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기 항복' 한일 외교장관 회담 결과.. 해결 난망한 과거사 갈등

오태규 2022. 7. 20. 13: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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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단] 양국 공식 발표문 비교해 보니..강제동원 노동자 피해보상, 일본이 할 일은 전혀 없어

[오태규 기자]

 일본을 방문 중인 박진 외교부 장관이 19일 도쿄 자민당 당사에 마련된 아베 신조 전 일본 총리 조문소를 찾아 조의를 표했다.
ⓒ 외교부 제공
 
박진 외교부장관이 2박 3일간 일본을 방문했다. 18일엔 하야시 요시마사 일본 외상과 회담을, 19일엔 기시다 후미오 총리도 예방했다. 한국 외교부장관이 양자 차원에서 일본을 방문한 것은 문재인 정부 때인 2017년 12월 19~20일 강경화 외교부장관 방일 이래 4년 7개월 만이다. 코로나 사태가 없었다면 1년에 1000만 명 이상의 인적교류가 이뤄졌을 양국의 왕성한 민간교류 상황에 비춰보면, 이런 기록만으로도 양국 정부간 관계가 얼마나 냉랭한지 충분히 짐작할 수 있다.

묘하게도 한국의 강경화, 박진 두 외교부장관이 일본을 방문한 시기는 과거사 문제가 초점이 됐을 때와 겹친다. 강 장관은 '한일 일본군위안부 피해자 문제 합의 검토 태스크포스'의 검토결과 보고서 발표를 일주일여 남긴 시점에 방일했다. 당시 아베 신조 총리의 평창 올림픽 참석이라는 현안이 있었지만, 주목적은 일본군 위안부와 관련한 정부의 입장을 설명하고 협의하기 위한 것이었다.

박진 장관의 이번 방일의 주목적은 위안부 문제와 함께 과거사 갈등의 한 축을 이루고 있는 강제동원 노동자의 피해 보상 문제에 대한 정부의 입장을 설명하고 협의하기 위한 것이다. 곁들여 최근 피격 살해된 아베 전 총리 빈소도 조문하고 조의도 표했으나 과도한 '조문 외교'로 일본의 환심을 사려고 한다는 인상마저 줬다.

이번 박 장관 방일의 핵심 일정이었던 외교장관 회담 결과를 보면, 강경화 장관의 방일이 결과적으로 위안부 갈등을 푸는 데 실패했듯이 박진 장관의 방일도 전도가 매우 불투명하다.

한일 외교 당국은 18일 저녁 외교장관 회담이 끝난 뒤 각자 보도 발표문을 냈다. 양쪽이 만족할 만한 합의를 도출했다면 각자 발표가 아니라 공동발표문의 형식을 빌렸을 텐데 각자 발표문을 낸 것부터가 심상치 않다. 회의를 주최한 일본 쪽은 외교장관 회담 때 의례적으로 공개하는 양쪽 장관의 모두발언도 보도진에게 아예 공개하지 않았다. 한국의 입장을 일본 시민에게 알리는 것조차 원천 봉쇄하겠다는 오만함마저 엿보인다.

한국-일본 양국 공식 발표 자료 뜯어보니
 
 지난 18일 한일 외교장관 회담 이후 한국 외교부(왼쪽)와 일본 외무성(오른쪽)이 각각 낸 보도자료.
ⓒ 외교부/외무성 갈무리
 
<한국 외교부 보도자료>

□ 박진 외교부장관은 취임 후 첫 공식 방일하여 하야시 요시마사(林 芳正) 일본 외무대신과 7.18(월) 한일 외교장관 회담 및 만찬을 갖고, 양국간 현안 문제 및 공동 관심사에 대해 논의하고, 미래지향적 관계 발전을 위한 방안에 대해 의견을 교환하였다.
※ 외교장관의 양자 차원의 방일은 2017.12월이 마지막(단, 다자회의 참석 등 목적으로는 2019.11월 G20 외교장관회의 계기 방일이 마지막)

□ 회담에 앞서, 박 장관은 기시다 총리와 하야시 대신의 리더십 하에 일본 국민들이 아베 前 총리의 별세에 따른 충격과 슬픔을 슬기롭게 극복해 나가기를 기원하고, 일본 국민에게 깊은 애도와 위로의 뜻을 전했다.

