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0명이 1만명 인질로 삼아"..대우조선 하청업체 줄도산 직면

안대훈, 김민주, 위성욱 2022. 7. 21. 0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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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업 호황기에 대우조선은 최악의 상황을 맞았다.”

지난 19일 경남 거제시 대우조선해양 옥포조선소. 선박 건조에 필요한 발판을 설치·해체하는 하청업체 A사 소속 노동자 이모(50대)씨가 한 말이다. 이씨는 “회사가 다음 달 문을 닫게 됐다”며 허탈한 표정이었다. 조선소에서 20년 동안 일한 그는 “조선 불황기를 어떻게 버텨왔는데, 갑자기 파업 때문에···”라며 말을 잇지 못했다.

A사는 조선업 노동자들이 일할 수 있도록 작업장에 발판을 설치·해체하는 일을 맡고 있어 조선소 내 거의 모든 공정에 투입된다. 그런데 지난달 2일 대우조선해양 하청업체 노조인 민주노총 금속노조 거제·통영·고성 조선하청지회(조선하청지회)가 파업에 나선 이후 원청인 대우조선해양에서 받는 작업 물량이 급감했다. A사는 일감이 줄자 10명이 할 일을 13명, 15명이 나눠서 하고 근무시간도 줄였다. 하지만 폐업이 예고된 8월부터는 일감이 아예 ‘제로’가 됐다고 한다.

이번 파업 과정에서 조선하청지회 조합원 7명이 선박 4척을 동시에 건조할 수 있는 세계 최대 규모 작업장인 1번 독(dock·배 만드는 작업장)을 불법 점거, 이날까지 농성을 하면서 48일째 조선소 독 가동률이 절반으로 떨어졌다. 이 때문에 선박의 선행·후행 공정에 차질이 생기면서 조선소가 사실상 마비됐다.

당초 A사는 조선업 불황의 여파로 경영난을 겪고 있었다. 그래도 지난해부터 조선업 수주가 회복되면서 올해 하반기부터는 회사 사정이 그나마 나아질 것으로 기대했다. 하지만 파업 이후 더는 회사를 유지하기 어려운 상황에 부닥쳤다. 회사 대표가 이번 달 직원들 임금을 지급하기 위해 사비로 7000만원을 썼지만 적자가 7억원가량 쌓이면서 폐업 수순을 밟게 됐다.

A사 직원 양모(30대)씨는 “그간 버틴 만큼 이제 좀 살아나나 했다. 8월이면 작업 물량이 오를 것으로 기대했다”며 “주말에 인력사무소에서 ‘노가다’까지 뛰며 버텼는데, 결국 파업이 길어지면서 직장마저 잃게 됐다. 억울하다”고 했다.

A사 대표는 “현장직·사무직 140명의 직원 고용승계라도 해주려고 백방으로 알아보고 있는데, 회사를 인수할 분을 찾기 어렵다”고 말했다.

이번 파업이 더 길어지면 110여 개의 대우조선해양 하청업체가 줄줄이 도산할 것이라는 우려도 나온다. 이들 하청업체 종사자는 1만1000여 명이나 된다. 20일 중앙일보 취재를 종합하면 현재까지 폐업하거나 폐업을 예고한 하청업체도 7개다. 파업 이후인 지난달 30일 3개 업체가 폐업했고, 7월 말과 8월 초 4개 업체가 폐업할 예정이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조선하청지회에 가입하지 않은 다른 하청노동자들은 파업을 지지하기보다 원망하는 목소리가 나온다.

폐업을 앞둔 A사 노동자 양씨는 “150여 명이 파업에 참여한 조선하청지회가 1만 명이 넘는 대우조선 하청 노동자들을 대표할 수 없다”며 “자기들 살자고 다른 하청 노동자 목숨을 인질 삼아 협상하지 말라”고 했다.

지역상권에서도 이번 파업사태 장기화를 우려하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대우조선해양 인근 옥포시장에는 “장기간 파업사태 지역경제 파탄 난다!” 등 파업 사태 해결을 촉구하는 지역 상인회의 현수막이 걸려 있다. 대우조선해양은 지난 19일 기준 파업 장기화로 발생한 매출 손실 5700억원을 포함, 7100억원이 넘는 손해를 봤다고 밝혔다.

거제=안대훈·김민주·위성욱 기자 an.daehu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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