쩍은 얼굴로 엘리베이터를 잡아주는 것뿐이었다.

'어금니 발치한 장애인.jpg' 사진 뒤에는 처음 마주한 '장애'라는 세계에 당황하는 비장애인들이 여럿 있다. 일단 나부터가 어금니 하나 발치하는 데 전신마취까지 해야 한다는 사실에 당황했고, 치아의 파노라마 사진을 찍는 영상기사는 고가의 영상장비가 처음으로 무용지물이 되는 상황에 당황했다.

진료과의 수많은 간호사들은 아무렇지 않게 지나다녔던 통로가 누군가에겐 좁을 수도 있다는 사실에 당황하며 통로에 놓인 카트를 이리저리 치우기 바빴고, 레지던트는 치과 침대에 환자를 앉혀야 하는 자신의 책무와 도저히 그럴 수 없는 장애라는 현실, 그리고 최종결정권자인 교수의 책망이 예상되는 상황 사이에서 빠르게 머리를 굴려야 했다. 그의 당황한 얼굴은 뒤이어 도착한 교수가 "그냥 휠체어에 앉은 채로 진료를 보지"라고 결론을 내려준 뒤에야 평온을 되찾았다.

장애라는 낯선 개념이 비장애인의 세계를 완전히 뒤집어 놓는 일은 병원에서만 벌어지지 않는다. 일상에서는 식당이나 카페에서 흔히 만나게 된다. 휠체어 접근성이 떨어지는 대한민국에서는 당연히 식당이나 카페에 가기 전 휠체어 진입이 가능한지를 알아봐야 한다.

전화로 휠체어 진입이 가능하다는 답변을 받고도 안심해서는 안 된다. 막상 가보면 엘리베이터는 있는데 건물 입구에 경사로가 없거나 낮은 계단이 한두 개 있어서 엘리베이터까지 진입이 안 되는 경우도 있고, 건물 둘레에 차량 주차를 막기 위한 U자형 볼라드가 빼곡히 설치돼 점포 앞에 있는 경사로까지 닿을 수 없는 경우도 많다.

그럴 때면 휠체어 진입이 가능하다고만 믿었던 식당이나 카페의 직원들은 이른바 '벙찐' 표정을 지을 수밖에 없다. 아무렇지 않게 다니던 편안한 그 공간들이 장애라는 장벽에 둘러싸이는 경험을 하곤, 자기가 알던 세계의 이면을 새롭게 깨닫는 것이다.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전장연) 회원들이 14일 오후 서울 종로구 혜화경찰서 앞에서 열린 전장연 경찰 조사 자진출석 기자회견에서 구호를 외치고 있다. 박경석 전장연 상임대표는 이날 혜화경찰서에 엘리베이터가 설치되면 경찰 조사에 임하겠다고 밝히며 양일홍 혜화서 경무과장에게 입장문을 전달했다
ⓒ 연합뉴스
 
윤석열 정부의 경찰이 몰랐던 것 

14일 전장연 관계자들이 자진해서 혜화경찰서에 조사를 받으러 갔는데도 엘리베이터가 없어 발길을 돌렸다는 이야기를 접했을 때, 아마도 '벙쪄'있었을 경찰들의 얼굴이 가장 먼저 떠올랐다.

이 일이 있기 약 한 달 전, 김광호 서울경찰청장이 전장연의 출근길 지하철 시위를 두고 호기롭게 "지구 끝까지 찾아가서 사법처리하겠다"고 으름장을 놓을 때만 해도 자기들의 공간이 장애에 취약하다는 사실을 진실로 인식하지는 못했을 것이다.

막상 현실로 다가왔을 때 궁여지책으로 1층에 있는 별도 조사실에서 조사를 진행하겠다는 방침을 내놨지만, 설사 일이 그렇게 됐다 해도 어수선하기 그지없는 그 공간에서 조사를 하는 내내 쩔쩔맸을 광경이 눈에 선하다.

더 처참한 것은 그게 고작 '시작'일 뿐이라는 거다. 제대로 조사조차 못 하는 경찰서를 눈앞에 두고 한 가지 더 물어야 할 것이 있다. '잡으면 가둘 수는 있나?' 일단 구속수사를 못 한다는 건 쉬이 짐작할 수 있다. 내가 활동을 보조하고 있는 장애인은 활동지원사가 없이는 일상생활이 어렵다. 그러니 이 사람을 가두려고 하면 나까지 가둬야 한다.