□ 양 장관은 급변하는 국제정세 하 한일 양국이 지역 및 세계 평화와 번영을 위해 다양한 분야에서 향후 긴밀히 협력해 나가자는 데 의견이 일치하였다.

□ 양 장관은 최근 한반도 정세에 대한 평가를 공유하고, 북한의 추가도발에 대해서는 단호히 대응해 나가는 한편, 대화의 문을 열어두고 유연하고 열린 외교적 접근을 추진해 나가기 위해 한일·한미일간 협력을 더욱 강화하기로 하였다.

□ 박 장관은 1998년 「21세기 새로운 한-일 파트너십 공동선언(김대중-오부치 선언)」의 정신과 취지에 따라 양국 관계를 발전시켜 나가자고 하였다.

□ 박 장관은 강제징용 판결 관련 현금화가 이루어지기 전에 바람직한 해결방안이 나올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언급하고, 양측은 동 문제의 조기 해결이 필요하다는 데 인식을 같이하였다.

□ 박 장관은 그간 양국간 긴밀한 소통 하에 ▴김포-하네다 노선 재개 ▴격리면제 등 한일간 인적교류 복원을 위한 조치가 이루어진 점을 평가하고, 앞으로도 비자면제 등 교류 재활성화에 필요한 제도적 기반 정비를 위해 계속 노력해 나가자고 하였다.
※ 박 장관은 금번 방일시 김포-하네다 노선 이용

□ 양 장관은 상호 관심사에 대해 의견을 교환하고, 양국간 제반 현안의 조속한 해결을 위해 장관간을 포함하여 협의를 가속화하자는 데 의견이 일치하였다.

<일본 외무성 보도발표>

7月18日午後4時頃から約2時間半、林芳正外務大臣は、訪日中の朴振(パク・チン)韓国外交部長官との間で会談及びワーキングディナーを行ったところ、概要は以下のとおりです。(7월 18일 오후 4시경부터 약 2시간 반 동안 하야시 요시마사 외무대신은 방일 중인 박진 한국 외교부 장관과 회담 및 실무 만찬을 했다. 개요는 다음과 같다.)

1. 朴長官から、今般の安倍元内閣総理大臣の逝去に関し、衷心よりの弔意が伝えられました。これに対し、林外務大臣から、朴長官の弔意に謝意を述べました。
(박 장관으로부터 이번 아베 전 총리의 서거에 관해 충심이 담긴 조의 표명이 있었다. 이에 대해 하야시 외무대신으로부터 박 장관의 조의에 사의를 밝혔다.)

2. 両外相は、現下の戦略環境に鑑み、日韓・日韓米協力の進展が今以上に重要な時はないとの認識で一致しました。また、ロシアによるウクライナ侵略に対する非難で一致しました。(두 장관은 최근의 전략환경에 비추어 한미일 협력의 진전이 지금 이상으로 중요한 때는 없다는 인식에 일치했다. 또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략에 대한 비난에 일치했다.)

3. 両外相は、北朝鮮への対応における更なる連携を確認しました。また、朴長官から拉致問題について改めて支持を得ました。(두 장관은 북한 대응에 대하여 거듭 연대를 확인했다. 박 장관으로부터 납치 문제에 대하여 다시금 지지를 얻었다.)

4. 林外務大臣から、1965年の国交正常化以来築いてきた日韓の友好協力関係の基盤に基づき日韓関係を発展させていく必要があり、そのためには旧朝鮮半島出身労働者問題を始めとする日韓間の懸案の解決が必要である旨述べました。(하야시 대신으로부터 1965년 국교정상화 이래 쌓아온 한일우호협력관계의 기반에 기초해 한일관계를 발전시켜갈 필요가 있고, 그를 위해서는 강제동원 노동자 문제를 비롯한 한일 사이의 현안 해결이 필요하다는 취지의 말을 했다.)

5. 朴長官から、現金化が行われる前に、望ましい解決策が出るよう努力する旨述べました。その上で、両外相は、この問題の早期解決で一致しました。(박 장관으로부터, 현금화가 이뤄지기 전에 바람직한 해결책이 나오도록 노력하겠다는 취지의 말이 있었다. 또한 두 장관은 이 문제의 조기 해결에 일치했다.)

