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반자살 아닌 살해"..애 둘 죽인뒤 극단선택 실패한 母 최후
“이 사건은 동반 자살 사건이 아니라, 자녀 살해 후 자살 미수 사건일 뿐입니다. 하나뿐인 피고인의 자녀의 목숨을 앗아간 사건이기 때문에 책임을 엄하게 묻지 않을 수 없습니다.”
‘초등생 두 아들 살해 사건’의 1심 선고기일이 열린 20일 오후 서울남부지법. 양형 배경을 설명하는 김동현 형사합의14부 부장판사의 말투는 단호했다. 법정에 선 40대 여성 김모 씨는 미결수용 연두색 수의를 입고 손을 모은 채, 선고 내내 고개를 숙이고 있었다.
김 부장판사는 “인간이란 태어나는 순간 이미 독립된 인격체다. 부모조차도 아이에 대한 생사 여탈권을 가지지 않는다”며 “(아이들은) 꿈을 펼쳐보지도 못하고 영문도 모른 채 믿고 살았던 엄마의 손에 소중한 생명을 빼앗겼다”고 강조했다. 이날 재판부는 김씨에게 징역 20년을 선고하고 10년간 아동·청소년 관련 기관 취업 제한을 명령했다.
김씨는 지난 4월 서울 금천구 자택에서 7살과 8살배기 친아들 두 명을 살해한 혐의(살인)로 재판에 넘겨졌다. 김씨는 범행 후 극단 선택을 시도했지만 실패했고, 이틀 뒤 경찰에 자수해 구속 기소됐다.
범행동기로 인정된 절망감·복수심
첫 공판에서 김씨는 모든 혐의를 인정했지만, 검찰과 김씨의 변호인은 재판에서 '범행 동기'를 두고 신경전을 벌였다. 검찰은 "남편과 별거한 뒤 경제적 사정이 어려워지자 남편에게 복수하려고 자녀들을 살해했다"며 김씨에게 무기징역을 내려달라고 재판부에 요청했다. 반면 김씨의 변호인은 “(복수가 아닌) 절망감 때문”이라고 주장했다.
재판부는 검찰과 김씨 측의 주장을 모두 인정했다. 재판부는 “피고인 혼자 아이를 키우면서 힘든 점이 많았을 것으로 보인다” “피고인의 불안감과 절망감이 상당했을 거라는 것은 충분히 짐작된다”“아이들과 본인의 모습을 남편이나 시댁에 대한 복수의 수단으로 생각했던 것 같다”는 등의 판단을 열거했다.
재판부는 이어 “피고인은 자수했고, 남편이나 시어머니, 형제들도 피고인을 선처해 달라고 탄원하고 있다. 무엇보다도 피고인이 범행을 후회하고 있다”며 “자유의 몸이 된다 하더라도 평생 ‘내 자식을 내 손으로 죽이고 나만 살아남았다’는 죄책감에 시달리게 될 것으로 보인다. 그것이 어떤 형벌보다도 피고인에게 무겁고, 고통스러운 형벌이 되리라 이해된다”고 덧붙였다. 김씨는 소리 없이 눈물을 흘리며 눈가를 닦았다.
하지만 재판부는 “피고인이 힘들고 불안에 시달렸던 것을 알지만, 극단적인 선택을 할만큼 (상황이) 심각했느냐에 대해선 재판부가 납득하기 어렵다”고 선을 그었다. 그러면서 “생활고가 그렇게 극단적으로 심각했다고 보이지 않는다. 무엇보다도 피고인이 스스로 직업을 구해본다든지 불안증에 대해 상담을 받아본다든지 하는, 이 상황을 타개하기 위한 적극적인 노력의 흔적이 보이지 않는다”고 덧붙였다.
재판부는 “(김씨의 남편은) 대부분 수입을 피고인과 자녀들 생활비로 보내고 있었고, 아이들과 만나 부자지간의 정도 나눴다”며 “주위 가족이나 남편, 사회에서 더 신경을 써줬다면 좋았겠지만, 기본적으로 피고인의 책임”이라고 덧붙였다. 선고가 끝나고 법정을 나가며 김씨는 연신 눈가를 손으로 훔쳤다.
“사회안전망 확충·의식 변화 필요”
자녀 살해 후 극단 선택을 하는 사건에 대한 공식 통계는 없지만, 홍 위원 등이 2000년부터 2019년 10월까지 신문 보도 분석 결과 약 19년간 최소 426건의 가족 살해 후 극단 선택이 일어났던 것으로 나타났다. 이 중 피해자가 자녀인 경우가 41.4%로 가장 많았다. 최근 실종됐다가 전남 완도 앞 바다에서 숨진 채 발견된 조유나 양 사건 역시 부모가 살해한 후 극단 선택을 한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홍 연구위원은 “한국은 사회적 빈부 격차가 크고, 물질 만능주의가 팽배해 상대적 박탈감이 큰 편”이라며 “사회안전망 확충하는 한편 어린 자녀를 독립된 인격체로 보고 생명을 존중하는 의식 변화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홍 연구원은 그러면서 “미국이나 캐나다 일부 지역에선 가족 살해가 발생하면 지인과 경찰, 검찰, 사회복지사 등으로 ‘가정 폭력 사망 검토위원회’(DVDR)가 구성돼 왜 자살할 수밖에 없었나, 가정에서 자녀나 배우자를 살해할 수밖에 없었는지를 분석한다”며 “국내에도 이 같은 개별 사망 사례 분석이 이뤄질 필요가 있다”고 덧붙였다.
이병준 기자 lee.byungjun1@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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