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국인 관광객 年 1천만..'일본의 부엌' 쿠로몬 시장 가보니
쿠로몬 시장
‘일본의 부엌’이라 불리는 오사카의 쿠로몬(黑門) 시장. 수산물 시장으로 유명한 이곳은 인근 도톤보리 시장과 함께 코로나19 사태 전 한국인 관광객이 가장 즐겨 찾던 관광지 중 한 곳이었다. 한때 쿠로몬 시장의 하루 통행객 수는 약 3만명에 달해 평일 아침에도 거리를 걷기가 어려울 정도였다. 그러나 지난 6월 27일 찾은 쿠로몬 시장은 수많은 공실에 적막감마저 감도는 한산한 모습이다. 외국인 관광객이 밀려들며 활기를 띠었지만, 코로나19 사태로 관광객의 발길이 끊겼기 때문이다.
지난 10년간 쿠로몬 시장에는 어떤 일이 있었던 걸까.
▶외국인 관광객에 웃고 울다
▷상인들도 외국어 공부…관광객 급증
인근 사찰의 검은색 문을 따서 이름 지은 쿠로몬 시장은 약 580m 길이의 아케이드 아래에 약 130개 상점이 줄지어 늘어서 있다. 신선한 생선 가게가 주를 이루고 채소, 과일, 고기, 화과자 등 다양한 상점이 도처에서 붐벼 ‘일본의 부엌’으로 자리매김했다.
200년 역사를 자랑하는 쿠로몬 시장에는 50년 이상 된 가게가 즐비하고 100년 이상 된 가게도 10여개나 된다. 전성기를 맞은 것은 약 10년 전부터. 한국에 이어 동남아 국가에 대한 비자 면제 조치가 잇따르며 외국인 관광객이 밀려들었다.
갈수록 관광객 손님이 늘자 전체 상인의 80% 이상이 가입해 있는 상인회가 주축이 돼서 대응에 나섰다. 2012년 시장 지도를 만들어 걸고 상인들끼리 모여 외국어 공부도 했다. 외국어로 된 표지판과 가이드북을 만들어 주요 호텔에 무료로 비치하고 관광객이 좋아할 만한 상품을 연구해서 팔았다. 시장에서 구입한 음식을 즉석에서 먹을 수 있도록 30평 규모 휴게소를 만들고 청소 담당 직원도 고용했다.
예산은 가게마다 월 1만8000엔(약 18만원)씩 회비를 거둬 충당했다. 규모가 큰 가게에서는 더 거뒀다. 일반 상인회비치고는 다소 비싼 편이지만 상권을 활성화하기 위한 목적이니 다들 납득했다. 쿠로몬 상인의 90%가 회비를 냈다. 회비를 안 내는 가게는 홈페이지나 팸플릿, 지도 등에 기재하지 않고 이벤트에서도 제외시켜 참여를 독려한 결과다.
결과는 대성공. 적극적인 외국인 관광객 유치 전략에 힘입어 쿠로몬 시장은 코로나19 사태 전까지 하루 최대 3만명, 연간 1000만명에 이르는 손님이 다녀갔다. 방문객의 90%는 외국인이었다.
“내국인은 10% 정도인데, 두 종류가 있습니다. 근처에 사는 주민들과 타 지역에서 여행 오는 일본인이죠. 그러나 주민들은 3일 정도 반짝 세일하면 조금 더 오기는 하겠지만 한계가 있어요. 매출을 높이려면 어쩔 수 없이 외국인이나 타 지역의 관광객을 대상으로 모객할 수밖에 없습니다.”
에이지 사코 쿠로몬 시장 상인회 이사장의 설명이다.
쿠로몬 시장 상인회 사무실에는 ‘회의 시 6개 약속’이라는 문서가 걸려 있다. 내용인즉, ‘회의는 2시간이 적당하다’ ‘회의 1분 전에는 집합하자’ ‘(의미 없이 모이지 말고) 필요한 사람만 출석하자’ ‘자료는 적게 만들고 가급적 회의 전에 배포하자’ ‘화제에 집중하자’ ‘의견은 3분 이내로 말하자’ ‘회의 종료 전 결론을 확인하자’다.
에이지 사코 이사장은 여기에 7번째 약속이 있다고 덧붙인다.
“7번째는 ‘회의가 끝나면 같이 밥을 먹는다’입니다(웃음). 물론 농담이지만 사실 이게 가장 중요합니다. 상인들끼리 자주 같이 밥을 먹어야만 결속력이 생기거든요. 밥값은 더치페이로 각각 내는데, 회장인 제가 좀 더 내는 편입니다. 모두 사비로 쓰고, (공금인) 회비는 절대 쓰지 않습니다.”