6. 両外相は、両国間の協議を加速させることで一致しました。また、両外相は、両国間の人的交流の再活性化を進めていくことでも一致しました。(두 장관은 양국 사이의 협의를 가속화하는 것에 일치했다. 양국 사이의 인적교류의 재활성화를 추진해가는 것에 일치했다.)
*( )의 한글 번역은 필자.

강제동원 노동자 피해보상... 일본이 해야 할 내용은 전혀 없다
 
▲ 팔꿈치 인사하는 한일 외교장관 18일 오후 일본 도쿄도 미나토구 소재 외무성 이쿠라공관에서 박진(왼쪽) 한국 외교부 장관과 하야시 요시마사 일본 외무상이 회담에 앞서 팔꿈치를 맞대며 인사를 나누고 있다. 2022.7.18
ⓒ 연합뉴스
 
한일 외교당국이 각자 내놓은 회담 보도 발표문을 뜯어보니 한일관계에서 일치하는 부분은 '박진 장관이 강제동원 노동자 피해 보상 판결과 관련해 현금화가 이뤄지기 전에 바람직한 해결방안이 나올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말했고 '두 장관이 조기 해결의 필요성에 공감했다'는 게 거의 유일하다. 즉, 현금화 전에 한국이 해결방안을 내놓을 테니 두 장관이 서둘러 이 문제를 매듭짓자는 뜻이라고 할 수 있다.

두 발표문에는 문제 해결을 위해 일본 쪽이 해야 할 내용은 전혀 들어 있지 않다. 일본 정부나 가해 기업의 사죄나 최소한 가해 기업이 대위변제를 위한 기금 마련에 참여해야 한다고 요구하는 강제동원 피해 노동자 쪽의 목소리를 반영할 실마리를 눈을 씻고 찾아봐도 찾아볼 수 없다. 위안부 문제의 합의에서 확인할 수 있듯이, 한일 과거사 문제 해결을 위해서는 한일 정부 사이의 합의뿐 아니라 피해자의 동의가 결정적이다. 따라서 피해자의 요구를 전혀 반영하지 못한 한일 외교장관 회담의 결과는 이미 실패를 내장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또 발표문 비교에서 주목할 만한 대목은 박 장관이 1998년 김대중-오부치 선언의 정신과 취지에 따라 양국 관계를 발전시켜 나가자고 한 데 대해 하야시 외상이 1965년 국교정상화를 거론하며 응수한 점이다. 김대중-오부치 선언은 '일본은 식민 통치에 대해 통절하게 반성하고 한국은 일본의 전후 세계 평화와 번영에 대한 기여를 인정한다'는 것을 핵심 내용으로 하는 데 비해 1965년 국교정상화는 일본이 '과거사 문제는 한일협정으로 모두 해결됐다'고 할 때 사용하는 상투 표현이다. 이런 표현의 차이에서 한일 과거사 갈등을 풀어가는 데 두 나라의 근본적인 시각 차를 확인할 수 있다.

또 일본 쪽은 한국이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략에 대해 같이 비난했고 납치 문제에 대한 박 장관의 지지를 다시금 얻었다고 설명했다. 이 부분은 한국 쪽 발표에는 없는 내용이다. 반면 한국 쪽은 김포-하네다 노선의 재개, 격리면제 조치, 비자면제 노력 등 교류 활성화 방안을 자세하게 발표했다. 반면 일본 쪽은 이를 뭉뚱그려 인적교류 재활성화를 추진한다고 표현하는 데 그쳤다.

한일 과거 갈등 해결이 더욱 어려워진 까닭
 윤석열 대통령이 20일 오전 서울 용산 대통령실 청사로 출근, 기자들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2022.7.20 [대통령실통신사진기자단]
ⓒ 연합뉴스
 
오랜만에 열린 외교장관 회담이 결정적인 타개책을 만들어내지 못했다는 점 외에도 한일 정부간 과거 갈등 해결은 최근 발생한 두 가지 변수 때문에 더욱 어렵게 됐다.

