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고거래 믿으라며 송장·가족사진 보낸 '그놈'..수십명 당했다

임지혜 2022. 7. 20. 15: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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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정보 협박에 피해자 보복 우려
피해자 "경찰 신고했지만, 사기범 여전히 활개 "
그래픽=이정주 디자이너

경기도에 거주하는 40대 직장인 A씨는 지난 14일 한 중고거래 플랫폼에서 판매자 B씨로부터 골프채를 구매했다. 원거리인 탓에 택배 거래를 하기로 한 A씨는 입금 전 상호 간 신뢰를 위해 자신의 얼굴 사진과 명함을 보냈다. 그러자 B씨 역시 아이와 함께 찍은 사진을 보내왔다. 비슷한 또래, 골프라는 취미로 이어진 A씨와 B씨는 한참 골프 이야기를 나눴다. B씨가 보낸 택배 송장 사진을 확인한 A씨는 별 다른 의심 없이 225만원을 입금했다. 하지만 며칠이 지나도 물품은 배송되지 않았고 B씨는 그대로 잠적했다.  

확인된 피해자만 최소 37명, 피해액은 수천만원에 달한다. 여러 중고거래 플랫폼에서 사기 행각을 벌인 것으로 의심되는 B씨가 최근 3개월 내 피해자들에 입힌 손해액이다.

B씨의 이름만 검색해도 온라인 커뮤니티에선 “거래를 조심하라”는 게시물이 쏟아진다. 피해도 다양하다. 콘서트 티켓, 전자제품, 네이버페이포인트, 기프티콘, 골프채 등이다. 중고나라·당근마켓 등 여러 중고거래 플랫폼에서 수많은 피해자가 나왔고 피해 금액도 개인당 수만원부터 수백만원까지 천차만별이다. 

보통 온라인 중고 거래자들은 더치트 등에서 계좌, 연락처를 조회해 판매자의 사기 전력을 확인하는데 B씨의 사기 행각에 이같은 방법은 통하지 않았다.

피해자들이 의심하는 B씨의 은행계좌는 현재까지 10좌, 휴대전화 번호만 14개에 달한다. 사기 피해 정보 공유 애플리케이션 ‘더치트’를 보면 지난달 첫 피해 발생부터 20일 오전 10시15분까지 B씨의 명의로 총 41건의 피해사례가 검색된다. 누적 피해 금액은 2287만3500원.

한 피해자는 “(B씨가) 연락처와 명의를 지속적으로 바꾸고 있다”며 “분명 거래를 시작할 때는 더치트에 ‘피해 사실 없음’이라고 떴는데 (거래 이후) 택배가 안오고 송장 조회도 안 돼서 혹시나 하는 마음에 검색해보니 ‘피해 사실 11명’으로 불어나 있었다”고 말했다.   

피해자 A씨가 중고거래를 위해 판매자 B씨와 나눈 대화. B씨는 A씨로부터 225만원을 입금받은 후 물건을 보내지 않은 채 잠적했다. 사진=A씨 제공 

B씨의 사기 행각은 치밀했다. 중고거래 플랫폼에서 판매되는 수준보다 싼 가격을 앞세워 피해자를 유인하고 구매자의 신뢰를 얻기 위해 아이와 함께 찍은 사진을 카톡 프로필로 하거나 인증용으로 보냈다. 또 택배 박스에 붙인 송장 사진과 영수증을 사진으로 찍어 보내 사기 의심을 피했다.

피해자들은 B씨가 타인의 사진을 도용해 사용한 것이라 의심하고 있다. 송장 역시 조작이라고 주장한다. 피해자들에 따르면 B씨는 주로 우체국 택배와 GS25 편의점 택배 송장을 이용했다. 발송 지역도 다 다르다. 우체국 택배 송장 사진을 확대해보면 송장 자체는 흐리하지만 수기로 적은 부분만 부자연스럽게 또렷하다.

GS25 편의점 택배 송장도 조작된 것으로 드러났다. GS리테일 관계자는 “현재 (GS25 편의점 택배는 송장에) GS 포스트박스라고 표기돼 있다”며 “예전에 썼던 로고를 비슷하게 (짜집기해) 만든 조작된 송장”이라고 말했다. 

