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 "대우조선 불법 행위 엄정 대응. 형사처벌·손해배상 피할 수 없다"
정부가 40여일간 이어지고 있는 대우조선해양 하청 노조 파업과 관련해 "불법 행위에 엄정 대응하겠다"는 대국민 담화문을 18일 냈다. 14일 고용노동부·산업통상자원부 장관이 담화문을 통해 사태 해결을 호소한 것에서 한층 수위가 높아졌다. 윤석열 대통령이 "산업 현장 불법 상황은 종식돼야 한다"면서 적극적인 문제 해결을 주문한 데 따른 것이다.
추경호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이날 오후 정부서울청사에서 관계부처 합동 담화문을 발표했다. 대우조선해양 하청 노조의 불법 행위 중단과 노사 협상 타결을 촉구하는 내용이 담겼다. 이날 브리핑장엔 추 부총리 외에 한동훈 법무부 장관,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 이창양 산업부 장관, 이정식 고용부 장관, 방문규 국무조정실장 등 장관급 5명이 참석했다.
민주노총 금속노조 하청지회는 지난달 2일 파업에 돌입했고, 같은달 22일부터는 노조원 7명이 대우조선해양 옥포조선소 1번 독(dock)의 30만t급 원유운반선을 점거하고 있다. 산업부에 따르면 독 점거로 작업이 지연되면서 6636억원(18일 기준)의 누적 피해액이 발생했다.
추 부총리는 우선 파업과 불법 점거에 따른 경제적 어려움을 강조했다. 대우조선해양 옥포조선소 1번 독을 두고 "대한민국 조선업 경쟁력의 상징과 같다"면서 "일부 협력업체 근로자의 불법점거로 멈춰섰고, 건조를 마치고 조만간 선주에게 인도돼야 할 초대형 원유 운반선은 발이 묶였다"고 밝혔다. 대우조선해양에 대해선 "대규모 국민 혈세를 투입하며 구조조정을 추진해 왔지만 높은 부채비율과 대규모 적자를 기록하는 등 상황이 매우 어렵다"고 했다.
노조의 불법 점거 사태엔 강한 어조로 비난했다. "한국 조선산업이 지금껏 쌓아올린 신뢰를 무너뜨릴 수 있는 무책임한 행위"이자 "동료 근로자 1만8000여명의 피해와 희생을 강요하는 이기적 행동"이라는 것이다. 그러면서 "노사 자율을 통한 갈등 해결을 우선하되, 불법 행위에 대해서는 법과 원칙에 따라 엄정하게 대응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하청노조의 행위는 명백한 (법) 위반이며, 재물손괴 등 형사처벌과 손해배상 책임을 피할 수 없다"고도 덧붙였다.
추 부총리는 "정부는 적극적 중재 노력과 함께 취약근로자 처우 개선 등 필요한 정책적 지원에 힘쓰겠다"면서 "노조도 기업과 동료 근로자 전체의 어려움을 헤아려 불법행위를 즉시 중단하고 조속히 타결하기를 강력히 촉구한다"며 담화문을 마무리했다.
이날 대국민 담화문 발표 일정은 오후 들어 갑작스레 잡혔다. 앞서 윤석열 대통령이 대우조선해양 사태를 연이어 언급한 데 따른 것으로 풀이된다.
윤 대통령은 이날 오전 열린 수석비서관회의에서 "(대우조선해양 하청 노조 파업이) 우리 경제에 미치는 영향이 지대한 만큼 관계 부처 장관들이 좀 더 적극적으로 문제해결에 나서도록 하라"고 말했다. 한덕수 국무총리와의 주례 오찬 회동에서도 "노사 관계에서 법치주의가 확립돼야 한다"면서 "산업 현장의 불법 상황은 종식돼야 한다"고 주문했다. 불법 행위 중단과 노사 협상 타결을 강력히 촉구하는 동시에 '엄중 대응'에 방점을 찍는 모양새다.
법원은 15일 농성 노조원이 퇴거하지 않으면 사측에 하루 300만원씩 지급해야 한다고 판결했다. 하지만 파업과 점거가 장기화할수록 매출 피해는 눈덩이처럼 커질 수밖에 없다. 이창양 장관은 "대우조선해양은 매일 259억원의 매출 손실과 57억원의 고정 비용 손실이 발생하고 있다"고 밝힌 바 있다.
하지만 정부의 고민은 깊다. 노사 간 교섭을 독려하는 것 이외에 확실한 해결 방법을 찾지 못하고 있어서다. 점거 농성 중인 노조원 중 한 명은 선박 바닥에 '쇠창살 케이지'를 설치하고 용접으로 출입구를 막아 스스로를 감금한 상태다. 6명은 20m 높이의 '수평 프레임' 위에서 고공 농성 중이다. 노조원들은 인화성 물질인 시너까지 비치한 것으로 알려졌다.
정부, 공권력 투입보다는 교섭 독려
이런 상황에서 공권력을 투입하기에는 위험 부담이 따른다. 농성 중인 노조원이 방화하거나 뛰어내리기라도 하면 큰 인명 피해가 날 수 있다. 대통령실 관계자는 ‘공권력 투입까지 검토하고 있다는 뜻이냐’는 취재진 질문에 "지금 상황에서 무엇을 어떻게 하겠다 하는 구체적 단계를 확인드릴 수 있는 상황은 아니다"라고 말했다.
한국경영자총협회는 17일 입장문을 내고 "자율적 해결을 강조할 것이 아니라 공권력 집행에 나서야 한다"고 주장했다. 고용부 관계자는 이에 대해 "불법에 엄정하게 대응하는 것은 맞지만 공권력 투입도 상황에 따라 결정해야 한다"며 "지금은 노사 모두 떼를 쓰기보다 교섭 등 이성적 대안을 찾는 것이 우선"이라고 말했다.
이정 한국외국어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노조 행위는 명백한 불법임에 틀림없다"면서도 "그러나 공권력을 투입했다가 불상사가 발생하면 향후 국정 운영에 상당한 부담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 교수는 "섣불리 공권력을 투입하는 것보다 여론을 조성하고, 설득하면서 타협점을 찾는 것이 현재로선 최선"이라고 덧붙였다.
고용부는 현재 노사 간 교섭을 독려 중이다. 하형소 부산고용노동청장 등이 현장에 상주하며 대우조선 하청업체 협의회 측과 하청지회 노조 간의 양자 교섭을 매일 진행시키고 있다. 여기에 원청인 대우조선해양 경영계와 노조가 지원하며 4자 교섭도 하고 있다.
고용부 관계자는 "매일 두 시간 이상 교섭이 이뤄지고 있다"며 "정부도 노사 협의 사항을 점검하고, 조율 중이지만 양측의 간극이 커서 접점이 보이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고용부 고위 관계자는 "정부 담화를 계기로 교섭 시간을 더 늘려 집중교섭을 촉진하고 있다"며 "교섭을 하다보면 타협 여지를 찾을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김기찬 고용노동전문기자 wolsu@joongang.co.kr, 세종=정종훈 기자 sakehoo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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