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살 사망자 94%가 사망 전 '위험 신호' 보낸다
국내 자살사망자에 대한 심리부검 분석 결과, 94%가 사망 전 자살을 직접 언급하는 등 경고 신호를 보이는 것으로 나타났다. 또 자살 사망자의 유족들은 80% 이상이 우울증을 경험하고 60%는 자살 생각을 하는 위험한 상태에 놓여 있어 사회적인 지원과 사후 관리가 필요한 것으로 파악됐다.
자살사망자 94%, 자살 언급·주변 정리 등 신호 보내
보건복지부는 19일 2015년부터 2021년까지 7년 동안 진행한 자살 사망자의 심리부검 분석 결과를 발표했다. 심리부검은 자살 유족의 진술·기록 등을 통해 사망자의 자살 원인을 추정·검증하는 조사 방법이다. 7년간 심리부검 분석대상이 된 자살 사망자는 19세 이상 성인 801명인데, 35~49세 중년기의 비율(33.7%)이 가장 높았다. 사망 당시 소득이 전혀 없거나(18.7%) 월평균 소득 100만 원 미만(22.1%)인 저소득층 비율이 전체 심리부검 대상자의 40.8%에 달했고, 약 50%가 부채를 갖고 있었다.
자살사망자의 94%는 사망 전 경고 신호를 보였다. 심리부검 대상자 801명 중 753명은 사망 전 죽음에 대해 직접 언급하거나,주변 정리, 수면 상태 변화 등 언어·행동·정서적 변화가 나타났다. 사망 전 3개월 이내 변화를 살펴보면, 32.3%가 감정 상태의 변화를 보였다. 수치심, 외로움, 절망감 등을 느끼거나 표현했고, 평소보다 짜증을 잘 내는 모습을 보였다. 24.6%는 무기력함을 보였고, 24.4%는 평소보다 덜 먹거나 더 먹는 등의 식사 상태의 변화가 있었다.
또 전체 심리부검 대상자의 35.8%는 사망 전 과거 한 번 이상의 자살 시도를 했던 경험이 있었다. 자해 행동은 특히 청년기에서 높게 나타났는데, 자해 행동을 한 자살사망자 전 연령의 56.1%가 청년기에 해당했다.
자살사망자 중 89%는 정신과 질환을 진단받았거나, 질환이 있었을 것으로 추정됐다. 우울 장애는 82.1%로, 모든 연령층에서 가장 높은 비율을 차지했고, 그 외 물질 관련 및 중독장애(32.8%), 불안장애(22.4%) 등이 뒤를 이었다. 사망 전 3개월 이내 기관을 방문했던 자살사망자 394명 중 50% 이상이 정신건강의학과를 방문했고, 43%는 그 밖의 병·의원을 방문한 것으로 나타났다.
사망원인으로는 다양한 요인들이 복합적으로 작용하는 것으로 분석됐다. 자살사망자는 스트레스 사건을 겪고, 우울, 불안 등 정신건강 문제가 발생해 자살까지 이르는 양상을 보였다. 사망 전 겪는 스트레스 사건은 자살사망자 한 명당 평균 3.1개의 사건을 동시에 경험한 것으로 나타났다. 주로 겪은 사건은 부모·자녀 등 가족관계 관련 사건이 60.4%로 가장 높았고, 부채·수입 감소 등 경제 문제(59.8%), 동료 관계·실직 등 직업 문제(59.2%) 등이 뒤를 이었다.
특히 코로나19 사태가 자살 사망자들이 생전에 갖고 있던 직업적·경제적 스트레스를 가중 시킨 것으로 드러났다. 코로나19 이후 사회·경제적 변화가 자살사망과 관련된 것으로 추정되는 29명의 사례를 분석해보니, 65.5%는 사망 전 직업 스트레스를, 79.3%는 경제 스트레스 경험했다. 원소윤 복지부 자살예방정책과장은 "(가장 큰 비중이 나온) 직업 스트레스는 주로 관광·문화 요식업 분야에서 발생했다"며 "사업난 등 코로나19 이전부터 있었던 문제가 팬데믹을 겪으며 악화하면서 사업부진·실패나 실직 등으로 나타난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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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족 약 60% "자살 생각 있다"…사후 관리 필요
유가족들은 자살 위험에 취약한 상태에 놓이는 것으로 파악됐다. 심리부검 면담에 참여한 유족 952명 중 95.2%는 사별 이후 일상생활에서 변화를 경험했다. 대부분이 심리상태의 변화였다. 유가족의 83.3%는 우울 증상을 경험했고, 이 중 60.9%는 중증도 이상의 우울 상태였다. 사별 기간이 3개월 이하로 짧은 유족의 경우 심각한 우울을 호소하는 비율이 높았고, 특히 고인과의 관계에서 유족이 부모(28.0%) 및 배우자(25.6%)인 경우 심각한 우울을 겪는 것으로 나타났다.
약 60%의 유족(566명)이 면담 당시 자살 생각이 있다고 답했다. 특히, 심리부검 대상 자살사망자의 42.8%가 생존 당시 자살로 가족이나 지인을 잃은 자살 유가족으로 나타나 자살 시도자뿐 아니라 유족에 대한 사후관리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복지부는 유족 사후 관리를 강화하기 위해 '자살유족 원스톱 서비스 지원 사업(원스톱 사업)'을 2024년까지 전국으로 확대할 계획이다. 2019년부터 시작한 원스톱 사업은 자살 사건 인지 즉시 경찰서로 원스톱 유족팀이 출동해 초기 대응부터 심리지원, 법률 행정 지원 원스톱으로 제공하고 있다. 현재 시행 지역은 강원 광주 인천 세 곳이다. 원소윤 과장은 "유족은 심리적 고통. 경제·환경적 어려움 등을 일상생활 다양하게 직면한다"며 "심리지원, 복지서비스 등 정부 차원의 지원 중요하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현재 생명보험협회 등 민간을 통해 지원하는 치료비 등을 국비로 지원하는 방안을 모색하겠다"고 덧붙였다.
심리부검 면담사업도 확대할 계획이다. 전홍진 삼성서울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는 "심리부검 통해 그 당시 상황을 다시 한번 정리해보고 이해하면서, 자살로 인해 발생한 남은 가족 간의 갈등을 풀기도 하고 자살에 대해서 다시 한번 생각해 보는 계기가 될 수 있다"며 "유족들의 PTSD(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를 줄이는 등 긍정적인 도움이 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어환희 기자 eo.hwanhe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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