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이 전산" 반말에 기차예약 심부름.. 법원 하청노동자 울분 폭발

손가영 2022. 7. 18. 17: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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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 전산 운영자들 법원 대상 '모의재판' 열어 현실 폭로.. "사법부 간접고용 철폐" 요구

[손가영, 유성호 기자]

 법원과 등기소에서 전산장비 유지보수를 담당하는 하청 노동자들이 18일 오전 서울 서초구 대법원 전국공무원노동조합 법원본부 회의실에서 ‘제헌절 기념 대한민국 법원 노동권 위한 모의 재판’을 열고 피고인 법원에게 갑질죄, 중간착취죄, 부당노동행위 죄로 법적 최고 형량인 징역 10년을 선고했다.
ⓒ 유성호
 
"대한민국 법원을 3개 죄의 근로기준법 법정 최고 형량인 징역 10년에 처한다. 100시간의 근로기준법 수강도 명한다. 땅, 땅, 땅."

18일 오전 11시 대법원 법원노조 회의실, 판사 '법복'을 차려 입은 최근배 전국법원사법전산운영자지부장이 노동기본권을 무시하는 사법부에 책임을 묻겠다면서 법봉을 두드렸다. "노동기본권에 솔선수범이어야 할 사법부가 불안정 고용과 열악한 처우의 전산직 하청노동자들을 상대로 갑질, 중간착취, 정규직 전환 배제, 부당노동행위 등의 죄를 저질렀다"는 것이다.

지난 1일과 4일 전국 법원·등기소 전산 하청노동자들이 사상 최초로 파업을 단행하면서 지난 25여 년간 누적된 울분이 터져 나오고 있다. 공공운수노조 전국법원 사법전산운영자지부(법원 전산직 노조)와 등기전산지회(등기소 전산직 노조)는 이날 '법원 노동권 위반 모의재판' 행사를 열어 전국에서 수집된 각종 갑질 피해 사례를 고발했다.

"정규직 전환엔 반대하면서 개인 심부름 시켜"
 
▲ 법원 전산직 하청 노동자 “대한민국 법원의 갑질죄 엄벌해 주십시오” ⓒ 유성호

"회식 후 대리운전, 관용차 운전 요구, 개인 컴퓨터 구매 및 조립, 휴대폰 구매 동행, 개인 노트북 윈도우 운영체제 설치, 법원 새벽 기도회 연다며 새벽 출근 강요, 여행 티켓 예약, 조서 작성, 공탁 서류 업무, 조정위원 임명장 제작, 관사 방문해 컴퓨터 수리..."

총 조합원 160명 중 81명이 지난 7~8일 이틀간 진행된 노조 온라인 설문조사에 참가해 응답한 기록이다. 응답자의 56%가 '판사·공무원의 개인용 컴퓨터 설치·수리·구매 등을 해준 적이 있'으며 33%는 '관사나 개인 집으로까지 가서 관련 업무를 봐준 적이 있다'고 답했다. "어이 전산"이나 "야" 등의 반말을 들었다는 응답도 20%를 기록했다. 여행예약 등 사적 업무를 대행해 준 비율은 14%로 나타났다. 이날 노조가 고발한 첫 번째 죄목은 '갑질'이다.

한 조합원은 "개인 은행인증서 갱신이나 개인차량 블랙박스 영상 저장이나 업데이트 등의 요청도 많이 들어왔다"고 응답했다. "우산 심부름, 기차·비행기 예약, 먼저 가서 승강기 잡아두기"라고 응답한 조합원도 있었다.

수도권의 한 지방법원에서 일하는 전산 운영자 A씨는 "4년 전쯤 일"이라며 "일반직에선 최고위직인 국장님(3급 공무원)이 휴대전화를 사러 가는 데 동행한 적이 있다"고 말했다. "'컴퓨터를 잘 아니 폰도 잘 알지 않느냐'며 근무시간에 전화가 와 같이 가자고 했다"며 "법원 인근 매장에 나가 1시간 가량 돌아다녔다"는 것이다.

증언에 나선 김아무개 조합원은 "이런 요구, 지시들은 고용이 불안정한 상태에서 무시할 수 없다"며 "'민간 고도 기술' 영역이라며 정규직 전환은 반대해놓고 대리운전, 여행 예약을 강요하는 건 있을 수 없다. 대한민국 법원의 갑질죄를 엄벌해 달라"고 주장했다.

