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기의 K-반도체]뚝뚝 떨어지는 가격..'진짜 겨울' 대비 중
[아시아경제 박선미 기자] 한국경제를 지탱하고 있는 K-반도체의 하반기 전망이 우울한 것은 인플레이션과 글로벌 경기 침체로 인해 재고가 쌓인 메모리 반도체 가격이 급락할 것이란 관측이 우세해서다. 실제 코로나19 여파로 폭등한 메모리 반도체 D램(DRAM)평균 가격은 2년 만에 처음으로 하락했다. 메모리반도체 시장의 50% 이상을 한국 기업들이 점유하고 있는 상황에서 가격 급락은 실적에 직격탄이 될 수 밖에 없다. 국내 기업들은 생존을 위해 고부가가치 제품 생산 비중을 높이고 증설 계획을 보류하는 등 대응책 마련에 나섰지만 당분간 이어질 수요 절벽에 고심이 깊어지고 있다.
◆반도체, 슈퍼 호황 끝났나=20일 시장조사업체 D램 익스체인지 발표에 따르면 D램 및 낸드 고정거래가격은 지난달 PC향, 메모리카드·USB향 범용제품 기준으로 각각 평균 3.35달러, 4.57달러를 기록했다. 작년 말 3.71, 4.81달러 보다 하락한 수치다. 메모리반도체 가격 하락세는 상반기부터 시작됐다. 앞서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시장조사기관 트렌드포스를 인용해 올해 2분기 D램 평균 계약가가 전년 동기 대비 10.6% 감소했다고 보도했다. 분기별 D램 평균 가격이 하락한 것은 2년 만에 처음이다. 이같은 하락추세는 하반기 더욱 가팔라질 것으로 예상된다.
러시아·우크라이나 사태 장기화, 인플레이션, 금리상승 등으로 반도체가 쓰이는 IT 기기 수요가 빠르게 위축되고 있기 때문이다. 삼성증권은 시장조사기관 스트래티지애널리틱스(SA) 통계를 기반으로 올해 글로벌 스마트폰 수요 전망치가 지난해 9월 14억2000만대에서, 12월 13억9400만대, 올해 6월 12억8400만대로 하향 수정됐다고 밝혔다. 또한 내년 전망치 역시 지난해 9월 발표했던 14억4500만대에서 지난 6월 13억2000만대로 1억대 이상 하향 조정됐다.
IT, 전자제품 최대 시장인 중국의 경기 반등은 메모리반도체 가격 하락 둔화에 큰 영향을 준다. 하지만 올해 2분기 0.4%로 추락한 중국의 경제성장률은 ‘제로(0)코로나’ 정책을 위한 주요 도시 봉쇄조치로 3~4분기에도 큰 회복을 기대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가격 하락 방어막 역할을 했던 기업 서버용에서조차 가격이 급격하게 꺾이고 있는 추세다.
트렌드포스는 3분기 D램 가격이 전 분기 대비 10% 이상으로 더 떨어질 수 있다고 내다봤고, 낸드 가격 역시 예상 낙폭을 기존 3~8%에서 8~13%으로 확대 수정했다.
반도체업계 관계자는 "특히 가격 하락세가 덜했던 서버용의 경우 글로벌 경기 악화 상황이 지속돼 글로벌 IT 기업들이 데이터센터 투자 시기를 늦추거나 규모를 줄일 경우 직격탄을 맞게 된다"며 "경기가 안좋아지면 고부가가치 제품인 서버용 메모리반도체 시장도 타격을 받을 수 있는 위기"라고 말했다.
이같은 우려에 시장은 즉각 반응하고 있다. 인텔, 마이크론, 엔비디아 등 미국의 주요 반도체 기업 주가를 묶은 지표인 필라델피아 반도체지수는 연초 4000이 넘었지만 현재 2600 수준으로 30% 넘게 하락했다.
◆어둠의 터널 기간은…엇갈리는 전망=반도체업계의 겨울이 짧고 고통스럽게 지나갈 지, 길게 이어질 지에 대한 견해는 엇갈린다.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중국 코로나19 봉쇄, 초인플레이션, 잠재적 경제 불황 등 다발성 악재가 지속될 경우 반도체가 쓰이는 제품군의 수요 위축은 장기화될 것으로 예상된다. 그만큼 고통도 길어질 수 밖에 없다.
반면 과거와 비해 반도체사이클의 업앤다운이 짧아져 변동성이 축소되고 있다는 점은 위기 상황이 오랫동안 이어지지 않을 것이란 희망을 품게하는 대목이다. 또 과거와 달리 지금은 소수 글로벌 기업의 반도체 시장 지배력이 높아진 상황이라 수급 불균형이 나타나더라도 통제가 어느정도 가능해졌다.
업계에서는 메모리반도체를 구입해서 제품을 만드는 기업들이 내년 상반기 중에 재고조정을 끝내고, 추운 겨울을 보낸 반도체기업들이 설비투자 축소 등으로 제한적인 수준의 공급 증가세를 나타낼 경우 내년 하반기께 메모리반도체 시장의 점진적인 수급 개선이 나타날 수 있다고 보고 있다.
다만 지금 당장은 투자 숨고르기에 들어가며 대응 체제를 갖춰야 한다는 분위기가 지배적이다.
SK하이닉스가 내년 자본지출을 25% 줄여 16조원 수준으로 낮추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는 얘기도 들린다. 이미 약 4조원을 들여 2025년 완공을 목표로 추진해온 충북 청주공장 증설 계획은 보류하기로 했다. 최태원 SK그룹 회장이 직접 경제 불확실성을 이유로 기존 투자계획에 변화가 생길 가능성까지 언급했을 정도다.
글로벌 시장에서는 반도체 업계 ‘큰 손’ 고객 애플이 경기 침체에 대응하기 위해 채용 속도를 늦추고 지출도 줄이는 등 긴축경영을 예고했다. 또 반도체 3위 기업 미국 마이크론은 IT 수요 둔화를 감안해 내년 설비투자를 줄이겠다는 의사를 내비쳤다.
박선미 기자 psm82@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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