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0세 명품 디자이너 마놀로 블라닉이 중국 때문에 눈물 흘린 까닭
“저 지금 구두 사러 나가서 전화 못 받아요. 메시지 남겨주세요.”
집 전화라는 것이 있던 시절의 미국 드라마, ‘섹스 앤 더 시티.’ 주인공 캐리 브래드쇼는 집 전화 부재중 메시지를 이렇게 남겨놓곤 했다. 이 드라마의 팬들이라면 이 브랜드 이름을 떠올렸을 법하다. 마놀로 블라닉. 제품 간접광고(PPL)가 아니었음에도 그 이상의 효과를 냈다. 캐리가 프로포즈를 받을 때도, 데이트를 할 때도, 마놀로 블라닉 구두는 드라마의 조연급 존재감을 빛냈다. 블라닉은 그 디자이너 이름이다. 1942년생인 스페인 출신의 남성 디자이너로, 명품 구두 왕국을 맨손으로 일궈냈다. 국내에서도 인기가 높은 이 구두 한켤레는 100만원은 기본으로 넘는다. 날렵한 앞코와 아찔하게 얄상한 굽, 반짝이는 영롱한 장식이 시그너쳐 디자인이다.
그런 블라닉도 손에 넣지 못한 시장이 있었으니, 중국이다. 최근 중국 당국이 블라닉의 중국 내 독점 판매권을 허용하기 전까지 블라닉은 14억 중국 시장을 놓쳐서 전전긍긍했다. 사정은 뭘까. 파이낸셜타임스(FT) 19일(현지시간) 보도에 따르면 중국의 특이한 법제도 떄문이다. FT는 “중국은 일명 ‘선착순 등록제’라는 것을 실시하고 있다”며 “이 때문에 중국 내에 ‘마놀로 블라닉’이라는 상표를 등록한 한 중국인이 판권을 소유하는 시스템이었다”고 전했다. 마놀로 블라닉이 마놀로 블라닉을 마놀로 블라닉이라는 이름으로 판매하지 못하게 된 배경이다. 이에 블라닉은 수년 전 소를 제기했고, 최근 중국 당국이 블라닉의 손을 들어줬다. FT는 “중국의 상황을 고려하면 이례적인 판결”이라고 전했다. 블라닉 측은 FT에 “소식을 듣자마자 기쁨의 눈물이 줄줄 흘렀다”고 전했다.
블라닉 집안은 공산당과는 오랜 악연이 있다. 그의 친가는 체코 출신인데, 공산당이 득세하면서 핍박을 받았다고 한다. 할아버지가 실종되는 등의 우여곡절을 겪으며 스페인으로 왔고, 여기에서 태어난 이가 블라닉이다. 그는 당초 의류 디자인을 꿈꿨으나 일이 잘 풀리지 않았다고 한다. 그러다 미국 뉴욕에서 자신의 멘토가 된 보그(Vogue)지의 에디터, 다이애너 브리랜드를 만나 구두로 전향했다. 브리랜드는 블라닉에게 이렇게 조언했다고 한다. “이보게 젊은이. 옷 말고 구두를 디자인해봐. 진짜 구두 말일세.” 이후 블라닉은 구두로 패션 역사의 중요한 페이지를 썼다. 이번 중국 시장 본격 진출로 그 역사의 한 페이지는 완성될 전망이다.
Copyright © 중앙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춤추다 숨진 10대들…남아공 술집 21명 시신서 발견된 건
- 인하대 가해자 폰 속 '그날의 영상'…두 사람 음성 담겼다
- 구타 뒤 혼수상태 미 여성, 2년 만에 깨어나 지목한 '충격 범인'
- 에이미 "감금 상태서 강요로 마약 투약"…항소심서 무죄 주장
- "호날두, 성형 중독…최근 중요 부위에도 보톡스 맞았다"
- "월 5800만원 벌고, 건물로 7억 쥐었다" 부업 대박난 노홍철
- 이런게 지하에 있었다니…신세계 백화점 앞 분수대 중단 왜
- 스위스 로잔엔 '법계사'가 있다…성철스님 화두 쥔 영국 스님
- [단독] "유엔사 북송 거부, 문 정부 국군시켜 강행…미 사령관 분개"
- 제주 해안도로서 렌터카 전복, 3명 사망…쏘나타엔 7명 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