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0% 탕감해주다니"..정부가 불지핀 '도덕적 해이' 논란
탕감률 60~90%..기존 채무조정 제도 뛰어넘는 수준
차주에겐 도덕적 해이, 국민엔 사회적 신뢰 상실 불러와
"기존 채무조정 프로그램으로도 가능..오히려 정리 도와줄 필요도"
정부가 오는 9월말 코로나19 피해 소상공인 대출 만기 연장과 상환 유예를 종료하면서 30조원 규모의 '새출발기금'을 세우기로 했지만 빚 탕감 논란으로 금융당국은 거센 비판에 직면했다. 원금 감면이 인기영합을 위한 정치적 결정이라는 비판과 함께 앞으로 빚 탕감 기대가 커지면서 '모럴해저드(Moral Hazard·도덕적 해이)'와 부채 부실화를 부추길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부실차주의 대출을 60~90%까지 탕감해주겠다는 것은 얼마나 파격적인 결정일까. 금융권에서는 정부가 설정한 탕감률이 '지나치게 과감하다'고 평가한다. 기존 채무조정 제도로는 쉽게 받을 수 없는 수준이기 때문이다. 신용회복위원회 채무조정절차인 '개인워크아웃'의 원금 탕감 비율은 최대 30%까지다. 사실상 돈을 떼였다고 판단될 때만 20~70%까지 탕감이 이뤄진다. 기초수급자에 한해서는 90%까지 가능하긴 하지만, 전체 탕감률은 평균 40%대다. 학자금 대출 연체자 탕감률도 30%까지다. 90%가 넘게 탕감 받으려면 신용불량자가 돼 파산으로 면책을 받거나, 법원에서 개인회생 절차를 밟는 방법이 유일하다.
김주현 금융위원장은 "소상공인과 자영업자가 파산하도록 두면 우리 경제가 더 엄청난 비용을 치뤄야 한다. 따뜻한 마음으로 이해해달라"고 취지를 설명했지만, 갚으라는 신호를 보내지도 않고 면죄부부터 줬다는 비판은 사그라들 줄 모르고 있다. 금융권과 전문가들은 코로나19란 특수한 상황을 감안할 때 지원의 필요성엔 공감하면서도, 도적적 해이가 발생하지 않으려면 지원 과정을 정교하게 다듬어야 한다고 조언했다.
◆정부가 불지핀 모럴해저드 논란
기업과 개인의 대출 보증을 해주거나 부실채권을 처리하는 금융공기업 관계자들조차 정치적 목적의 '생색내기'가 차주에겐 도덕적 해이를, 국민들에겐 사회적 신뢰 상실을 불렀다고 지적한다.
"이 바닥에 있어본 사람들은 한번 구제 받은 사람들이 이후 다시 한계 상황에 내몰리는 사례를 심심치 않게 볼 수 있다. 소상공인은 도와줘야 할 이유가 있지만 기존 법원, 신용회복위원회, 한국자산관리공사의 채무조정 프로그램으로도 구제 가능하고, 오히려 파산할 사람들은 정리하도록 도와줘야 하는데 이렇게 수십조원을 쏟아 빚을 면제까지 해줘야 할지 회의적입니다."(A금융공기업 고위 관계자)
부실채권(NPL)을 다뤄 온 금융권 한 관계자도 "한계차주를 인위적으로 구제하는 자체가 부실을 더 키우는 측면도 있다"면서 "실제 현업에서 보면 사업 중 어려움에 빠졌다가 구제를 받고, 이후 다시 한계 상황에 내몰리는 사례를 심심치 않게 볼 수 있다"고 전했다. 또 다른 관계자도 "일부 차주는 경쟁력 강화 대신 각종 정책자금 대출에 '중독'되기도 한다"고 말했다.
또 다른 관계자는 "어려움에 빠진 자영업자를 지원한다는 좋은 취지일 수도 있지만 대통령 지지율이 곤두박질치고 있는 상황에서 선심성으로 빚을 탕감해주는 것 아니냐"며 "이번 대책을 발표할 때 60~90% 탕감한다는 수치를 밝히지 말고 '채무조정 프로그램을 가동한다'고 하고 나서 실제 심사 때 60~90%를 탕감해주든지 하면 되지, 굳이 60~90% 수치를 밝힌 것은 자영업자들 표(여론 지지)를 얻으려는 정치적 목적으로 볼 수밖에 없다"고 비판했다.
정책금융 지원이 한계 차주의 상황을 신용도 하락 등으로 더욱 악화시킬 수 있다는 연구결과도 있다. 한국개발연구원(KDI)이 지난해 발표한 '자영업자 부채의 위험성 진단과 정책방향' 보고서에서 정책금융을 받은 개인사업자 및 유사 조건의 대조군을 비교·분석한 결과(2016~2017년 기준)에 따르면, 정책금융 지원 시점 1년 후 폐업한 개인사업체 대표의 신용도는 64점 하락(표본 2800개)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전체 표본(3만개)의 24점 대비로 2.6배 더 컸다.
다만 이와 관련해선 코로나19란 특수한 상황을 감안할 때 불가피한 조치라는 의견도 적지 않다. 주원 현대경제연구원 경제연구실장은 "코로나19로 받은 충격이 현재까지 이어지고 있는 상황인 만큼, 지금은 시장경제 논리보단 정치·사회적 논리가 우위에 있는 국면"이라고 전했다.
◆"도덕적 해이 전례 안 되려면 선별·미세조정 필수"
전문가들은 향후 소상공인·자영업자의 도덕적 해이 사례를 막기 위해 정부가 이번 지원 과정에서 철저한 선별과정을 거쳐야 한다고 조언했다. 코로나19 재확산 기미까지 보이는데다 경기가 악화되고 있는 만큼, 소상공인·자영업자에 대한 지원이 일회성으로 그치지 않을 가능성이 높기 때문에 처음 방향을 잘 잡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이다.
한재준 인하대 글로벌금융학부 교수는 "현 시점에서 소상공인·자영업자에 대한 지원은 불가피한 측면이 있다"면서 "(모럴해저드를 피하기 위해) 한계 차주들의 영업 성과나 고용 상황을 보면서 조건부로 탕감을 해 주는 방안도 고려해 봄 직하다"고 전했다.
이정희 중앙대 경제학과 교수도 향후 소상공인·자영업자에 대한 지원은 지속될 수 밖에 없을 것이라면서 "향후 이어질 지원에도 도덕적 해이가 전례로 남지 않도록 하려,면 행정 상의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정부가 세밀하게 대상자들을 선별하고 미세조정 해 낼 수 있어야 한다"며 "예컨대 부채가 코로나19처럼 개인의 능력을 벗어난 범위에서 온 것인지, 혹은 투자(에 따른 손실) 때문인지 등을 분리해 선별해야 한다"고 밝혔다.
유제훈 기자 kalamal@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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