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낮으로 통역해도 무급.. 그녀들의 기막힌 공짜 노동 [해시태그 #지역]

박누리 2022. 7. 21. 05: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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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촌과 외국인노동자를 이어주는 이주여성의 일은 왜 '봉사'가 될까

[박누리 기자]

"Tài liệu đó sẽ phải kiểm tra lại ở văn phòng quân đội. Tôi cũng sẽ hỏi người phụ trách."(그 서류는 군청에서 다시 확인해야 할 거예요. 담당자에게도 물어보겠습니다.)

"확인해봤는데요, 지난번처럼 제출하면 된다네요. 네, 또 궁금한 거 있으면 연락 주세요."

전화기 너머 희미하게 한국어와 베트남어가 번갈아 들린다. 일손이 부족한 농촌에 계절노동자로 들어온 베트남 노동자와 지역 농민의 목소리다. 그리고 그런 그들의 말을 사뭇 진지한 얼굴로 들으며 그때그때 필요한 해결책을 제공해주는 건, 10여 년 전 결혼과 함께 베트남에서 충북 옥천으로 이주한 부티탄화씨다. 

'돕고 있다'는 의미
 
 사진은 지난 4월 20일 강원 철원군 근남면의 토마토 재배 농가에서 외국인 노동자들이 모종을 심고 있는 모습.
ⓒ 연합뉴스
 
급격한 고령화와 인구 감소. 이대로라면 사람이 없어 농사를 포기해야 할지도 모른다는 게 지역 농민들의 말이다. 농촌에 인력이 달리는 게 어디 하루 이틀 일이겠냐만은 코로나19 상황을 지나면서 그 위기는 더욱 고조됐다. 팬데믹으로 외국인 노동자 입국이 차단된 지난 2년여는 우리 농민의 속이 바짝바짝 타는 시간이었다. 

그런 고통의 시간을 지나 올해 드디어 계절노동자와 지역 농가가 재회했다. 올해 상반기 50명이 넘는 계절노동자가 옥천 농가의 일손을 돕기 위해 입국한 것이다. 옥천의 경우 농가의 일손 부족 해결을 위해 지역 결혼이주여성의 가족을 계절노동자로 연계한다. 농번기 노동력 문제도 덜고 이주여성들이 고국의 가족과 만날 기회도 제공한다는 점에서 농가와 이주여성 모두의 호응을 얻고 있는 사업이다. 

부티탄화씨에게 전화로 동시통역을 부탁한 것도 바로 이들이다. 베트남어를 모르는 지역 농가와 한국어를 모르는 이주여성의 가족이 의사소통을 위해 SOS 요청을 한 것이다. 이런 전화는 낮이고 밤이고 할 것 없이 걸려온다. 계절노동자 입국으로 농가가 활기를 띠는 만큼 부티탄화씨 역시 덩달아 바빠진 셈이다.

어디 전화 통역뿐이랴. 비자 발급(나라별 절차도 제각각이라 이에 대해서도 따로 안내해야 한다)부터 입국 후에는 외국인등록증 발급, 산재보험 가입이나 통장 개설 등 필수 서류 제출에 대한 안내와 관련 서류 통번역, 여기에 입국 시 인솔과 사전교육 등의 활동을 지원한다.

계절노동자 행정지원 업무를 담당하는 공무원이 1명에 불과한 데다 별도 통번역 인력이 있는 것도 아니다 보니, 옥천군결혼이주여성협의회 회장을 맡고 있는 부티탄화씨가 이를 돕게 된 상황이다. 

'돕고 있다'는 말에서 어느 정도 짐작할 수 있듯 부티탄화씨의 이런 활동은 무급으로 진행된다. "같은 이주여성과 그 가족의 일이기에, 또한 옥천군 입장에서도 좋은 제도라 좀 더 활성화되길 바라는 마음"에서라지만 사실 쉽지만은 않은 일이다.