하나는 한국 쪽 요인으로, 윤석열 대통령의 급격한 지지율 하락이다. 애초 윤석열 정부는 지지율이 높은 집권 초반기에 한미일 안보 협력을 해나가는 데 목에 가시처럼 걸려 있는 한일 과거사 문제를 일거에 해결한다는 생각으로 그림을 그려온 듯하다.

한국의 지방선거(6월 1일)와 일본의 참의원선거(7월 10일) 뒤 찾아올 양국의 정치 안정기를 택해 속전속결로 강제동원 노동자 및 위안부 문제를 해결하고 한일관계를 개선하겠다는 구상이었다. 한일관계가 큰 주목을 받는 8월 15일 광복절까지는 갈등을 정리하겠다는 얘기가 윤 정부 주변에서 솔솔 나온 터였다.

7월 4일과 14일 강제동원 피해자 배상 문제를 논의하는 민관협의회를 열어 대위변제 방식의 해법에 관한 의견을 모은 뒤 그 내용을 설명하는 자리로 18일 양국 외교장관 회담을 배치한 것에서도 이런 뜻을 짐작할 수 있다. 대위변제란 정부 또는 양국 기업이 출자하는 재단이 강제동원 노동 피해자에게 대법원이 결정한 위로금을 먼저 갚아주고 나중에 피해 기업에게 구상권을 청구한다는 내용의 해결방안이다.

하지만 그 사이에 윤 대통령이 50%대의 지지율을 20%p 가까이 까먹는 일이 벌어지면서 애초의 전략이 흔들리게 됐다. 이런 지지율로는 피해자들의 반발이 뻔하게 예상되며 찬반여론이 첨예하게 엇갈리는 문제를 해결할 힘을 가질 수 없다. 심지어 일본 쪽에서도 윤 정부가 이 정도의 지지율로는 국내 부담이 큰 강제동원 노동자 문제를 풀기 어려울 것이라는 분석이 나오는 형편이다.

일본 쪽에도 새로운 변수가 생겼다. 일본 우익세력의 구심점인 아베 신조 전 총리의 갑작스러운 죽음이다. 아베 전 총리가 사망하면서 국수주의 성향의 우파세력을 제어할 힘도 약해졌다. 한국과 과거사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일본도 형식적으로나마 약간의 양보를 할 수밖에 없을 것인데, 이때 극성을 부릴 우파세력의 반발을 억제할 지도자의 부재는 기시다 정권에게 큰 부담이 될 수밖에 없을 것이다.

또 아베의 사망으로 상당 기간 지속될 '아베 유훈 통치'의 분위기도 무시하기 어렵다. 일본의 정치권도 위험 부담이 있는 과거사 갈등을 풀기보다는 아베 이후 권력 재편에 더욱 신경을 쓰지 않을 수 없는 상황이다.
 
 19일 오후 일본 도쿄도 지요다구 소재 일본 총리관저에서 박진 한국 외교부 장관과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가 면담을 마치고 이동하고 있다.
ⓒ 연합뉴스
 
두 요인 외에도 한일 과거사 문제를 풀어가는 외교부의 태도와 포진도 문제로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두 차례 민관협의회를 열면서도 참석자 이름조차 공표하지 않는 태도는 진정한 여론 수렴 작업이라고 보기 어렵다. 참석자도 당당하게 공개하지 못할 정도의 소극적이고 비밀주의적인 자세로, 정작 해법이 수면 위로 떠오르면서 본격적으로 제기될 국내의 반대 여론을 어떻게 설득할 것인지 이해할 수 없다. 장·차관을 비롯한 외교부 지도부가 일본 문제에 무지한 미국통 일색으로 짜여진 것도 고도의 전문성을 요하는 일본 문제를 제대로 풀어갈 수 있을까 하는 의문을 낳고 있다.

이런 이유들 때문에 한일관계 파탄의 주역인 일본의 전 총리의 분향소를 직접 찾아가 "아시아의 번영과 발전에 위해 헌신"했다고 칭송을 마다않은 윤석열 대통령의 대일 저자세 외교에도 불구하고 과거사 문제 속전속결을 통한 한일관계 개선은 쉽지 않아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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