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대빗속 울먹인 노동자들 "20년 일해도 최저시급, 우리의 삶을 봐달라"
[김성욱 기자]
▲ 18일 거제 대우조선해양 옥포조선소 서문 앞에서 정의구현사제단이 하청노동자들의 파업을 지지하는 미사를 열었다. |
ⓒ 김성욱 |
'하청노동자'라는 이름이 서럽습니다. 그 서러움을 몸으로 표현하고자 유최안 부지회장이 스스로 작은 감옥을 만들어서 27일째 옥쇄 투쟁을 하고 있습니다. 볼 때마다 가슴이 아프고 솔직히 제가 어찌해야 할 바를 모르겠습니다. 저는 부디, 저희의 마음이, 폭력적인 사측의 도발에 무너지지 않게 해달라고 간절히 기도하고 있습니다. 저희를 위해 기도해주십시오."
장대비가 쏟아지던 18일 오후 경남 거제 대우조선해양 옥포조선소 서문 앞. 김형수 민주노총 금속노조 거제·통영·고성 조선하청지회 지회장의 발언에 하얀 사제복과 우비를 입은 신부, 수녀들의 얼굴로 빗물과 눈물이 섞여 흘렀다.
한 노동자는 눈을 꼭 감고 두 손 모아 기도했다. 신부와 수녀들은 굳게 닫힌 조선소 문을 향해 "유최안 힘내라"를 외쳤다. 유최안 부지회장은 조선소 내 가로·세로·높이 1미터의 철제 구조물에 스스로를 가두고 27일째 농성을 이어가고 있다. 수녀와 신부들은 유 부지회장을 만나러 조선소 안으로 들어가려 했지만, 사측에 의해 거부당했다.
전화로 연결된 유 부지회장이 수화기 너머로 응답했다.
"잘 들리십니까. 사제 여러분, 정말 고맙습니다. 저희가 억울한 일이 너무 많아 파업을 시작하게 됐습니다. 저희 요구 조건은 그동안 임금 삭감 당했던 걸 원상 회복시켜서, 하청노동자들도 생계 부담 없게 살게 해달라는 것뿐이었는데… 대우조선이 우리에게 너무 부당하게 대응하면서 일이 커진 것 같습니다. 멀리 거제까지 와주셔서 정말 고맙습니다. 힘내겠습니다."
▲ 18일 거제 대우조선해양 옥포조선소 서문 앞에서 정의구현사제단이 하청노동자들의 파업을 지지하는 미사를 열었다. 미사 도중 한 노동자가 두 손을 모아 기도하고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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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주교 정의구현사제단은 이날 거제 대우조선해양 옥포조선소 앞에서 '대우조선 하청노동자들의 정당한 임금과 노동조건 개선을 촉구하는 미사'를 올렸다.
서울 광화문에서 '희망버스'를 타고 5시간 30분을 달려온 김영미 수녀는 <오마이뉴스>와 만나 "'여기 사람이 있다'는 말을 듣고 마음을 모으려 왔다"라며 "밖에서도 파업하는 하청노동자들을 응원하고 지지하는 사람이 있다는 걸 알아줬으면 한다"고 했다.
▲ 18일 거제 대우조선해양 옥포조선소 서문 앞에서 정의구현사제단이 하청노동자들의 파업을 지지하는 미사를 열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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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자이신 예수님의 복음을 따라 마음에 새긴 주님의 사랑을 증언합니다. 저희가 성체를 받아놓고 간절히 바라나니, 여기 있는 모든 노동자들에게 참평화를 누리게 하소서. 우리 주 그리스도를 통하여 비나이다, 아멘."
빗속의 거리 미사를 마치고 신부들은 노동자들에게 다가가 성체를 나눠줬다. 노동자들은 허리를 굽히며 성체를 받들었다. 두 시간여 비를 맞고 서서 미사를 들은 대우조선 하청노동자 강행진(58)씨는 신부가 건넨 성체를 입에 물고 울먹였다.
"너무 뭉클하고 벅차 올라서… 저희 하청노동자들은 20년 일해도 최저시급 조금 넘게 받아 살고 있습니다. 매일같이 높은 데서 떨어져 죽을 수 있는 일을 하는데도. 네 식구 생계를 책임져야 하는데도요. 파업 하는 동안엔 월급도 못 받아서 더 힘들었는데… 이번에 국민들께서 모금해주셔서 저희도 살았습니다. 국민들께 너무 감사합니다."
