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스관 틀어쥔 푸틴의 반격.."겨울 온다" 흔들리는 반러연합
“윈터 이즈 커밍(Winter is coming).”(겨울이 오고 있다)
국내에서도 인기를 끈 미국 드라마 ‘왕좌의 게임’에 나오는 대사다. 다가올 어려운 시기에 대한 두려움이 담긴 이 문장은 유럽과 미국, 우크라이나의 현 상황에 잘 들어맞는다. 러시아의 에너지 무기화 전략에 뚜렷한 해결책을 찾지 못하면서 올 겨울에 대한 공포가 이들 국가에서 커지고 있기 때문이다. 끈끈했던 서방의 반(反)러시아 연합전선이 흔들릴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유럽은 겨울 추위에 대한 고심이 크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의 ‘가스관 시위’에 속절없이 당하고 있어서다. 푸틴 대통령은 20일(현지시간) 보수 중인 노르트스트림1 가스관을 예정대로 21일 재가동하겠다는 뜻을 밝히면서도 유럽으로의 가스 공급량이 언제든 줄어들 수 있다고 경고했다.
유럽에서 여름은 겨울 난방을 위한 ‘가스 비축기’다. 하지만 예년과 상황이 다르다. 경제 제재에 반발한 러시아가 가스 공급량을 대폭 줄였다. 최근엔 예상치 못한 폭염으로 냉방기 가동을 위한 천연가스 발전 수요가 급증하고 있다. 유럽연합(EU)은 지난 5월 회원국에 올 겨울을 대비해 11월까지 가스 비축율을 80%로 올릴 것을 요청했지만, 유럽가스인프라협회(GIE)에 따르면 18일 현재 EU 평균 비축율은 64.72%에 불과하다. 헝가리·불가리아·크로아티아 등은 40%대에 머무르고 있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올 겨울 기온이 평균보다 낮다면 내년 2월 유럽의 가스 저장고는 텅 비게 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미국도 다가올 겨울에 대한 두려움이 크다. 정확히는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과 집권 민주당이 그렇다. 11월에 있을 중간선거 패배로 정치적 타격을 입을 수 있어서다. 실제로 바이든 대통령의 지지율은 연일 하락세다. 로이터 통신이 여론조사기관 입소스에 의뢰해 지난 17~18일 실시한 여론조사에서 바이든 대통령의 지지율은 36%로 또 다시 역대 최저치를 기록했다. 로이터는 “우크라이나 전쟁과 연료가격 상승 문제 해결을 위해 바이든 대통령이 첫 중동 순방에 나섰지만 지지율 회복은 이뤄지지 않았다”며 “중간선거에서 민주당이 상·하원 중 한 곳을 공화당에 내줄 우려가 커졌다”고 전했다.
이에 가장 큰 걱정에 휩싸인 건 우크라이나다. 유럽과 미국이 전쟁 지원을 끊을 수 있다는 우려 때문이다. EU 집행위원회(EC)가 19일 5억달러(약 6000억원) 규모의 우크라이나 무기 지원 방안을 발표했지만, 러시아의 가스 중단 위협에 생존이 급급한 상황이라 언제까지 우크라이나를 도울 수 있을 것이냐는 비관론이 나오고 있다.
미국에서도 우크라이나를 적극적으로 지원해왔지만 고유가와 인플레이션으로 인해 국내 여론이 악화되면서 ‘언제까지 우크라이나를 지원할 거냐’는 목소리가 나온다. 이에 중간선거 전에 바이든 정부가 우크라이나 추가 지원안을 마련하지 못할 것이란 관측도 제기된다. WSJ는 “11월에 공화당이 하원을 장악하면 우크라이나 지원을 중단할 것이란 예측이 나오고 있다”고 지난 15일 전했다.
때문에 우크라이나에선 올 겨울까지 전쟁을 끝내야 한다는 주장이 나오고 있다. 안드리 예르막 우크라이나 대통령 비서실장은 현지 매체 노보예 브레먀와의 인터뷰에서 “겨울이 지나고 러시아인들이 발판을 마련할 시간이 더 많아질 때 전쟁은 확실히 더 어려워질 것”이라며 “미국이 우크라이나에 겨울 전까지 충분한 양의 무기를 지원해 우크라이나군이 신속하게 승리할 수 있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실제로 올레나 젤렌스카 우크라이나 대통령 부인은 미국을 방문해 19일 바이든 대통령, 질 바이든 여사와 만나며 미국과 서방의 지원을 독려 중이다.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은 “이번 (부인의) 방문이 미국과 협력하고 있는 우크라이나에 중요한 결과를 가져올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이승호 기자 wonderma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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