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태열 "이런 도어스테핑 역효과..인사해법 김영삼에 배워라" [역대 정권 키맨의 尹위기 진단①]
취임 72일 차인 윤석열 대통령의 지지율이 흔들리고 있다. 최근 각종 여론조사에서 대통령 지지율이 30% 초반대를 기록하자 여권에서는 “30% 붕괴가 두렵다”는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과거 정권에서도 지지율은 쉽지 않은 난제였다. 역대 정권에서 대통령과 굵직한 국정과제를 함께 논했던 키맨들은 현 위기 상황을 어떻게 진단할까. 먼저 박근혜 정부 초대 대통령비서실장을 지낸 허태열(78) 전 실장을 19일 전화 인터뷰했다. 허 전 실장은 “대통령의 말은 국민의 가려운 곳을 긁어줘야 하는데 도어스테핑(약식회견)은 역효과”라며 “대통령 메시지를 재정돈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탈북 어민 강제 북송 사건 등이 재점화되는 것을 두고는 “안보정국으로 협치가 뒤집혀선 안 된다”고 지적했다. 이어 “임기초 위기는 반대로 기회일 수 있다. 시행 착오를 조기에 개선하면 윤 대통령 지지율이 반등할 것”이라고 격려했다.
허 전 실장은 1994년 관선 충북지사를 거쳐, 2000년부터 부산 북강서을에서 내리 3선을 지낸 보수진영의 정치인이다. 친박계 핵심으로 ‘박근혜의 그림자’라고도 불렸던 그는 한나라당(현 국민의힘)에서 사무총장, 최고위원 등 요직을 거쳤다. 다음은 일문일답.
Q : 대통령 지지율이 심상치 않다.
A : “대통령이 일희일비할 필요는 없다. 하지만 단기간에 30% 대로 하락할 정도라면 경각심은 가져야 한다. 실책을 돌아보는 ‘되감기’가 필요하다.”
Q : 왜 지지율 위기 상황에 몰렸을까.
A : “구조적으로 세 가지 원인이 있다. 먼저 0.73%포인트 차이로 당선된 윤 대통령이 확고한 반대파를 마주하는 것이 근본적 한계다. 세계적인 경제 불황으로 인한 민생 위기도 지지율에 악영향을 줬을 것이다. 대통령이 일을 하고 싶어도 추진하기 어려운 여소야대 구도도 장애물이다.”
Q : 구조적 이유 말고 다른 원인도 있나.
A : “장관 인사 논란으로 대통령과 정부가 능률적이지 못하다는 인상을 줬다. 도어스테핑은 시작은 참신했지만, 갈수록 메시지가 정돈되지 않아 역효과가 났다. 윤 정부만의 ‘경제 메시지’가 보이지 않는 점도 되돌아봤으면 한다.”
Q : 도어스테핑이 불통보단 낫지 않나.
A : “대통령의 메시지는 국민의 가려움을 긁어줘야 하는데 도어스테핑을 통해서 그런 효과를 얻지 못했고, 피할 수 있었던 불필요한 논란이 빚어졌다. 미국 대통령도 기자와 매일 문답하진 않는다.”
허 전 실장의 앞선 지적대로 정부는 장관 인사 문제로 몸살을 앓았다. 보건복지부 장관 인선 과정에서 정호영·김승희 후보자가 낙마했고, 교육부 장관 인선 역시 음주운전 논란 등 잡음 끝에 박순애 장관이 임명됐다. 야당은 대통령실 사적 채용 의혹을 고리로 공세를 펴고 있다.
Q : 장관 인사, 어떻게 봤나.
A : “역대 정부 중 인사 문제로 상처 입지 않은 정부가 있었나. 윤석열 정부의 장관 인사도 국민 눈높이를 맞추지 못했다. 국민을 한껏 피로하게 만든 뒤에야 임명을 철회하는 것은 좋은 수가 아니다.”
Q : 사적채용 논란은 어떻게 보나.
A : “억지스러운 공세다. 역대 어느 정부에서도 대통령실 채용은 일정 부분 내부 추천과 대선 캠프에서의 공로를 바탕으로 이뤄졌다. ‘어공’(어쩌다 공무원)이라는 말은 김대중·노무현·문재인 정부에서도 있었다.”
허 전 실장은 여당인 국민의힘을 두고는 “집권당의 역할을 하지 못하는 상태”라고 지적했다. “선거 승리 이후 오히려 지리멸렬 수준으로 가는 집권당 리스크가 정부에 부담이 되고 있다”라고도 덧붙였다.
Q : ‘집권당 리스크’란 무엇인가.
A : “대통령이 어려운데 ‘윤핵관’(윤석열 측 핵심 관계자)끼리 말다툼을 하고 있다는 인상을 주고 있으니, 국민이 어떻게 반응하겠나. 하루빨리 내부 다툼을 접어야 한다.”
Q : 이준석 대표 징계로 당이 시끄러웠다.
A : “이 대표가 이대남(20대 남성) 지지를 끌어낸 공이 있지만, 대행 체제를 반년이나 끌고 갈 수는 없다. 위기 상황인 만큼 전당대회를 열고 새로운 리더십으로 당이 뭉쳐야 한다.”
허 전 실장은 지지율 위기를 타개할 해법으로 “업무보고부터 바꿔야 한다”고 제안했다. 그는 지난 11일 윤 대통령이 첫 업무보고에서 추경호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에게서 배석자 없이 ‘독대 보고’를 받은 것을 거론하며 “적절치 않다”고 지적했다.
Q : 어떻게 바뀌어야 하나.
A : “대통령이 장관은 물론 각 기관 핵심 인사들과 둘러앉아 머리를 맞대고 치열하게 토론한 뒤, 경제 정책을 리드할 수 있어야 한다. 대통령의 지휘에 맞춰 하부 기관이 착실하게 정책을 이행하는 모습이 보이면 국민도 ‘정부가 제대로 일 한다’고 느낄 것이다.”
Q : 인사 문제 해법은.
A : “능력도 중요하지만, 국민 눈높이를 우선순위로 뒀으면 한다. 특정 인사에 대해 여론이 심각하게 흔들리면 국민을 설득하든, 인사를 물리든 즉각적으로 반응해야 한다. 김영삼 전 대통령이 그런 것을 잘했다. 국민이 분노하면 곧바로 인정하고 ‘졸업’시키지 않았나.”
Q : 강제 북송 이슈 등의 재점화는 어떻게 보나.
A : “사정정국만 끌고 가는 것도 쉽지 않은데, 안보정국까지 덧씌워져 감당하기가 어려워졌다. 안보정국으로 여야 협치가 뒤집히면 안 된다. 꼭 진상규명이 필요하다면 속도 조절을 하면 된다.”
허 전 실장은 대통령 주변부를 언급하면서 “듣기 좋은 말만 하는 사람보다는 대통령의 부족한 점을 메울 수 있는 사람을 곁에 둬야 한다”고 제안했다. 직언을 강조하는 대목에서는 “나도 쉽지 않았다”고 웃어 보였다. 김건희 여사에게는 “너무 급할 것 없다”고 조언했다.
Q : 김건희 여사에 대한 대중의 관심이 뜨겁다.
A : “대선 당시 약속을 지키는 게 첫걸음이다. 김 여사가 정상 외교에서 대통령과 함께 하는 것은 당연하지만, 공적 인력이나 기관의 지원을 받는 국내 활동은 최대한 자제해야 한다. 순리대로 약속을 지키다 보면 어느덧 여론이 호의적으로 바뀔 것이다.”
손국희 기자 9key@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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