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0명 위해 1만명 죽이나" 대우조선 파업에 하청업 줄도산 [르포]

안대훈, 김민주, 위성욱 2022. 7. 20. 11: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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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2일부터 하청노조가 파업에 돌입한 가운데 경남 거제시 대우조선해양 옥포조선소에서 하청업체 A사 소속 노동자들이 건조 중인 선박 블록에 설치할 발판을 옮기고 있다. A사 제공

“조선업 호황기에 대우조선은 최악의 상황을 맞았다.”

지난 19일 경남 거제 대우조선해양 옥포조선소. 선박 건조에 필요한 발판을 설치·해체하는 하청업체 A사 소속 노동자 이모(50대)씨가 한 말이다. 이씨는 "회사가 다음 달 문들 닫게 됐다"며 허탈한 표정이었다. 조선소에서 20년 동안 일한 그는 “조선 불황기를 어떻게 버텨왔는데, 갑자기 파업 때문에···”라며 말을 잇지 못했다.

A사는 조선업 노동자들이 일할 수 있도록 작업장에 발판을 설치·해체하는 일을 맡고 있어 조선소 내 거의 모든 공정에 투입된다. 그런데 지난달 2일 대우조선해양 하청업체 노조인 민주노총 금속노조 거제·통영·고성 조선하청지회(조선하청지회)가 파업에 나선 이후 원청인 대우조선해양에서 받는 작업 물량이 급감했다. A사는 일감이 줄자 10명이 할 일을 13명, 15명이 나눠서 하고 근무시간도 줄였다. 하지만 폐업이 예고된 8월부터는 일감이 아예 ‘제로’가 됐다고 한다.

이번 파업 과정에서 조선하청지회 조합원 7명이 선박 4척을 동시에 건조할 수 있는 세계 최대 규모 작업장인 1번 독(dock·배만드는 작업장)을 불법 점거, 이날까지 농성을 하면서 48일째 조선소 독 가동률이 절반으로 떨어졌다. 이 때문에 선박의 선행·후행 공정에 차질이 생기면서 조선소가 사실상 마비됐다.

지난달 경남 거제시 대우조선해양 옥포조선소에서 파업에 들어간 하청노조가 선박 작업장인 1독(dock)을 불법 점거하면서 왼쪽 야적장에 추가 공정을 진행하지 못한 선박 건조용 블록들이 쌓여 가고 있다. 독자 제공

“노가다 뛰며 버텼는데…분통 터져”


당초 A사는 조선업 불황의 여파로 경영난을 겪고 있었다. 한 달마다 원청에서 기성금(공사대금)을 받아 근근이 인건비를 메웠다. 그래도 지난해부터 조선업 수주가 회복되면서 올해 하반기부터는 회사 사정이 그나마 나아질 것으로 기대했다. 하지만 파업 이후 기성금마저 줄자 더는 회사를 유지하기 어려운 상황에 부닥쳤다. 회사 대표가 이번 달 직원들 임금을 지급하기 위해 사비로 7000만원을 썼지만, 적자가 7억원가량 쌓이면서 폐업 수순을 밟게 됐다.

A사 직원 양모(30대)씨는 “그간 버틴 만큼 이제 좀 살아나나 했다. 8월이면 작업 물량이 오를 것으로 기대했다”며 “파업 이후 근무시간 줄고 주말 특근 사라져 임금 중 60~70만원이 날아갔다. 주말에 인력사무소에서 ‘노가다’까지 뛰며 버텼는데, 결국 파업이 길어지면서 직장마저 잃게 됐다. 억울하다”고 했다.

대우조선해양 협력업체 협의회가 지난 11일 서울 용산구 전쟁기념관 앞에서 대우조선해양 하청업체 노동조합 파업 해결을 촉구하는 현수막을 들고 있다.


한 달 새 10명 그만둬…. 다른 하청업체들도 줄도산 위기


A사에서는 한 달 새 10명이 조선소를 떠나는 등 회사를 그만뒀다. A사에 남은 하청노동자들은 ‘고용불안’을 느끼고 있다. A사 대표는 “현장직·사무직 140명 직원 고용 승계라도 해주려 백방으로 알아보고 있는데, 회사를 인수할 분을 찾기 어렵다”고 말했다.

