극단적 선택한 801명..'심리 부검 보고서' 살펴보니
코로나19 이후 사회적 고립, 경제적 손실 등이 영향
#20대 여성 C씨는 3년차 직장인으로, 코로나19 유행으로 본래 업무에 더해 자가격리자 관리를 맡게 되었다. 코로나19 유행이 심각해지고, 지역 내 확진자가 급증하면서 C씨 업무량도 크게 늘었다. 아침 일찍 출근해 밤늦게 퇴근하는 일이 수개월 이어졌고, C씨는 극심한 스트레스를 호소했다. 그러던 중, C씨의 동료가 휴직에 들어가게 됐다. C씨가 동료의 업무까지 담당하게 되었다. 다음날 아침, C씨는 출동한 경찰에 의해 사망한 채로 발견되었다. (심리부검 보고서 내용을 각색)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19(코로나19)로 인한 사회적 고립, 경제적 손실이 자살 사망자에게 영향을 미치는 것으로 나타났다. 또 자살로 가족 또는 친구, 지인을 잃은 유족이 우울감을 이기지 못해 자살로 사망하는 경우도 절반에 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보건복지부는 한국생명존중희망재단과 함께 최근 7년간(2015~2021) 자살사망자 801명의 유족 952명을 대상으로 진행한 심리부검 면담 분석 결과를 19일 발표했다. 심리부검은 사망 전 자살자 심리 행동 양상 및 변화 상태를 주변인의 진술과 기록을 기반으로 객관적으로 검토하여 그 원인을 탐색하는 과정을 말한다. 한국에서는 2015년부터 시행하고 있다.
여성보다는 남성이, 생애주기별로는 중년기 제일 많아
7년간 심리부검 분석대상이 된 자살사망자는 19세 이상 성인 801명이다.남성 542명(67.7%), 여성 259명(32.3%)이다. 생애주기별로는 중년기(35~49세)가 33.7%로 비율이 가장 높았다.
사망 당시 경제상태는 소득이 전혀 없거나(18.7%) 월평균 소득 100만 원 미만(22.1%)인 저소득층 비율이 전체 심리부검 대상자의 40.8%(327명)였다. 또한 약 50%가 부채를 갖고 있었던 것으로 나타났다.
사망 원인 살펴보니…‘가족관계 문제’가 가장 높아
심리부검 면담 대상자가 사망 전 경험한 스트레스 사건을 분석한 결과, 자살 사망자 1명 당 평균 3.1개 사건을 동시에 경험한 것으로 나타났다.주요 사건은 부모·자녀 등 가족관계(60.4%), 부채·수입 감소 등 경제문제(59.8%), 동료 관계·실직 등 직업문제(59.2%) 순이었다.
자살사망자는 스트레스 사건 발생 뒤 우울, 불안 등 정신건강 문제가 발생 또는 악화하여 자살에 이르는 공통점이 있었다.
또 심리부검 대상 자살사망자 중 상당수(801명 중 710명, 88.6%)가 정신과 질환을 진단받았거나, 질환이 있었을 것으로 추정된다는 분석 결과가 나왔다. 모든 연령층에서 우울장애가 82.1%로 가장 높은 비율을 차지하였고, 물질 관련 및 중독장애(32.8%), 불안장애(22.4%) 등이 뒤를 이었다.
사망 전 3개월 이내 도움을 받기 위해 기관을 방문했던 자살사망자 394명 중 50.3%(198명)는 정신건강의학과를 방문했고, 42.6%(168명)는 정신건강의학과가 아닌 병·의원을 방문한 것으로 나타났다.
자살 시도 경험, 재시도와 사망으로까지 이어져
심리부검 대상자의 35.8%(287명)는 사망 전 과거 1회 이상 자살 시도를 했던 경험이 있으며, 10.2%(82명)는 자해 행동을 했던 것으로 나타났다. 자살시도경험은 연령별로는 균등 분포됐고 성별로는 여성(46.7%)이 남성(30.6%)에 비해 높았다.
특히 유족이 자살위험에 취약한 것으로 드러났다. 심리부검 면담에 참여한 유족 952명 중 95.2%(906명)는 사별 이후 일상생활에서 변화를 경험했다. 특히 심리상태의 변화(97.0%)가 두드러졌다.
유족의 83.3%(793명)는 우울 증상을 경험하는 것으로 나타났고, 이 중 60.9%(580명)는 중증도 이상의 우울 상태인 것으로 파악됐다.
약 60%의 유족(566명)이 면담 당시 자살 생각이 있다고 답했는데, 사별 기간이 3개월 이하(61.2%)로 짧거나, 25개월 이상(61.5%)으로 긴 유족에게서 자살 생각을 하는 비율이 높았다.
고인과의 관계에 따라서는 유족이 부모일 때 자살 생각 응답 비율이 69.2%로 가장 높았다. 그 뒤를 형제·자매 61.1%, 배우자 59.3%, 자녀 56.5%가 이었다.
심리부검 대상 자살사망자의 42.8%(343명)는 생존 당시 자살로 가족, 지인(친구, 직장동료 등)을 잃은 자살 유족인 것으로 나타났다.
코로나19는 자살사망에 어떤 영향 미쳤나
코로나19는 자살사망에 어떤 영향을 끼쳤을까.
한국생명존중희망재단은 2020년 1월 이후 자살사망자 132명 중 코로나19가 자살사망과 관련된 것으로 추정되는 29명의 사례를 분석했다. 이 가운데 남성은 65.5%(19명), 여성은 34.5%(10명)이었다. 연령대는 30대와 20대가 각각 31%(9명)로 가장 많았다. 40대, 50대는 각각 4명, 60대 이상은 3명이었다.
그 결과 코로나19에 따른 사회경제적 변화, 즉 경제 상황 변화(실직, 폐업, 부채 증가 등), 정신건강 문제 악화, 사회적 활동 제한 등이 자살사망 발생과 직간접적 관련이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사업부진, 실패를 겪은 9명은 관광, 문화, 교육 산업 종사자였다. 실직자는 2명, 코로나19로 업무부담이 크게 늘어 어려움을 겪은 자살사망자도 2명이었다. 경제적 스트레스를 경험한 23명 중 10명은 부채, 8명은 현재 혹은 미래의 경제적 상태에 대한 불안감을 호소했던 것으로 나타났다.
복지부는 심리부검을 통해 파악한 자살위험 요인 등을 토대로 향후 자살 예방 전략 수립 근거로 활용하겠다는 입장이다.
정은영 복지부 정신건강정책관은 “향후 코로나19 등의 급격한 사회경제적 환경변화에 따른 자살 원인분석을 위해 심리부검을 확대 실시하고 코로나19 시대 전 국민 정신건강 증진, 정신질환 조기 발견·치료, 자살 고위험군 사후관리 강화 등의 내용이 포함된 범부처 차원의 제2차 자살예방기본계획을 12월 중 수립하겠다”고 밝혔다.
아울러 자살 위험에 노출될 가능성이 높은 자살 유족을 대상으로는 유족의 초기 심리 안정부터 법률, 행정처리 및 임시 주거 등 지속적인 사후관리를 돕는 ‘자살 유족 원스톱서비스 지원사업’을 오는 2024년까지 전국으로 확대 시행하겠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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