'장애인활동지원에 관한 법률'에 따르면 '금고 이상의 실형을 선고받'은 때에야 활동지원급여가 중단이 되므로 선고가 내려지지 않은 수사 단계에서는 활동지원을 보장해야 한다. 그러니 활동지원사인 나까지 가둬야 하는데 나는 갇혀야 할 이유가 없으므로 언제든 유치장이나 구치소를 오갈 수 있어야 한다. 경찰은 이런 상황에 대한 매뉴얼을 갖추고 있을까?

그게 아니라도 장애인을 가두기 위해서는 비장애인보다 더 많은 공간과 더 많은 시설들이 필요하므로 구속수사는 여간 불편한 일이 아니다. 장애가 있으니 도주의 우려는 없다고 주장할 수 있겠지만, 증거를 인멸할 가능성을 완전히 배제할 수는 없음에도 경찰은 구속영장을 신청하지 않을 가능성이 매우 높다. 마땅히 가둬놓을 방법이 없으니까.

'금고 이상의 실형'에도 애로사항은 따른다. 물론 지금도 교도소에 수감된 장애인들이 있고, 나름 장애인전담교정시설도 있다. 하지만 그 교도소의 인권침해 상황은 훨씬 더 처참하다. 몇 해 전 의정부교도소에 수감됐던 한 척수마비 장애인은 구금된 지 7개월 만에 손톱만 했던 욕창이 뼈가 드러날 정도로 커져 대학병원에 입원해야만 했다.

국가인권위원회가 2020년 수행한 '구금시설 장애인수용자 인권 실태조사'에 따르면 전국의 구금시설에 1500명이 넘는 장애인수용자가 있지만 그들을 관리나 지원은 세부적인 매뉴얼 없이 개별 교도관의 경험에 의존하고 있다고 한다. 교정시설에서의 본래 목적인 교정은커녕 장애인수용자의 아주 기본적인 생활조차 기대하기 힘든 상황인 것이다.

경찰이 '으름장' 놓는 대신 해야 할 일

혜화경찰서에서 있었던 촌극은 역설적으로 출근길 시위가 왜 필요한지를 실감케 한다. '저렇게까지 해야 하나?'라는 의문을 가졌던 사람들 중 상당수가 '정치 1번지'라고 하는 종로구의 공적인 시설에도 장애인편의시설이 없다는 것에 시위의 필요성을 깨닫게 됐을 것이다. 무엇보다 사건이 벌어졌던 그 자리에 있었던 경찰들이 깊게 느꼈을 거라 기대한다. 자신들이 별 생각 없이 향유하던 그 공간들이 장애에 얼마나 취약한지를,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사는 세상이 얼마나 다른지를 말이다.

이번에 어금니를 발치했던 치과병동에서는 그렇지 않았지만 중증 장애인이 종종 입원을 하는 다른 병동에서는 전부 의사가 병실로 찾아와 진료를 봤었다. 어느 정도 장애인편의시설을 구비한 대학병원이라고 할지라도 중증 장애에는 취약하다는 것을 받아들이고, 찾아가는 편이 서로에게 더 편하다는 걸 인정하는 것이다. 애초에 장애인편의시설이 충분하지 않다는 점에서 이 또한 임시방편에 불과하지만 현실을 당장 바꾸기는 어려우니 어쩔 수 없는 선택이다.

윤석열 정부의 경찰도 등등한 기세를 잠시 누그러뜨리는 건 어떨까. 사법처리를 위해 찾아갈 곳은 '지구 끝'이 아니라 알맞은 조사가 가능한 공간이다. 스스로 법을 지키지 못했다는 것을 인정하고, 당연히 갖춰야 할 편의시설을 갖추지 못한 것에 사과하고, 개선방안을 발표한 뒤, 굳이 조사를 해야겠다면 조사할 수 있는 공간을 갖추고 이야기를 시작해야 할 것이다. 출근길 시위의 필요성을 경찰 스스로 입증한 마당에 무엇을 더 조사해야 하는지는 모르겠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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