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우조선노조, 탈퇴 투표에..금속노조 "교섭 찬물 끼얹나"

대우조선해양 하청업체 노동조합의 파업이 49일째 이어진 20일 경남 거제시 대우조선해양 옥포조선소 1독(dock)에서 파업 중인 하청업체 노조원(왼쪽)과 파업 철회를 촉구하는 대우조선해양 사무직 직원이 격벽을 사이에 두고 각각 농성을 벌이고 있다. 송봉근 기자

지난 19일 오후 9시30분쯤 민주노총 금속노조 거제·통영·고성 조선하청지회(하청지회)의 파업이 한창인 경남 거제시 대우조선해양 서문 출입구 부근에서 몸싸움이 벌어졌다. 대우조선해양 소속 A씨(42)가 ‘임금 인상’ ‘단체교섭권 요구’ 등의 문구가 적힌 현수막 17장을 훼손한 게 발단이었다. 훼손 장면을 목격한 하청지회 노조원은 A씨에게 항의했다. 경찰은 하청지회의 장기 파업과 이에 따른 회사 측 손실 등에 불만을 품어 현수막을 훼손한 것으로 보고 A씨를 재물손괴 혐의로 입건했다.

현수막 훼손과 몸싸움을 놓고 대우조선해양 안팎에선 “49일째 파업이 계속되는 상황에서 첨예해진 노노(勞勞) 갈등이 고스란히 드러난 장면”이라는 말이 나왔다. 이는 본격적인 노노 갈등의 시작에 불과하다. 원청 노조인 대우조선지회가 금속노조 탈퇴를 요구하는 총회를 열기로 했다. 반대로 금속노조는 하청지회를 지지하는 결의대회를 열었다.

지난 19일 옥포국제시장에 점포 임대를 알리는 문구가 붙어 있다. [뉴스1]

20일 금속노조 경남지부에 따르면 대우조선지회는 지난 11일 대의원회에서 조합원 3분의 1 이상의 서명을 제출하고 금속노조 탈퇴를 요구했다. 대우조선지회는 이번 하청지회 장기파업 과정에서 금속노조가 사태 해결 등에 있어 제 역할을 하지 못했고, 따라서 가입을 유지할 필요가 없어졌다고 주장했다. 대우조선지회는 21~22일 총회를 연다. 총회에서 재적 인원 과반이 투표하고, 그중 3분의 2 이상이 찬성하면 금속노조를 탈퇴하게 된다. 이에 대해 금속노조 경남지부는 규약상 지부 또는 지회 단위의 총회를 통한 집단 탈퇴가 규정돼 있지 않기 때문에 대우조선지회가 내리는 결정을 인정할 수 없다고 주장했다. 금속노조 경남지부 측은 대우조선지회의 요구를 ‘일부 탈퇴 세력에 의한 총회 강행’으로 규정하고 “하청지회 투쟁을 더 힘들게 하고, 교섭에 찬물을 끼얹는 행위”라고 비판했다.

대우조선해양 바깥에서도 첨예한 갈등이 이어졌다. 금속노조는 20일 오후 2시 거제 대우조선해양 서문 앞에서 조합원 6000여 명이 결집한 가운데 ‘영호남권 총파업 결의대회’를 열었다. 금속노조도 이날 오후 2시30분 서울역 인근에서도 결의대회를 열고 용산 대통령 집무실 앞까지 행진했다.

20일 조선소 서문 인근에 민주노총 금속노조 거제·통영·고성 조선하청지회가 설치한 현수막이 훼손돼 있다. 거제경찰서는 현수막 20개를 훼손한 혐의로 원청 직원 1명을 붙잡아 조사하고 있다고 밝혔다. [뉴스1]

오는 23일에는 전국에서 하청지회 파업을 지지하는 ‘희망버스’가 거제로 향한다. 60여 개 시민사회단체로 구성된 ‘7·23 대우조선 하청노동자 희망버스’ 측은 23일 거제 대우조선해양 서문 앞에 집결할 예정이다. 파업의 조속한 해결을 바라는 일부 거제 시민은 “그게 무슨 희망버스냐” “제발 오지 말았으면 좋겠다” 등 부정적 반응을 보였다.

원청인 대우조선해양 직원 4000여 명도 20일 조선소 내 광장에서 맞불 집회를 열었다. 또 전날부터는 대우조선 직원 B씨(55)가 1독(dock·배를 만드는 작업장) 내부의 선박 약 20m 높이 구조물 위에 올라 하청지회 장기집회에 반대하는 1인 시위를 시작했다.

한편 노사 협상이 진전을 보이면서 사태 해결의 희망도 나온다. 애초 하청지회가 ‘30% 임금 인상’을 요구해 협상이 평행선을 달렸는데, 지난 19일 밤 ‘사측 4.5%, 노측 5% 인상’까지 격차를 좁힌 것으로 전해졌다.

거제=김민주·안대훈·위성욱 기자 kim.minju6@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