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망버스' 기사의 눈물 "또 거제 갑니다, 유최안 힘내라"
[김성욱 기자]
▲ 전세버스 운전노동자 최봉환(62)씨가 지난 18일 서울 광화문에서 출발해 거제 대우조선해양 옥포조선소 서문까지 정의구현사제단 '희망버스'를 운전하던 도중, 덕유산 휴게소에 잠시 차를 세웠다. |
ⓒ 김성욱 |
"한 평도 안 되는 철창을 만들고 그 안에 들어가서 투쟁하고 있다는 게... 아휴, 그분 얘기하니까 갑자기 눈물이 나네. 그냥 가슴이 아퍼. 들어가보진 않았지만 상상만 해도 뭐가 이렇게 올라오고... 울컥해. 그분이 용기 잃지 않았으면 좋겠어. 승리했으면 좋겠어."
지난 18일 오후 비 내리는 덕유산휴게소. 육개장에 밥을 말던 최봉환(62)씨가 쇠숟가락을 놓고 울먹였다. 그는 45인승 전세버스의 기사였다. 정의구현사제단의 신부·수녀들이 '희망버스'를 타고 대우조선 하청노동자들의 파업을 지지하기 위해 서울에서 거제로 향하던 길이었다.
최씨는 지난 6월 2일 대우조선 하청노조가 파업을 시작한 이후 벌써 다섯 번째 거제행이라고 했다. 그는 "서울에서 거제는 편도 5시간 이상 잡는 장거리라 대부분의 기사들이 배차를 꺼리고, '희망버스'라 안전에 더 신경 써야 하기 때문에 웬만하면 도맡아서 지원을 나가고 있다"라고 했다. 그는 "저도 연대하는 마음으로 운전대를 잡는다"라며 "저번에 한번은 하청노동자들이 조선소 밖에서 행진을 하는데, 거제 시민들의 응원이 커서 놀랐다. 정말 감동이었다"라고 말했다.
최씨는 11년째 '희망버스' 운전을 하고 있다. 노동자·시민 연대의 상징인 희망버스는 2011년 한진중공업 정리해고 사태에 반발한 김진숙씨가 부산 영도 크레인에 올라가 309일간 고공농성을 벌인 때부터 시작됐다. 최씨는 "한진, 쌍용차, 아사히, 전국의 톨게이트 노조, 학교 비정규직 노조, 청소노조, 세월호 등 투쟁 현장이면 안 가본 곳이 없다"라고 했다. 그는 오는 23일 대규모 참가가 예상되는 '대우조선 하청노동자 희망버스' 운전도 맡는다. 이 희망버스는 김진숙씨와 문정현 신부가 직접 제안했다.
서울 광화문에서 출발했던 정의구현사제단의 희망버스는 빗길에 5시간 30분을 달려 거제 대우조선해양 옥포조선소 서문에 도착했다. 시간을 맞추려 급하게 국물을 뜨던 최씨는 유독 유최안(41) 민주노총 금속노조 거제·통영·고성조선하청지회 부지회장 이야기가 나오면 말을 잇지 못했다. 유 부지회장은 지난 6월 22일 조선소 내부에 설치된 가로·세로·높이 1미터 철제 구조물에 스스로 몸을 가둔 채 29일째 농성을 이어가고 있다.
20일, 다시 전화를 걸었을 때도 최씨는 유최안 부지회장 얘기를 하며 한참을 흐느꼈다.
▲ 6월 24일, 민주노총 금속노조 거제통영고성 조선하청지회 유최안 부지회장이 가로·세로· 높이 1m의 철 구조물을 안에서 용접해 자신을 스스로 가둔채 농성을 이어가고 있다. |
ⓒ 금속노조 선전홍보실 |
- 23일에도 희망버스 운전을 맡는다고 들었다.
"그렇다. 오랜만에 많은 사람들이 연대하는 희망버스 아닌가. 서울에서 출발한다."
- 대우조선 파업 후 몇 번째 거제행인가.
"토요일(23일)에 거제를 가면 여섯 번째가 된다. 거제까진 왕복 10시간 이상이니 기사들이 배차를 꺼린다. 장거리를 뛰면 노후 차량은 고장 날 확률이 높고, 연세가 많은 기사님들은 체력적으로도 많이 딸리니까. 그러면 승객들만 위험해지는 거고. 내가 여러 번 내려가봤으니 익숙하기도 해서 계속 도맡아 가고 있다."