▶일부 상점 ‘바가지 상술’ 불만도
▷내국인 손님 급감…“일부 상점 일탈”
잘나가던 쿠로몬 시장은 코로나19 사태로 큰 위기를 맞았다. 외국인 관광객의 방문이 끊기며 대부분 상점들의 매출이 10분의 1로 급감했다. 심한 경우는 20분의 1까지 줄어든 가게도 있다. 설상가상 내국인 손님도 발길이 뜸해졌다. 외국인 관광객을 타깃으로 터무니없이 비싼 ‘바가지 가격’에 판다는 안 좋은 평판이 퍼진 탓이다.
이에 대해 에이지 사코 이사장은 일부 수긍하면서도 오해가 있다는 입장을 밝혔다.
“신규 가게 중 일부가 바가지를 씌운 경우가 있었던 것은 사실입니다. 게살을 구워서 1000엔을 받거나, 쿠로와규(일본 흑소)라 해놓고 실은 일반 소고기를 구워 5000~1만엔에 파는 가게들도 있었죠. 이들은 상인회에도 가입하지 않았어요. ‘적정 가격을 지켜달라’고 부탁했지만, 상인회에서 강제로 어떻게 하지는 못했습니다. 앞으로는 신규 가게들이 손님들에게 바가지를 씌우지 못하도록 지자체에서도 관리하고 당부할 예정입니다.”
인터뷰 | 에이지 사코 쿠로몬 시장 상인회 이사장
무보수 이사 30년…“어린 시절 보낸 시장 잘됐으면”
A 선대로부터 과일 가게를 70년째 운영하고 있다. 이사로 30여년 근무하다가 지난해 이사장으로 선출돼 취임했다. 쿠로몬 시장에는 이사(임원)가 30명 정도 있는데 이들은 모두 무보수로 일한다. 나도 어려서부터 시장에서 자랐기 때문에 시장이 잘됐으면 하는 마음에 무보수로 역할을 맡게 됐다.
Q 월 1만8000엔에 달하는 회비가 다소 비싼 듯한데 납부율이 90%라니 놀랍다.
A 회비 납부가 의무는 아니다. 지금은 78% 정도만 낸다. 장사가 어려워진 탓이다. 하지만 다들 회비를 내는 데 이견이 없고 관광객이 돌아와 장사가 다시 잘되면 더 내려하고 있다. 쿠로몬 시장이 200년의 전통이 있기 때문에 회비를 낸다는 것은 당연하게 생각한다. 납부율 90%도 높은 편이라 생각하지 않는다. 모두 같은 시장에서 장사하니까 이왕이면 (납부율이) 100%가 됐으면 한다.
Q 상인들의 고령화와 후계자 찾기 문제는 없나.
A 쿠로몬 시장 사장들의 연령대는 40대부터 80대까지가 주를 이루는데, 그중 60대가 가장 많다. 그래도 쿠로몬 시장은 일본의 다른 전통시장과 비교해서 후계자는 많은 편이다. 외국인 관광객이 돌아오면 다시 장사가 잘될 것이라는 기대감이 있기 때문이다. 올 연말이나 내년부터는 관광객이 돌아올 것으로 기대한다.
Q 관광객 유치 외에 다른 대책은 없나.
A 쿠로몬 시장은 ‘길거리 음식’을 주로 팔아 내국인은 많이 찾지 않는다. 데마에칸, 라쿠텐 등을 이용해서 온라인 판매를 활성화해보려 했지만 주요 상품이 생선, 채소 등 식품 위주다 보니 역시 어렵더라. 신선하고 싱싱한 식품과 시장의 활기찬 분위기를 즐기는 것이 쿠로몬 시장의 특장점이니까. 외국인 관광객이 많아지면 아무래도 내국인 방문객은 잘 안 오게 되는 것 같다.
Q 전통시장을 살리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A 오사카 시내에서는 센바야시, 코마가와, 텐진바시 전통시장이 잘되는 편이다. 이들은 뭐가 다를까 생각해봤다. 결국은 상인들이 일치단결해서 자주 회의하고 여러 아이디어를 내는 것이 중요한 것 같다. 쿠로몬 시장도 간부 회의, 이사회 등 상권 활성화를 위한 각종 회의가 월 4~5회씩 있다.
시장마다 입지가 다르고 지역의 인구도 다르니 ‘이것이 해법이다’라고 딱 꼬집어 말하기는 어렵다. 시장마다 고유의 대책을 세우는 것이 중요하다. 쿠로몬은 남바 터미널 근처에 위치해 있어 타 지역에서 오는 관광객을 타깃으로 한 것이다.
[오사카 = 노승욱 기자]
[본 기사는 매경이코노미 제2168호 (2022.07.20~2022.07.26일자)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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