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미 "필요시 외환시장 유동성 공급장치 실행"

정종훈, 권호, 고석현, 임선영 2022. 7. 20. 0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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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닛 옐런

한·미 재무장관이 점차 악화하는 세계 경제 상황 속에서 긴밀한 정책 공조가 필요하다는 데 뜻을 모았다. 외환시장 안정책으로 주목을 받았던 통화스와프 체결은 이뤄지지 않았지만 ‘외화 유동성 공급’을 명시해 향후 한·미 통화스와프 재체결 가능성을 열어뒀다. 기재부 관계자는 “통화스와프에 준하는 조처를 할 수 있다고 밝힌 것으로, 요동치는 국내 외환·금융시장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평가했다. 러시아산 원유 가격상한제 등 미국이 요청한 우크라이나 사태 대응책에 대해 우리 정부는 동참하겠다는 의사를 밝혔다.

추경호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과 재닛 옐런(사진) 미국 재무부 장관은 19일 오후 서울 롯데호텔에서 열린 한·미 재무장관회의를 마치고 이런 회의 결과를 발표했다. 이날 회의엔 두 장관을 비롯해 양국 정부 관계자 7명이 각각 참석했다. 미 재무장관이 한국을 찾은 건 2016년 6월 제이콥 루 당시 장관 이후 6년 만이다. 옐런 장관이 방한한 건 지난해 1월 취임 이후 처음이다.

회의 테이블엔 한국을 포함한 전 세계적 경제 동향과 전망,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대응, 외환시장 동향과 협력, 기후변화 대응, 글로벌 보건을 포함한 다양한 주제가 올라갔다.

옐런 “프렌드쇼어링을” 한미 반도체·배터리 동맹 강조

윤석열 대통령이 19일 오후 용산 대통령실 청사 집무실에서 재닛 옐런 미국 재무장관을 접견하고 있다. 이 자리에서 윤 대통령은 “한·미 간에 포괄적 전략 동맹이 정치군사 안보와 산업기술 안보에서 나아가 경제금융 안보 동맹으로서 더욱 튼튼하게 이어지기를 기대한다”고 밝혔다. [사진 대통령실사진기자단]

특히 코로나19 재유행, 원자재 가격 급등과 인플레이션, 통화 긴축처럼 불안한 세계 경제 상황에 대응하는 내용이 주로 논의됐다. 두 장관은 우선 한·미 간 경제협력이 어느 때보다 중요하다는 데에 공감했다. “양국 국민과 기업 부담을 가중시키는 글로벌 공급망 교란, 불공정한 시장 왜곡 관행 등에 철저히 대응하기 위해선 더욱 긴밀한 정책 공조가 필요하다는 데 의견을 같이했다”고 밝혔다.

우크라이나 사태 대응에서도 상호 협력과 긴밀한 공조를 강조했다. 특히 러시아 원유 가격상한제 도입을 두고 미국 측이 협력을 구하고 한국 측에서 받아들이는 모양새가 됐다. 옐런 장관은 지난 1일 한·미 재무장관 콘퍼런스콜에서 언급했던 가격상한제 도입에 한국이 적극적으로 동참해 달라고 재차 요청했다. 이에 대해 추 부총리는 “가격상한제 도입 취지에 공감하며 동참할 용의가 있다”고 답했다. 다만 가격상한제가 국제 유가, 소비자 물가 안정에 기여하도록 효과적으로 설계돼야 한다고 밝혔다.

양국은 금융·외환시장을 두곤 협력 강화를 재확인했지만 가장 큰 주목을 받았던 통화스와프 체결엔 이르지 못했다. 국가 간 통화를 맞교환하는 통화스와프는 자국 통화를 상대국에 맡기고 미리 약속한 환율로 상대국 통화를 들여올 수 있는 거래를 뜻한다. 코로나19 사태 초기 글로벌 금융시장 안정을 위해 체결한 한·미 통화스와프는 지난해 만료됐지만 이를 부활시켜 원화 가치 추락 등 외환시장 변동성을 최소화해야 한다는 주장이 꾸준히 나왔다.

통화스와프가 구체적으로 논의되지 않은 건 미 재무부보다 연방준비제도(Fed) 쪽 업무에 가깝다는 이유가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또한 회의 결과에 나온 대로 원·달러 환율 변동성이 커지긴 했지만 한국 내 외화 유동성이 양호하고 안정적이라는 판단도 작용했다.

