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안대' 쓴채 눈떠보니 판문점.."탈북민 송환과정 불법"
정부가 2019년 11월 탈북 어민을 강제로 송환하는 과정에서 북송 어민들에게 씌웠던 안대를 비롯해 구금장소를 고지하지 않았던 점 등 북송의 주요 과정이 국내법에 근거가 없는 사실상의 불법을 통해 진행됐다는 주장이 법조계를 중심으로 제기됐다.
내·외국인을 막론하고 포박이나 구금, 강제추방을 위해선 명확한 법적 근거에 따라야 하지만, 관련 근거를 무시하고 탈북 어민에 대한 무리한 북송이 추진됐다는 비판이다.
실제 당시 북송 어민에 대한 판문점 호송에 급하게 투입됐던 경찰 내부에서도 "북송 어민들에게 '불법 보호장비'가 사용됐다"는 우려가 나왔던 것으로 파악됐다.
안대는 법에도 없는 보호장비
당시 북한 북송 과정을 잘 알고 있는 경찰 관계자는 18일 중앙일보와의 통화에서 "당시 경찰 내에서도 어민들에게 안대·포승을 사용해선 안 된다는 이야기가 있었다"며 "다만 경찰특공대의 경우 사실 판문점에서의 업무가 뭔지에 대해서도 정확히 알지 못한채 현장에 투입됐고, 관계 기관에 의해 불법 소지가 있는 안대·포승 등이 이미 이뤄진 것을 인지한 상태였지만 어민들을 현장에서 인계받아 그대로 호송할 수밖에 없었다"고 말했다.
현행법은 체포 또는 구속된 사람에 대해 사용할 수 있는 보호장비를 최소한으로 제한하고 있다. '형의 집행 및 수용자의 처우에 관한 법률' 제98조에 따르면 사용 가능한 보호장비는 수갑, 머리보호장비, 발목보호장비, 보호대(帶), 보호의자, 보호침대, 보호복, 포승 등 8가지다.
탈북 어민에게 씌웠던 안대나 얼굴 가리개를 사용할 수 있는 법적 근거는 없다.
얼굴에 쓰이는 보호장비의 경우 체포 또는 구속된 사람의 자해 방지를 위한 목적으로만 극히 제한적으로 허용된다. 다만 이 경우에도 눈을 가리는 장비, 즉 안대를 강요할 수 있는 명확한 법적 근거는 없다.
익명을 원한 법조계 관계자는 "특히 눈을 가린 안대의 경우 한국인뿐 아니라 외국인에게도 쓰면 안 되는 장비로 해석하는 의견이 다수"라며 "당시 북한 어민들에게 안대나 얼굴 가리개를 씌운 주체가 수사를 통해 밝혀질 경우 이에 대한 법적 책임을 져야할 가능성도 있다"고 말했다.
또 다른 법조계 인사도 "사람의 신체를 구속하는 것과 관련한 내용은 법률과 법률의 위임을 받은 시행령에서만 규정할 수 있다"며 "안대 사용에 대한 시행령이 존재하지 않기 때문에, 당시 당국이 내부 규칙을 통해 안대를 착용시켰다고 주장하더라도 이는 사실상의 불법 행위를 정당화할 근거가 되기 어렵다"고 말했다.
구금 장소도 알렸어야
헌법(제12조 3항)에 명시된 영장주의 원칙에 따르면 대한민국 국민이나 외국인의 구분 없이 피고인 또는 피의자에게 구금할 장소를 알려주고 이를 영장에 기재해야 한다. 만약 당국이 당시 탈북 어민 2명에게 북으로 송환될지 고지하지 않은 상태에서 안대로 눈을 가린 채 이들을 강제로 판문점으로 호송했다면 이 역시 불법 논란에 휘말릴 가능성이 있다.
다만 문재인 정부는 "해당 사건의 합동신문조사는 수사기관의 수사가 아닌, 탈북 경위와 귀순 의사 확인을 위한 정부 차원의 행정조사"라는 입장을 견지하고 있다. '영장주의 원칙'이 적용되는 케이스가 아니란 주장이다.
그러나 법조계에선 당시의 합동조사와 북송결정이 문재인 정부의 주장처럼 행정조사에 따른 즉시강제 조치라고 하더라도, 정부의 일방적 북송 결정을 뒷받침할 법적 근거가 부족하다는 의견이 적지 않다.
행정기본법 33조에 따르면 "즉시강제는 다른 수단으로는 행정목적을 달성할 수 없는 경우에만 허용되며, 이 경우에도 최소한으로만 실시해야 한다"고 돼 있다. 또 "즉시강제의 이유와 내용을 고지해야 한다"는 내용도 있다.
그러나 이날 통일부가 공개한 2019년 11월 7일 북송 동영상에는 어민들에게 북송 사실을 고지하는 등의 절차는 확인되지 않는다. 오히려 판문점에서 북한 군인을 본 어민이 자리에 주저앉아 북송에 격렬히 저항하는 모습이 생생하게 담겨있다.
이에 대해 이영환 전환기정의워킹그룹(TJWG) 대표는 "정부는 당시 이례적으로 짧은 합동신문조사만을 근거로 탈북 어민 2명을 '악랄한 범죄자'로 단정했다"며 "특히 당시 송환 결정을 내린 청와대 국가안보실은 대통령의 참모진 자격만을 가질뿐인데 강제송환과 같은 행정처분을 내릴 권한이 있는지도 불분명하다"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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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민 신청권도 불인정
탈북 어민을 대한민국의 국민으로 봐야하는지 등에 대한 논란은 있다. 그러나 그들을 헌법상에 규정된 대한민국 국민이 아닌, 무국적자 혹은 외국인으로 본다고 해도 이들을 강제로 퇴거시킬 때 무조건 '북한'으로 보낼 명확한 근거는 없다는 지적도 있다.
출입국관리법 제64조는 "일반적으로 해당 인원의 국적이나 시민권이 속하는 국가로 송환하지만, 그 국가로 송환할 수 없는 경우에는 본인이 희망하는 국가로 송환이 가능하다"고 규정돼 있다. 여기서 언급된 '송환할 수 없는 경우'에는 범죄를 이유로 고문 등의 받을 우려가 객관적으로 인정되는 경우 등도 포함된다.
이 때문에 법조계에선 고문 등을 받을 가능성이 큰 북한이 아닌 다른 국가로 어민들을 보낼 수도 있었는데, 이들을 강제로 북송시킨 것은 '강제송환 금지 원칙'을 위반했다는 지적이 나온다.
정영교 기자 chung.yeonggyo@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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