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법 "불법행위 위해 모은 돈, 개인 빚 변제.. '횡령죄' 아냐"

허경준 2022. 7. 20. 07: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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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법행위를 위해 여러 사람이 모은 돈을 개인적인 용도로 사용했다면, 돈을 쓴 사람을 '횡령죄'로 처벌할 수 없다는 대법원의 첫 판단이 나왔다.

그러나 대법원은 이번 재판에서 횡령죄 성립 요건을 더 까다롭게 보고 "규범적 관점에서 볼 때 범죄의 실행이나 준비 행위를 통해 형성된 위탁관계는 횡령죄로 보호할 만한 가치 있는 신임에 의한 것이 아니라고 봐야 한다"고 판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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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판부 "범죄로 형성된 위탁관계, 횡령죄 보호할 신임 의한 것 아냐"

[아시아경제 허경준 기자] 불법행위를 위해 여러 사람이 모은 돈을 개인적인 용도로 사용했다면, 돈을 쓴 사람을 ‘횡령죄’로 처벌할 수 없다는 대법원의 첫 판단이 나왔다.

범죄의 실행이나 준비 행위를 통해 형성된 위탁관계는 횡령죄로 보호할 만한 가치 있는 신임에 의한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대법원 3부(주심 김재형 대법관)는 횡령 혐의로 기소된 A씨(51)의 상고심에서 징역 6개월을 선고한 원심을 파기하고 사건을 부산지법으로 돌려보냈다고 20일 밝혔다.

A씨는 2013년 1월께 피해자 2명과 함께 의료기관을 개설할 자격이 없음에도 의료소비자 생활협동조합을 만들어 요양병원을 운영하기로 약정한 뒤, 두 사람에게서 투자금 2억5000만원을 받았다.

조합설립을 위한 조합원 모집 절차를 진행하고 병원 후보지를 물색하던 중 A씨와 피해자 사이에 갈등이 생기면서, 피해자들은 A씨에게 약정한 추가 투자금을 더 이상 지급하지 않았고 사업 추진은 중단됐다.

문제는 A씨가 투자금을 두 사람에게 돌려주지 않고 투자금 중 2억3000만원을 개인 빚을 갚는 데 사용하면서 발생했다.

1심은 A씨의 횡령 혐의를 모두 유죄로 인정하고 징역 1년의 실형을 선고했다. 반면 2심은 A씨가 피해자 두 명 중 한 사람에게 받은 2억2000만원을 받은 혐의로 기소됐다가 무죄 확정판결을 받은 부분을 일부 면소 판단해 나머지 금액의 횡령 혐의만 유죄로 보고 징역 6개월로 감형했다.

하지만 대법원은 2심이 유죄로 판단한 횡령 혐의에 대해서도 무죄라고 봤다. 횡령죄가 성립하려면 ‘보관자’와 ‘소유자’ 사이에 신임에 의한 위탁관계가 존재해야 하고, 이 위탁관계가 형법상 보호 가치가 있는지는 사안에 따라 규범적으로 판단해야 한다는 게 기존 판례였다.

그러나 대법원은 이번 재판에서 횡령죄 성립 요건을 더 까다롭게 보고 "규범적 관점에서 볼 때 범죄의 실행이나 준비 행위를 통해 형성된 위탁관계는 횡령죄로 보호할 만한 가치 있는 신임에 의한 것이 아니라고 봐야 한다"고 판시했다.

투자금을 준 것이 의료법 위반 행위에 해당한다는 이유만으로 피해자가 민사상 반환청구도 할 수 없는 불법원인급여가 되는 것은 아니지만, 피해자의 민사상 반환청구권이 허용된다고 해서 무조건 형사상 보호가치 있는 위탁관계에 해당하는 것도 아니라는 것이다.

허경준 기자 kjune@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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