이번 파업이 더 길어지면 110여개의 대우조선해양 하청업체가 줄줄이 도산할 것이라는 우려도 나온다. 이들 하청업체 종사자는 1만1000여명이나 된다. 19일 중앙일보 취재를 종합하면, 현재까지 폐업하거나 폐업을 예고한 하청업체도 7개다. 파업 이후인 지난달 30일 3개 업체가 폐업했고, 7월 말과 8월 초 4개 업체가 폐업할 예정이다.

대우조선해양 협력업체 대표단 관계자는 “먼저 폐업한 업체들은 대부분 경영난을 겪고 있던 터여서, 이번 파업 여파를 버티기 어려웠을 것”이라며 “이번 달 직원 임금의 절반도 못 준 회사들이 허다하다”고 했다. 이어 “당장 버티려고 은행에서 대출받기도 어렵다. 파업으로 대우조선해양이 불안하니 은행에서 ‘대우조선’이라고 하면 대출을 안 해준다”며 “여기서 몇 주만 더 파업이 길어지면 하청업체 줄줄이 도산할지도 모른다”고 우려했다.

지난달 경남 거제시 대우조선해양 옥포조선소에서 파업 중인 조선하청지회와 대우조선 관계자들이 충돌을 빚고 있는 모습. 독자제공

‘노노갈등’ 격화…원청 직원, 파업 현수막 커터칼 훼손
사정이 이렇다 보니 조선하청지회에 가입하지 않은 다른 하청노동자들은 파업을 지지하기보다 원망하는 목소리가 나온다. 폐업을 앞둔 A사 노동자 양씨는 “150여명이 파업에 참여한 조선하청지회가 1만명이 넘는 대우조선 하청노동자들을 대표할 수 없다”며 “자기들 살자고 다른 하청노동자 목숨을 인질 삼아 협상하지 마라”고 했다.

원청 노동자들의 파업에 대한 불만이 커지면서 노노(勞勞) 갈등도 격화되고 있다. 지난 14일 대우조선해양 임직원들은 “파업이 장기화해 수천억 손실과 생산 일정이 연기되고 있다”며 파업 중단을 촉구하는 ‘인간 띠 잇기’ 행사를 했다. 지난 19일에는 원청 직원이 대우조선해양 서문 출입구에 조선하청지회가 걸어둔 파업 관련 현수막 17개를 커터칼로 훼손해 경찰 조사를 받기도 했다.

경남 거제시 대우조선해양 옥포조선소 서문 인근에 걸린 하청노조 파업 관련 현수막이 훼손돼 있다. 독자 제공

대우조선해양 원청 노조인 민주노총 금속노조 대우조선지회도 “공멸하게 생겼다”며 ‘독 투쟁 철수’를 요구하고 나섰다. 이번 파업 과정에서 대우조선지회와 조선하청지회 노동자들 간 몸싸움이 벌어지며 감정의 골이 깊어지는 모양새다.

지역상권에서도 이번 파업 사태 장기화를 우려하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대우조선해양 인근 옥포시장에는 “장기간 파업사태 지역경제 파탄 난다!” 등 파업 사태 해결을 촉구하는 지역 상인회의 현수막이 걸려 있다.

지난 19일 경남 거제시 대우조선해양 옥포조선소 인근 시장에 파업사태 해결을 촉구하는 현수막이 걸려 있다. 뉴스1
지난 19일 경남 거제시 옥포국제시장 인근에 파업 파업사태 해결을 촉구하는 현수막이 걸려 있다. 뉴스1

대우조선 피해액 7000억원 넘어
대우조선해양은 19일 기준 파업 장기화로 발생한 매출 손실 5700억원 포함 7100억원이 넘는 손해를 봤다고 밝혔다. 특히 선박 인도 지연에 따른 지체 보상금이 늘어나는 상황이다. 현재까지 지체 보상금을 지급한 선박은 12척으로, 다음 달 말에는 30척까지 증가한다. 다음 달까지 지급해야 할 지체 보상금은 누적 500억원에 달할 것으로 추산됐다.

대우조선해양 관계자는 “당장 피해도 있지만, 무엇보다 대우조선해양에 대한 선주사들의 인식이 나빠질 수 있는 것이 우려된다”며 “향후 추가 수주, 나아가 계약 파기 등에 영향을 받을 수 있다”고 말했다.

거제=안대훈·김민주·위성욱 기자 an.daehu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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