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세 24만원, 약값 30만원..10만원 쥔 수급자 "고기, 그림의 떡"

신성식 2022. 7. 20. 0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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급격하게 오른 물가로 극빈층을 대상으로 한 무료급식소도 운영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 가운데 22일 서울 종로구 탑골공원에서 노인들이 무료 급식을 위해 대기하고 있다. 연합뉴스

서울 종로구 돈의동 쪽방촌의 박경화(61)씨는 기초생활보장 수급자이다. 정부의 생계비 78만원으로 한 달을 산다. 월세로 24만원, 약값(진통제·파스 등)에 30만원 든다. 식비는 10만원 정도 든다. 일부는 비상금으로 남긴다. 집에서 밥을 해 먹는다. 주로 먹는 반찬은 창란젓·오징어젓 등이다. 박씨는 "예전에는 창란젓 만원 어치면 한 봉지였는데, 요새는 한 주먹밖에 안 된다"고 말한다.

기초수급자 A씨가 19일 오전 서울 중구 프레스센터 앞에서 '기준중위소득 대폭 인상'을 요구하는 기자회견장에 섰다. 그는 홈리스야학의 학생회장이기도 하다. "안녕하세요. 일반수급자입니다. 처음으로 가계부를 써봤습니다. 돈을 모으는 방법은 먹는 걸 줄이는 것입니다."라며 점점 곤궁해지는 삶을 털어왔다. 다음은 그의 하소연.

"컵라면과 우유로 때웁니다. 야학에서 식사할 때를 제외하면 제대로 된 식사를 못합니다. 남들 다 먹는 피자, 언제 배달시켰는지 생각이 안 나요. 더운 날에는 냉면 먹고 싶은데 8000원, 10000원이라서 도무지 사 먹을 수가 없어요. 고민하다 슈퍼마켓에서 비빔면을 삽니다. 아무 거나 먹어도 배만 채우면 된다는 생각입니다. 명절에 옷 한 벌 사기도 쉽지 않네요."
A씨는 뇌질환이 있다. 5년 전부터 정기적으로 혈관 확장 시술을 받는다. 건강보험이 안 돼 50만원이 든다. 그래서 매달 5만원을 악착같이 모은다. A씨는 "58만원의 기초 생계비로 인간답게 살 수 있다는 건지, 물가(인상)까지 생각하면 우유·라면 가격이 오를까 봐 걱정이다. 더 줄일 게 없다. 앞으로 어떻게 살지 막막하다"고 말했다. 그는 "오르는 물가 속에서 두려워 하는 사람들의 목소리를 (정부가) 들어야 한다"며 발언을 마쳤다.

고물가·고유가·고금리가 저소득층을 압박하고 있다. 3고의 고통은 저소득층을 가장 먼저, 강하게 짓누른다. 이수미 노들장애인자립생활센터 권익옹호 활동가는 이날 기자회견에서 "저는 중증 장애인이다. 기초수급자로 산 지 20년 넘었다. 물가가 오르고 금리도 오르고, 다 오르는데 기초수급 생계비(수급비)는 안 오른다. 현실을 반영해 줘야 하지 않으냐"고 말했다.

물가가 급등하면서 저소득층 복지 수당의 화폐가치가 떨어지고 있다. 기초법공동행동이 2~4월 기초수급자 25가구를 가계부를 조사했다. 1인 가구의 하루 평균 식비는 8618원이었다. 9가구는 두 달 간 육류를 한 번도 구입하지 않았다. 14가구는 생선 등 수산물을, 9가구는 과일을 한번도 사지 않았다(중복 가능).

복지 수당의 잣대는 기준중위소득이다. 매년 8월 1일까지 다음해 것을 결정한다. 정부는 19일 2023년 기준중위소득 결정을 위한 생계자활급여소위원회를 열었다. 여기서 고물가 상황을 반영해야 한다는 의견이 많이 나왔다고 한다. 정부는 25일 중앙생활보장위원회를 열어 기준준위소득을 최종 결정한다.

기준중위소득은 기초수급자의 생계비를 비롯해 77개의 복지수당과 서비스의 기준이 된다. 기초 생계비는 기준중위소득의 30%로 책정하는 식이다. 올해 1인 가구의 기준중위소득은 194만 4812원이다. 기초 생계비는 이의 30%인 58만 3444원이 최대치로 나온다.

2023년 기준중위소득이 여느 해와 달리 주목을 받는 이유는 경험한 적이 별로 없는 고물가 때문이다. 물가가 오르면 같은 수급비를 받아도 줄어드는 것과 같다. 기준중위소득은 산식이 있다. 올해 것에다 2018~2020년 가계금융복지조사의 중위소득 평균 인상률을 반영한다. 그래도 실제 소득에 못 미치기 때문에 이를 조정하기 위해 추가로 올린다. 이렇게 기계적으로 나온 인상률이 5.47%이다. 이를 토대로 중앙생활보장위원회가 치열하게 논의한다. 고물가를 반영해야 한다는 주장도 있고, 경제성장률이 뚝 떨어진 점을 반영하자는 반론도 있다고 한다.

작년 이맘때는 어떠했을까. 산식에 의해 나온 인상률이 6.32%였다. 그런데 실제로는 5.02% 올랐다. 올해는 5.47%를 그대로 반영할 수도, 높일 수도, 낮출 수도 있다. 5.47% 올린다고 가정하면 기초생계비에 6500억원(국비 기준), 나머지 76개 복지비용에 4000억원이 들어간다.

'기초생활보장법 바로세우기 공동행동'과 '장애인과 가난한 사람들의 3대 적폐 폐지 공동행동'은 19일 기자회견에서 기준중위소득의 대폭 인상을 촉구했다. 시민단체 '내가만드는복지국가' 강지헌 사무국장은 "25가구의 식비·주거비에 기초 수급비(생계비)의 55% 넘게 쓴다. 정작 고기나 과일을 한 번도 사먹지 못하고 햄이나 라면으로 끼니를 해결한다. 어떤 사람은 1회용 혈당 체크 바늘이 아까워서 여러 번 쓴다. 가장 싼 키트를 사기위해 약국을 전전한다. 지나치게 낮은, 현실적이지 못한 기초 수급비로 인해 생존마저 위협받고 있다"고 말했다.

8월 1일이 임박하면서 이래저래 정부의 고민이 깊어지고 있다.

신성식 복지전문기자, 김남영·최서인 기자 ssshi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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