임금도 받지 못하고 파업 중인 대우조선 하청노동자 200명에게 인당 50만원의 파업연대기금을 지급하자는 취지로 1만명이 1만원씩 기부하자는 '10000×10000' 모금 캠페인은 당초 목표액을 크게 넘겼다. 이 기금으로 월급날이던 지난 15일 파업을 계속하고 있는 하청노동자 150여명은 각각 180만원을 지급받을 수 있었다.
▲ 김형수 민주노총 금속노조 거제·통영·성 조선하청지회 지회장이 18일 거제 대우조선해양 옥포조선소 서문 앞에서 <오마이뉴스>와 만나 인터뷰하고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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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형수 지회장 역시 "오늘 서울에서 온 사제분들과 기금으로 연대해주신 시민들께 너무 감사하다"고 했다. 하지만 김 지회장은 이날 윤석열 정부가 "지금과 같은 불법적인 점거 농성을 지속한다면 정부도 법과 원칙에 따라 엄중하게 대응할 수밖에 없다"는 입장을 발표한 데 대해 "공권력을 투입해 파업을 와해시키겠다는 협박 아니냐"며 크게 반발했다.
미사의 마무리 의식이 끝난 뒤 조선소 앞에서 김 지회장을 만났다. 대우조선 하청노조는 앞서 지난달 2일부터 ▲5년간 삭감된 임금 30% 회복 ▲노동조합 인정 등을 요구하며 47일째 파업 중이다.
- 윤석열 대통령이 오늘 "산업 현장의 불법 상황은 종식돼야 한다"고 했고, 정부가 담화문을 발표해 강경 대응을 예고했다.
"결국 공권력 투입하겠다며 협박하는 것 아닌가. 노사가 교섭 중이라면 정부는 이 사태를 어떻게 원만하게 해결할 지를 고민해야 하는데 어떻게 일방적으로 한 쪽 편만 드는지 모르겠다. 우리는 불행한 사태가 일어나지 않길 바란다. 이미 지난 1년 동안 대화했는데도 하나도 진척이 안 돼 어쩔 수 없이 파업을 한 거다. 경영자들이 방만해 망쳐놨던 회사를 정상화 시키려고 여태 임금까지 내놨던 게 우리다. 누구보다 대우조선을 위해 열심히 일해온 노동자들이다.
그런 우리의 절박한 투쟁을 '불법' 운운하며 몰아붙일 일인가. 특히 오늘 여당 원내대표라는 권성동 의원은 우리더러 '막무가내식 떼쓰기', '테러행위'를 한다며 마치 노조를 와해시키는 게 선진화라는 식으로 말했다. 기가 차다. 우리가 정규직이 아닌 하청노동자라는 걸 알고 있는지조차 의심스럽다. 군부독재 시절도 아니고 노조 때려잡는 게 무슨 선진화냐. 우리는 그저 모두 함께 잘 사는 사회를 향해 가자고 투쟁하고 있는 거다. 테러 집단이 아니다."
- 법원이 지난 16일 노조의 사내 점거가 퇴거돼야 한다고 결정했다. 퇴거 거부 시 1일 300만원씩 지급하라고 명령했다.
"과거 김진숙 지도위원이 고공농성을 할 때(2011년), 점거로 인한 벌금이 1일당 100만원으로 나오자 '한국 부산 영도에는 크레인이라는 하루 100만원짜리 호텔이 있다'고 농담을 한 적이 있다. 그 농담이 떠오른다. 우리는 하루 300만원짜리 감옥에 살고 있다."
- 현재 노사 교섭은 어떤 상황인가.
"전혀 진척이 없다. 그래서 더 답답한 거다. 회사는 이번 기회에 우릴 짓밟고 아예 1차 사내 하청을 없애려는 의도까지 갖고 있다고 본다. 전부 바깥에 사외 하청을 두려는 의도다. 완전한 외주화, 아웃소싱으로 가야 나중에 꼬리 자르기 편하니까. 당장은 돈 많이 주겠다며 사외 하청 계약을 늘려놓고 사내 하청들이 다 없어지고 나면 금방 임금 떼먹고 착취할 거다. 특고(특수고용형태노동자) 같이 만들어버리겠다는 거다. 문제가 생기고 내가 임금을 올려 받고 싶어도, 누구에게 얘기해야 할 지 모르게 만드는…
▲ 18일 거제 대우조선해양 옥포조선소 서문 앞에서 정의구현사제단이 하청노동자들의 파업을 지지하는 미사를 열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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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6월 24일, 민주노총 금속노조 거제통영고성 조선하청지회 유최안 부지회장이 가로·세로· 높이 1m의 철 구조물을 안에서 용접해 자신을 스스로 가둔채 농성을 이어가고 있다. |
ⓒ 금속노조 선전홍보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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