법원, 대체인력 투입... 법원 직원들은 전산 하청노동자에 연대
 
 법원과 등기소에서 전산장비 유지보수를 담당하는 하청 노동자들이 18일 오전 서울 서초구 대법원에서 법원의 부당 노동행위를 알리며 문제 해결을 촉구하고 있다.
ⓒ 유성호
 
노조가 고발한 두 번째 죄목은 부당노동행위다. 파업이 단행된 이틀 동안 인천지법, 서울남부지법, 경기도의 안산·부천지원 등 일부 법원이 공무원들을 대체인력으로 투입했다. 법원 고위직 관리자가 하청업체 관계자에게 '사업비를 깎겠다'거나 직원들에게 '파업 안할 수 없느냐'고 말을 한 사실도 노조가 확인했다.

목포지원의 한 공무원은 대체인력으로 투입된 공무원들을 향해 "제발 사용자의 개가 되지 말길 호소한다"는 강도 높은 비판까지 했다. 그는 지난 6월 30일 "서울중앙, 서부, 대구, 광주, 전주, 제주 6개 법원의 배신자"라는 제목의 글을 법원 내부 게시판에 올려 "여러분들이 전국법원에 출장가서 파업권을 침해하는 건 불법소지가 있다"고 적었다. 서울중앙지법의 또 다른 공무원도 법원 내부게시판에 "법원행정처는 업무공백 해소를 걱정할 게 아니라 당장 파업조합원들과 교섭에 나서라"고 촉구했다.

법원 직원들은 실명으로 글과 댓글을 올리면서 전산 하청노동자들에 연대하고 있다. '법원 전산노동자 투쟁을 응원한다'거나 '제 기억 속에 이분들은 밤을 낮 삼아, 주말을 평일삼아 법원이 돌아갈 수 있게 일해오신 분들' '전산실 없이는 법원이 돌아가질 않죠' '꼭 권리 쟁취하십시오' 등의 실명 댓글이 파업 관련 게시글에 십수 개씩 달리고 있다.

"법원 고위직, 근로기준법 100시간 공부해라"
 
 법원과 등기소에서 전산장비 유지보수를 담당하는 하청 노동자들이 18일 오전 서울 서초구 대법원 전국공무원노동조합 법원본부 회의실에서 ‘제헌절 기념 대한민국 법원 노동권 위한 모의 재판’을 열고 피고인 법원에게 갑질죄, 중간착취죄, 부당노동행위 죄로 법적 최고 형량인 징역 10년을 선고했다.
ⓒ 유성호
 
마지막 죄목은 중간착취다. 사법부가 상시·지속 업무를 간접고용으로 유지하는 것도 문제지만, 법원행정처와 하청업체 둘 다 용역대금에서 상당한 이윤을 남기며 중간착취를 일삼았다고 주장한다.

등기전산지회가 정보공개청구 등을 통해 확인한 결과, 2015~2021년 7개년도 동안 법원행정처가 최초 산정한 등기소 전산 용역대가 산정 금액과 실제 지급한 대금의 차액은 총 58억 원 정도였다. 이 기간 동안 한 해 적게는 5억 원에서 많게는 15억 원가량 차이를 보였다. 매해 20억~21억 원 규모의 대금을 받은 하청업체는 이중 절반가량인 10여억 원만 인건비로 책정해왔다. 반면 등기소 전산직 노동자의 월평균 임금은 2019년엔 175만 원, 2020년엔 187만 원, 2021년엔 201만 원에 불과했다.

증언에 나선 김창우 등기전산지회장은 "2022년 자료도 최근 정보공개청구했는데 법원행정처가 비공개 처분했다. 공개대상인 자료를 대체 뭘 근거로 비공개 하느냐"고 따져 물으며 "대한민국 법원에 중간착취죄를 적용해 주길 바란다"고 말했다.

지난 6월 하청업체와의 임금교섭 결렬에 따라 쟁의권을 확보한 이들 노조는 법원이 '진짜 사용자'라며 법원에 간접고용 철폐 및 정규직 전환을 요구하고 있다.

최 지부장은 모의재판을 끝내며 "법원은 하청노동자들 정규직 전환 및 노동자로서의 기본권을 보장해야 할 위치에 있는 자"라며 "서민과 노동자의 법 감정에 따라 그 죄질이 무거워 근로기준법이 정한 최고 형량과 근로기준법 수강을 명한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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