- 18일 정의구현사제단 희망버스 때는 비도 많이 왔다.
"그래서 특별히 더 조심해서 운전했다. 그날 편도로 5시간 30분 걸렸는데, 평소보다 1시간 가까이 더 걸렸다고 보면 된다. 비가 오면 시야 확보가 잘 안돼서 속도를 많이 내면 안 된다. 신부님, 수녀님들이 하청노동자들에게 연대하려 먼 길 가시는데, 절대 사고 나면 안 되지 않나. 부담도 되지만 나도 감사한 마음이 더 크다. 더욱 안전에 주의하면서 갔다."
- 도착한 후 2시간 넘게 빗속에 미사와 집회가 진행됐다.
▲ 18일 거제 대우조선해양 옥포조선소 서문 앞에서 정의구현사제단이 하청노동자들의 파업을 지지하는 미사를 열었다. |
ⓒ 김성욱 |
- 어떻게 희망버스 운전을 시작하게 됐나.
"나도 평생 심야버스, 시내버스, 시외버스, 고속버스 다 해봤다. 해고되고, 해고되고, 더 이상 갈 데가 없어서 마지막으로 온 게 전세버스다. 그 세월 동안 힘 없고 빽 없는 사람들에게 노조가 얼마나 필요한지 절감했다. 그래서 노조 활동이 얼마나 힘든지도 안다. 가족들에게 얼마나 미안하고 면이 안 서는 일인지도...
지금도 전세버스 노조에 속해 있다. 아직 전세버스 노조가 참 열악하고 조직도 잘 안 돼 있는데, 나이들고 미약하지만 힘을 보태려 나도 활동하고 있다. 지금 민주노총 서비스연맹 서비스일반노조 전세버스연대지부 경기지회 지회장이다."
- 대우조선 하청노조가 파업을 시작한 지 49일째다.
"참 답답하다. 지금 대우조선 하청노동자들이 요구하는 게 대단한 게 아니지 않나. 아니 임금 삭감됐던 걸 원상 복귀 해달라는 건 당연한 것 아닌가. 그 얘기도 못 들어줘서, 다 가정이 있고 하루하루 먹고 살기 힘든 사람들이 나와서 그렇게 투쟁을 해야 하나.
정부도 문제다. 가정이 파탄 날지 모르고 절박하게 싸우는 노동자들한테 '불법'이라며 몰아갈 일인가. 강경진압을 한다느니 공권력을 투입한다느니 해산을 한다느니... 그런 게 아니라 적어도 먹고 살 수는 있게 보호해줘야 하는 것 아닌가.
그래도 일전에 현장에서 너무 감동스러웠던 게... 한번은 하청노동자들이 옥포조선소 서문에서 집회를 시작해 시내쪽으로 행진하는데, 주민들 반응이 너무 좋더라. 응원해주고 지지해주고. 음료수도 주고. 그걸 보고 나도 모르게 눈물이 났었다."
- 대우조선 하청노동자들에게 전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제가 희망버스만 11년째다. 희망버스 초창기에 부산 영도 크레인에 올라갔던 김진숙 지도위원 기억도 생생하다. 희망버스뿐만 아니라 15년 전부터 톨게이트 노조, 학교 비정규직 노조, 병원 비정규직 노조, 한진, 쌍용차, 아사히, 세월호... 전국에 안 간 데가 없다. 그런데 그렇게 시간이 지났는데 노동자들 요구는 아직 똑같다. 저는 그게 화가 난다.
이번 대우조선 파업은 그래서 더 의미가 있는 것 같다. 이대로는 정말 안 된다고 하는 것 아닌가. 특히 유최안 그분 생각하면 지금도 눈물이 날 것 같다. 힘냈으면 좋겠다. 노동현장에서 사람들이 왜 그렇게 목숨을 걸고 싸우는지 높은 자리 있는 사람들은 아무도 모른다. 안다면 이렇게 못한다. 부디 유최안 부지회장과 대우조선 하청노동자들이 꼭 승리했으면 좋겠다. 내가 할 수 있는 건 운전뿐이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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