그러나 발표문엔 ‘양국이 필요 시 유동성 공급 장치 등 다양한 협력 방안을 실행할 여력이 있다’는 데 인식을 공유했다는 문구가 들어갔다. 통화스와프를 명시하진 않았지만 향후 한·미 당국이 통화스와프 부활을 비롯한 외환시장 안정 방안을 논의할 실마리를 남긴 것이다.

추경호

이날 재무장관회의가 열리기 전 옐런 장관은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 윤석열 대통령과 잇따라 면담했다. 이 총재와 만난 자리에선 양국 간 협력을 도모해 나가기로 했다.

윤 대통령과의 비공개 환담에선 전 세계적인 인플레이션 상황 등에 대해 논의했다. 윤 대통령은 이 자리에서 “경제안보 분야에서 미국의 글로벌 리더십을 전폭적으로 지지한다”면서 “한·미 간의 포괄적 전략 동맹이 정치군사 안보에서 산업기술 안보, 나아가 경제금융 안보 동맹으로 더욱 튼튼히 이어지기를 기대한다”고 말했다. 윤 대통령은 특히 “양국의 상대적 통화가치가 안정될 수 있도록 미국도 협력해 주기를 바란다”고 말했다고 대변인실이 전했다.

한편 옐런 장관은 이날 오전엔 서울 강서구 마곡 LG사이언스파크 내 LG화학 연구개발(R&D) 캠퍼스를 찾아 중국·러시아 등을 견제하며 ‘프렌드쇼어링(friendshoring·동맹국 간 공급망을 구축하려는 움직임)’을 강조했다. LG화학 R&D 캠퍼스는 차세대 양극재와 분리막 등 미래전지 소재 연구시설이 모여 있는 곳으로, 옐런 장관이 방한 기간 중 방문한 기업은 LG화학이 유일하다.

LG화학은 최근 미국 현지에 양극재 공장 신설 등을 검토하고 있다. 배터리 제조 자회사인 LG에너지솔루션을 통해 미국 오하이오·테네시·미시간 등에 합작사 형태로 생산시설을 세웠다. 두 회사는 북미 지역 배터리 공급망 확대를 위해 2025년까지 110억 달러(약 14조4400억원)를 투자하겠다고 발표한 바 있다. 옐런 장관은 이날 신학철 LG화학 부회장의 소개로 전기차 배터리 등 재생에너지 전시관을 30여 분간 둘러봤다. 이어진 공개 발언에서 그는 “한국은 반도체와 배터리 등 핵심 부품의 주요 공급망 역할을 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파트너와 동맹국 간에 프렌드쇼어링을 도입하고 더 굳건한 경제 성장을 이루도록 해야 한다”고 역설했다. “한국과 미국이 반도체·배터리 분야를 함께 협력해서 (공급망) 병목 현상을 해결해야 한다”고도 강조했다. 옐런 장관은 또한 “원자재·기술과 관련해 자신의 지정학적 힘을 활용해 경제적 압력을 주는 현상을 목격하고 있다”면서 중국·러시아를 저격했다. 이와 관련, 이학노 동국대 국제통상학과 교수는 “반도체와 배터리 분야는 한국뿐 아니라 미국 입장에서도 경제안보와 군사전략적 측면에서 중요하다”며 “중국과 러시아를 견제하려는 의도도 깔린 것으로 보인다. 앞으로도 이들 분야의 한·미 협력이 강조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중국, 미국 반도체동맹에 “협박외교”=중국 정부는 미국 정부가 한국에 반도체 공급망 동맹(칩4, 한국·미국·일본·대만) 참여를 독려하는 움직임을 이날 ‘협박 외교’라며 강도 높게 비판했다. 미 정부는 한국 정부에 8월 말까지 칩4 동맹 참여 여부를 알려달라고 요청한 상황이다.

자오리젠 중국 외교부 대변인은 19일 정례 브리핑에서 “미국은 자유무역 원칙을 표방하면서 계속 국가 역량을 남용해 과학기술과 경제무역 문제를 정치화·도구화·무기화하고 ‘협박 외교’를 일삼고 있다”고 비판했다. 자오 대변인은 “세계 경제가 깊이 서로 융합된 상황에서 미국 측의 이런 행태는 흐름을 거스르는 것으로, 민심을 얻지 못하며 결국 실패로 종언을 고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세종=정종훈 기자, 권호·고석현·임선영 기자 sakehoo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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