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틴, 교과서도 바꿨다..30년 개방 접고 옛소련식 '체제 교육'
'21세기 강대국 러시아의 재탄생' '크림반도 재통합' '우크라이나 군사특수작전'….
러시아의 초등학교·중학교 학생들이 오는 9월 새 학기부터 매주 월요일 역사 시간에 새롭게 배우게 되는 내용이다. 뉴욕타임스(NYT)는 러시아가 의무교육 과정에서 군국주의·애국주의 사상 교육을 노골화하고 있다고 지난 16일(현지시간) 보도했다. 이 수업에는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의 20년 집권 역사 덕분에 러시아가 강대국으로 우뚝 서게 됐다"는 내용도 담긴다고 한다.
NYT에 따르면 람잔 카디로프 체첸공화국 수장이 학생들의 애국심을 높이는 교육자로 연단에 설 예정이다. 그는 푸틴 대통령의 측근으로, 여러 전장에서 각종 인권유린을 일삼으며 잔혹하기로 악명 높은 인물이다. 또 내년 3월엔 지난 2014년 러시아가 강제 합병한 우크라이나의 크림반도를 가상의 방식으로 체험해보는 시간도 있다.
푸틴 대통령은 지난 14일 이처럼 국가 이데올로기 교육을 강화하는 내용의 대통령령에 서명했다. 법령에는 러시아 전역 공립학교 4만여 곳에 재학하는 학생들에게 오는 9월부터 유소년 애국 운동에 동참할 것을 권장하는 내용도 담겼다. 이는 목에 붉은 띠를 두른 옛소련의 소년단 조직 '피오네르'(Pioneers)를 본뜬 것이다.
최근 크렘린궁의 고위 관리인 세르게이 노비코프는 자국 교사 수천 명이 참석한 온라인 워크숍에서 "소련 붕괴 이후 러시아 정부는 학생들에게 국가 이데올로기를 전달하는 데 실패했다고 본다"며 "그러나 우크라이나와 싸우고 있는 지금, 푸틴 대통령은 사상 교육을 통해 의식의 전환을 목표로 하고 있다"고 밝혔다.
NYT는 러시아의 이런 교육 정책에 대해 "반(反)서방적 애국주의 사상을 주입하기 위한 목적"이라며 "러시아 사회를 전쟁에 동원하고, 잠재적인 반대 의견을 씨앗부터 없애려는 푸틴 대통령의 선전 활동"이라고 진단했다. 이어 "지난 30년간의 서방 개방을 종식하려는 전면적인 사회 대전환 과정"이라고 덧붙였다.
실제로 러시아의 어린 학생들 사이에서 이같은 주입식 사상 교육의 효과가 상당한 것으로 나타났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직후인 지난 3월, 러시아 학교에선 "우크라이나 전황은 러시아 국영 TV가 전하는 뉴스만 믿을 수 있다"는 내용의 강의가 진행됐다. 이 수업에 참여한 한 9학년생(중학생)은 NYT에 "수업 이후 또래 사이에서 (우크라이나 침공은) 당연히 일어나야 하는 일이 됐다"고 말했다.
이 학생은 러시아군에 의해 우크라이나 민간인이 집단 희생된 '부차 대학살'과 관련해선 "친구들에게 이의를 제기하자 그들은 '그건 전부 (우크라이나 측의) 선전'이라며 나를 쏘아붙였다"고 전했다.
우크라이나 전쟁 초기만 해도 학생들은 러시아의 침공에 대해 찬반으로 갈라져 격렬하게 논쟁했으나, 이제 더는 반대 목소리가 들리지 않는다고 한다. 교사 밀류티나(30)는 "5~6학년 학생들은 쉬는 시간에 러시아 군인 행세를 하면서 논다"며 "매우 싫어하는 친구를 향해 '우크라이나인'이라고 부른다"고 말했다. 칠판과 책상, 바닥 등 학교 시설 곳곳은 우크라이나 침공을 지지하는 뜻인 'Z' 표식으로 뒤덮였다.
다만, 일부 교사들 사이에선 러시아 정부의 왜곡된 사상 교육 지시에 반발하는 움직임도 있다. 러시아 노보시비르스크에서 사립학교를 운영하는 세르게이 체르니쇼프 교장은 "아이들에게 군국주의 사상을 심으려는 시도는 결국 젊은이들의 상식에 어긋날 것"이라며 "한 인간이 다른 인간을 죽이고 있는 상황을 아이들에게 알기 쉬운 언어로 설명하는 건 불가능한 일"이라고 밝혔다.
김서원 기자 kim.seowo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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