무엇보다, 개인의 선의에 의존해 진행되는 공적인 일의 지속가능성을 염려하지 않을 수 없다. 농촌에서 가장 시급하다고 할 수 있는 일손 문제를 해결하는 동시에 지역의 중요한 성원으로 자리 잡은 이주여성 가족의 일임에도, 이들을 연결하는 또 다른 이주여성의 활동이 '무급'이라는 건 여러 모로 시사하는 바가 적지 않다. 
     
자신의 언어로 자신의 경험을 이야기하다

이주여성의 일이 이렇게 취급되는 건 어제 오늘 일은 아니다. 옥천 역시 오래 전부터 이주여성의 경제적 자립 지원 필요성이 대두돼왔는데 이를 위한 실효성 있는 정책은 찾아보기 힘든 형편이다.

네일아트 교육 등이 진행된 이주여성 취창업 프로그램은 지역 수요를 전혀 반영하지 못한 내용으로 실질적인 효과를 보지 못했다. 그나마 이주여성 대상 공공일자리 사업이 이주여성의 지역사회 진출과 경제 활동을 지원할 정책으로 기대를 모았으나, 참여자의 민원을 이유로 중단됐다. 이와 관련해서는 여전히 별다른 대책은 없는 상황이다. 

이주여성이 겪는 가정 문제에 대한 지원도 사실상 전무하다. '가족센터'라는 이름으로 다문화가족을 위한 정책 지원 기관이 있긴 하지만 '정상가족'의 틀을 벗어나지 못하다 보니 한계가 명확하다. 가정폭력이나 남편의 경제적 방임으로 도움을 요청하더라도 "그래도 화해하고 잘 살아보라"는 식으로만 결론이 나 실질적인 해결로는 이어지지 못하는 것이다. 

옥천의 경우 결혼을 통해 지역에 정착한 이주여성의 수는 10여 년 전 피크를 찍었다(현재 400명이 넘는 이주여성이 옥천에서 살아가고 있다). 그럼에도 이들의 문제가 여전히 해결되지 못하는 데는, 이들 스스로 자신의 처지를 설명할 언어가 없었기 때문일 것이다. 아니, 사실 그들의 언어는 진작부터 존재했지만 그 이야기를 펼쳐 보일 기회가 없었다는 말이 좀 더 적확하겠다. 
     
이런 가운데 최근 옥천 이주여성의 이야기를 담은 책이 발간됐다. 누군가의 해석이 아닌 이주여성과의 인터뷰를 거의 그대로 인용한 '어딘가에는 싸우는 이주여성이 있다(한인정 글, 포도밭출판사)'다. 지난해 옥천군결혼이주여성협의회가 지역 이주여성들의 이야기를 공유하기 위해 진행한 활동 '우리가 만든 우리 이야기'를 바탕으로 한 출판물이다.

이주여성이 처음 한국으로 오기로 결심한 계기와 과정부터 정착 초기 언어의 장벽과 문화적 차이로 인한 어려움, 가정 안팎에서 겪은 차별 등을 다루고 있다. 이주여성이 그 자신만의 언어로 자신의 경험을 공식적으로 발화하는 장이 된 셈이다. 

부티탄화씨를 만난 것도 책 출간과 관련한 이야기를 듣기 위해서였다. 부티탄화씨는 다음 단계로의 꿈도 꾸고 있다. "한국어로 책을 냈으니 이제 이주여성 모국어로 번역해 내고 싶다"는 것이다. 

어떤 문제는 너무나 익숙해서 우리로 하여금 '이미 잘 알고 있다'는 착각에 빠지게 한다. 이주여성 문제도 그 중 하나다. 미디어에 워낙 자주 오르내리는 의제 중 하나이기도 해서, 이미 이들의 이야기를 (자세히는 몰라도) 충분히 알고 있다고 생각하기 쉽다.

어쩌면 오늘날 모든 약자의 상황이 이렇지 않을까. 그래서 이들의 문제는 이들만의 것이 아니다. 우리가 '좀 더 듣는 것'에 집중해야 할 이유다. 

*덧 : 8월, 옥천에서 이주여성의 이야기를 듣는 자리가 마련될 예정이다. 많은 귀가 이 자리에 함께 할 수 있길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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