이어 “실제 택배 기기에 배송 정보를 입력하면 기기에서 바로 송장이 출력되는 방식이기 때문에 조작도 할 수 없는 구조다”라며 “택배 정보를 (기기에) 입력하면 통상적으로 5분 이내에 정보가 조회된다”고 덧붙였다. 판매자가 택배 접수를 했다고 한 지 5분이 지나도록 조회가 되지 않는다면 택배사에 물품을 접수하지 않은 것으로 의심할 수 있단 것이다. 

피해자들은 조직적인 사기 범행으로 의심하고 있다. B씨가 사기 행각에 여러 계좌와 연락처를 이용한데다 온라인에 올라온 또 다른 명의의 중고거래 사기 사례와 연락처가 겹치기 때문이다. 

피해자들은 B씨의 사기 행위로 현재 피해자가 계속 늘어나고 있다는 점을 우려한다. 실제 피해자 단톡방에는 현재도 피해를 호소하는 이들이 잇따라 입장하며 사례를 공유하고 있다. 개설 일주일밖에 안 된 이 단톡방에 피해자 37명이 모였다. 특히 피해자들에 따르면 피해자 중 한 명이 B씨를 유인하기 위해 그가 올린 중고거래 게시물에 한 댓글을 달았는데 피해자를 알아보곤 “네 전화번호를 알고 있으니 (개인)정보를 팔겠다”고 협박까지 했다고 한다. 

중고거래 사기 피해자들이 B씨로부터 받은 송장 사진. 사진=피해자 제공

피해자들은 수사기관에 도움을 요청했지만 곧바로 피해 구제를 받긴 쉽지 않은 실정이다. 

경찰청 관계자에 따르면 각 경찰서에 접수된 사기 신고는 사이버범죄신고시스템에 올라와 사기 이용 계좌번호 등을 필터링해 자동으로 사건을 병합한다. 경찰청 관계자는 B씨처럼 사기에 이용된 계좌나 연락처가 여럿인 경우에 대해 “여러 케이스가 있지만 수사 초기 단계에선 영장 등을 통해 각 관서가 수사를 하다가 동일범으로 의심되면 본청에서 이송 지시를 해 병합하기도 한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중고거래 사기 피해가 동시에 발생하지 않는데다 신고 역시 동시에 이뤄지는 것이 아닌 만큼 시간이 소요될 것으로 보인다. 

또한 현행법상 중고거래 사기는 전화금융사기(보이스피싱)과 달리 즉각적인 계좌 동결 조치 대상도 아니다. 한 은행 관계자는 “법적인 근거가 없다”며 “(피해자가) 경찰에 사건 접수를 하고 추후 법원의 지급 정지 결정에 따라 진행할 수 있다”고 말했다.  

비용과 시간도 오래 걸린다. 더불어민주당 유동수 의원이 지난해 10월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중고거래 피해자가 민사소송을 통해 계좌지급정지를 청구하려면 금액의 10%가량 비용이 발생하고 시간도 3개월가량 걸린다. 

유 의원은 “가처분 신청을 통해 은행에 가압류를 신청할 수도 있지만, 이 또한 청구 금액의 5% 비용이 들어가며 이르면 3~4일, 보통 7일 정도 걸려 임시 조치에 불과하다”고 지적했다.  

결국 중고거래 사기 피해자들은 사기범이 붙잡힐 때까지 기다릴 수밖에 없어 애를 태우고 있다. 수십만원의 중고거래 피해를 입은 C씨는 “앞으로 (김씨가) 검거될 때까지 피해자가 양산될텐데 (경찰은) 소액이라고 관심이 없는건지, 버젓히 (김씨가) 사기 행각을 지속하는 걸 피해자들은 타는 속으로 보고만 있다”고 토로했다. 

한편 경찰청 국가수사본부의 사이버사기·사이버금융범죄 금융단속 중간결과 집계에 따르면 경찰은 올해 3월부터 6월까지 사이버사기(1만50명)·사이버금융범죄(2020명) 피의자 1만2070명을 검거해 707명을 구속했다. 사이버사기 중 가장 많은 유형은 중고물품 등 직거래사기(5187명)로 절반 이상을 차지했다. 

임지혜 기자 jihye@kuki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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