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엔지니어, 바라카 '원전'보다 더 놀란건 따로 있었다"
탈원전 정책의 여파는 단순히 국내 전기요금 상승 압력을 키우고 석탄·액화천연가스(LNG) 발전 의존도는 높이는 ‘표면적 영향’에 그치지 않았다. 원전 기자재·부품 생산 기업의 매출, 원전 설계부터 운전까지 전 과정의 능력을 갖춘 인력 등이 모두 쪼그라들며 산업 생태계에 속 깊은 ‘내면적 영향’을 남겼다. 원전업계는 정부가 원전의 수출 산업화를 국가적 과제로 삼은 만큼, 아랍에미리트(UAE) 바라카에서의 ‘무형자산’을 적극적으로 활용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12일 UAE 바라카 인근의 도시 루와이스에서 만난 박상철 한국수력원자력 바라카 2발전소 시운전 운영부장은 “우리가 최초로 중동 지역에 한국형 원전 APR1400을 건설하고 운영하는 모습을 전 세계 엔지니어가 함께 일하며 목격했다”며 “원전이라는 형체보다 무형의 기술력을 더 크게 인정받았다”고 말했다. 박 부장은 바라카 원전에서 5년 2개월째 일하며 원전의 건설부터 운전 등 전 과정을 경험한 베테랑이다.
박 부장은 “팀 코리아는 한국 최초의 상업 원전인 고리 1호기부터의 노하우를 총망라해서 바라카에 왔다”며 “주요 공정 달성과 운전 단계에서도 팀 코리아의 역할이 크다”고 전했다. 바라카 원전의 1·2호기는 각각 지난해와 올해 상업운전을 시작해 UAE에 전력을 공급하고 있고, 3호기는 지난달 연료를 장전하는 등 본격적인 가동 준비에 들어갔다. 4호기는 오는 2024년부터 가동될 예정이다.
바라카 원전 현장 인터뷰
현장에선 바라카에서의 경험이 단순히 한 번에 그치지 않고, 향후 원전 수출로의 ‘교두보’가 될 것이란 기대감이 크다. 2030년까지 원전 10기를 수출하겠다는 정부의 계획도 ‘충분히 가능하다’는 게 현장의 시각이다.
현장 실무진이 전 세계 엔지니어와 맺은 관계 역시 한국의 큰 무형자산이다. 박 부장은 “바라카에 있어 본 직원은 새로운 해외 사업에 더 참여하고 싶은 욕심들을 갖고 있다”고 귀띔했다. 그는 “직원들 눈이 많이 높아졌는데, 해외 사업을 하면서 각국 엔지니어와 소통하다 보니 글로벌한 시선을 갖게 된 것”이라며 “10기를 수출하려면 대통령부터 현장 실무진까지 일종의 외교에 뛰어들어야 할 텐데, 글로벌 에티켓이 있는 이 직원들이 역군이 될 것”이라고 힘을 주었다.
해외 사업으로 국내 원전 생태계에 기여하고 있다는 자부심도 컸다. 박 부장은 “새로운 환경에서 새로운 설계를 하다 보면 기술이 늘어난다”며 “원전 산업이 계속 발전해야 할 이유가 생기기 때문에도 해외 사업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날 만난 현장 실무진들은 가슴에 비슷한 그림의 배지를 달고 있었다. UAE 초대 대통령 자이드 국왕의 얼굴이 그려진 배지, 태극기와 UAE 국기가 함께 있는 배지였다. 박 부장은 “현지 문화를 이해하고 존중해주는 외교적 노력에 관계가 자연스럽게 개선되기도 했다”며 “우호적인 관계를 맺어 놓았기 때문에 바라카에서 어려움이 있을 때도 좀 더 수월하게 넘어갈 수 있었다”고 설명했다.
탈원전 기조가 한창일 땐 우려도 있었다. 현지 직원들은 “정치에 휩쓸려서 해야 할 일을 안 하면 안 된다”며 “원전이 없는 국가에서 온 엔지니어가 많은데, 그들 한 사람 한 사람과 기술 공유하고 관계를 유지하며 변화를 기다렸다”고 했다. 실제 UAE원자력공사(ENEC)와 한국전력공사의 합작투자로 설립된 바라카 원전 운영사인 나와(Nawah)에는 한국원자력기술원(KINS)에서 APR1400 실습 교육까지 받은 ‘친한파’가 많다고 한다.
현장 실무진은 바라카의 경험을 ‘성공 공식’으로 만들어서 발전시켜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박 부장은 “경험은 무형자산이기 때문에 정리가 돼 있지 않으면 나중에 후속 사업에 반영하기 어렵다”고 했다. 그러면서 “해외 발전소에서 얻은 경험을 국내와 공유하며 서로 피드백을 주고받고 있다”며 “발전소에 문제가 생기면 화상 회의를 통해 국내의 경험을 가져오고, 반대로 현장의 경험을 전수하기도 하며 소통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바라카=임성빈 기자 im.soungbi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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