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우조선 사태 시작은 2014년 '수주절벽'..23일 휴가 앞두고 '끝장 교섭'

이동현, 고석현 2022. 7. 21. 0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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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식 고용노동부 장관(가운데)과 김형수 조선하청지회장이 지난 19일 점거 농성 중인 대우조선해양 1도크에서 만나 악수하고 있다. [뉴스1]


대우조선해양 하청 노조의 파업을 따라 올라가 보면 문제는 비교적 단순해지면서도 복잡다단해진다. 이번 사태의 가장 큰 배경은 10년 가까이 이어진 조선업 불황과 ‘주인 없는 회사’인 대우조선해양의 나침반 없는 경영 때문이다. 올 상반기 국내 조선업이 세계 1위로 올라서는 등 모처럼 훈풍이 불고 있지만, 꼬여버린 조선업 생태계 회복이 더딘 데다 지난 수년간의 상처가 아물지 않고 있어서다.

21일 국내 조선 업계에 따르면 중국을 제치고 세계 1위 수주 실적을 기록하고 있지만, 실적이 후행(後行)하는 업종의 특성상 일감은 아직 부족한 상태다. 2014년 갑작스러운 ‘수주절벽’을 겪으면서 저가 수주 경쟁이 가속했고, 공사 진척 상황에 맞춰 조선사가 하청업체에 지급하는 기성금(공사대금)도 많이 깎인 상태다. 일감은 줄고, 비용은 낮아 하청업체 노동자들이 손에 쥐는 실질 임금이 낮아진 것이다.

현대중공업·대우조선해양·삼성중공업 등 국내 조선 3사는 2010년대 초반 해양플랜트·드릴십 등 원유·가스 시추 설비를 대거 수주했지만 2014년 저유가 시대가 도래하면서 큰 타격을 입었다. 국제 유가가 낮을 때 해저에 구멍을 뚫어 원유나 천연가스를 뽑아내는 사업은 채산성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 수주 취소가 이어지고 미인도 물량이 늘면서 조선사들은 뼈를 깎는 구조조정에 나섰다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왼쪽)과 김형수 조선하청지회장이 지난 19일 점거 농성 중인 대우조선해양 1도크에서 만나 대화를 나누고 있다. [뉴스1]


최근 들어 LNG선·컨테이너선 등 고부가 선박 수주가 늘면서 오랜 어둠의 터널을 벗어났지만 무너진 조선업 생태계는 좀처럼 회복하지 못하고 있다. 2016~2021년 7만 명이 넘는 하청 노동자가 자발적·비자발적으로 회사를 떠났다. 구조조정 기간 중 삭감된 기성금은 이후에도 크게 오르지 않았다.

사람은 없는데 일감은 줄었고, 기성금도 낮으니 하청 노동자들의 실질임금은 아직도 바닥이다. 한때 연 550%에 달하던 상여금은 아예 사라졌다. 그나마 현대중공업·삼성중공업 등은 최근 선박 인도가 늘면서 현금 흐름이 개선됐고 기성금 인상 등으로 하청업체 생태계에 그나마 숨 쉴 공간을 만들었다.

반면 산업은행이 대주주인 대우조선해양은 이런 여력이 없다. 지난해 1조7546억원의 영업적자를 본 데다 현금흐름도 좋지 않다. 돈을 쓰기 위해선 최대 주주인 산업은행의 승인이 필요한데, 이미 10조원의 공적 자금이 투입된 회사에 추가 자금 지출을 내주기란 쉽지 않다.

올해 대량 수주를 했다지만 ‘헤비 테일(Heavy Tale·선박 인도 이후에 성과금을 집중하는 결제 방식)’로 영업하는 조선업 특성상 잔금 지급은 선박 건조 후반기와 인도에 집중된다. 말 그대로 ‘꼬리가 무거운’ 현금 흐름인 셈이다. 더욱이 원청인 대우조선해양은 사내 하청 노조와 고용 관계가 없고, 교섭 의무도 없다. 주인이 있는 회사는 기성금 인상 등으로 숨 쉴 공간을 만들 수 있지만, 대우조선해양은 그마저도 쉽지 않다.

경남 거제 대우조선해양 옥포조선소 1도크. 초대형 원유 운반선의 진수 작업이 중단된 상태다. [사진 대우조선해양]


1997년 외환위기 이후 조선업은 인건비를 줄이기 위해 원청에 2차-3차 하청으로 이어지는 복잡한 구조가 형성됐다. 2014년 이후 하청 생태계가 붕괴로 더 혼란스러워졌다. 하청업체 주인이 바뀐 뒤 기존 고용 계약을 무시해 직원과 갈등을 빚거나 재하청 과정에서 단기 인력을 수급하는 아웃소싱 업체도 늘었다. 선박 건조에 전문성을 갖춘 인력마저 최저임금 수준을 받는 이유다.

관료화한 노동계의 움직임도 한몫했다. 조선 업계에선 민주노총 금속노조가 ‘주인 없는 회사’인 대우조선해양을 전선으로 삼아 세(勢)를 불리려 하는 게 아니냐는 의구심이 나온다. 노조의 영향력이 줄어든 상황에서 상대적으로 상황이 나쁜 하청 노조를 부추긴다는 주장이다. 대우조선해양 관계자는 “하청 노조원들의 형편이 어려운 걸 모르지 않는다. 하지만 임금이 낮은 게 아니라 일감이 없어서 실질소득이 낮은 만큼 하반기부터 물량이 늘어나면 조금씩 회복될 수 있다”고 말했다.

산업은행과 정부가 하청 노동자를 지원해야 한다는 주장도 나온다. 대규모 공적 자금이 투입된 대우조선해양이 ‘밑 빠진 독’이 돼선 안 되겠지만, 하청 생태계를 지원해 이들의 생계를 안정시킬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저금리 생활자금 지원이나 대환 대출, 소득 공제 확대 등 실질적 지원이 우선돼야 한다는 의미다.

20일 경남 거제시 아주동 대우조선해양 옥포조선소 내 독에서 파업 중인 하청지회(왼쪽)와 파업 철회를 촉구하는 대우조선해양 직원이 벽 하나를 두고 각 농성하고 있다. [연합뉴스]


오는 23일부터 시작되는 2주간의 하계휴가를 앞두고 하청업체 노사 등은 조금씩 타협점을 찾아가고 있다. 금속노조 거제·통영·고성 조선하청지회, 금속노조 대우조선해양지회, 대우조선해양, 협력업체 등은 지난 16일부터 ‘4자 회담’을 이어가고 있는데, “하계휴가 전 협상이 타결돼야 한다”는 공감대가 형성됐다고 한다. 이정식 고용노동부 장관도 20일 오후 일정을 취소하고 전날에 이어 이틀째 다시 경남 거제를 찾았다.

하청업체 노사 등은 이날 오전 11시부터 다시 만나 계속 이견을 좁히고 있다. 당초 하청노조가 요구했던 ‘임금 30% 인상’에 대해서도 지난 19일 사측 4.5% 인상, 노측 5% 인상으로 폭을 좁혔다. 노조가 내년 1월 1일부터 임금 10% 인상을 요구해 이를 두고 조율을 이어나가고 있다. 파업가담자 민형사상 책임 면제, 노조 전임자 지정 등 노동조합 활동 인정을 두고도 의견을 교환하고 있다.

이동현 기자 offramp@joongang.co.kr, 고석현 기자 ko.sukhyu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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